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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On November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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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고샤 루브친스키, 드레스는 순수, 이어링은 1064 스튜디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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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로 살면서, 인생에서 꼭 하고 싶던 걸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아이돌이 되고 싶었어요. 춤추는 것도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일도 좋아했고요. 미국 활동에 대한 꿈도 있었어요. JYP 들어가기 전부터요. 지금껏 저는 그런 것들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원더걸스로 첫 무대에 올랐을 때, 예은은 열아홉이었다. 20대 대부분을 ‘원더걸스’로 보냈다. 그리고 지난 12일, 예은은 자신의 20대를 점령한 이름들을 접고, 새 이름을 새겨 앨범을 냈다. 핫펠트. 원더걸스 때부터 예고 하던 그 이름. 뜨거운 진심만 담겠다는, 솔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선언인 셈이다. 핫펠트의 새 앨범 <마이네(MEiNE)>에는 단 2곡만 실렸다. 개코가 그녀에게 ‘새 신발’이라는 곡을 선물했고 그녀는 자전적인 곡 ‘나란 책’을 썼다. <마이네>에서 핫펠트는 오직 그 자신의 수집가이거나 그 자신을 노래하는 화자다. 오직 자신의 정체성만을 재료로 쓴다. 시류와 흐름과는 상관없이, 가장 먼저 자신을 버젓이 펼쳐 보이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잘 알거나 모르던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라고, 내 이야길 한번 들어보라고.

후드 셔츠는 텔더트루스, 스커트는 제이쿠, 부츠는 베트멍×닥터마틴,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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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머스탱을 몬다고요?
네.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산 차예요. 이전까진 차가 필요하면 엄마 차를 썼고, 그뿐이었거든요. 자동차를 잘 몰랐어요. 구별도 잘 못했고요. 저한테 차란 흰 차, 검은 차, 회색 차… 이런 식이었어요. 차를 사려고 알아보면서 그냥 예쁜 차가 제일 갖고 싶었어요. 기능이 어떻고, 그런 건 필요 없었고요.

가장 예쁜 차가 머스탱이었군요.
제일 달랐어요. 다른 차들은 다 비슷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머스탱은 좀 달랐죠. 유일하게요. 타면서 느낀 건데, 이 차가 참 단순하더라고요. 아날로그적이고요. 첨단 기능이 많지 않아요. 지붕이 열리는 차인데, 지붕을 걷는 자동 버튼을 누르기 전에 손으로 어떤 레버를 돌려줘야 해요. 단순해요. 저랑 비슷해요. 되게 단순할 때의 저요. 색깔은 버건디예요. 어두운 빨강.

주변에선 ‘여자 차’로 보지 않는다면서요. 여자가 머스탱을 타느냐는 말을 들을 땐 어떤 기분이에요?
신경 안 써요. 머스탱을 산다고 했을 때 아예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너무 눈에 띄고 날라리 같아 보이고 기름도 많이 먹는다고요. 사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했죠. 근데 타보니까 그냥 뭐, 저는 좋던데요. 머스탱은 뭐랄까.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안 쓰는 여자 같아요.

닮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하하.

뭔가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말하는 걸 잘 못하는 편인가요?
솔직한 편이에요. 많이 솔직하죠. 사실에 대해 솔직해요. 누가 날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에 어떤 사실을 다르게 말하거나 숨기는 걸 잘 못해요. 거짓말을 싫어해요.

그럼에도 내보이지 못하고 감추는 게 있다면요?
음. 요즘 부쩍 느끼는 건데, 제가 감정을 숨기더라고요. 사실에 대해서는 솔직하지만, 제 감정에 대해선 표현을 잘 못해요.

<마이네>는 고집스럽게 요약해 만든 자서전 같아요. 단 2곡을 실었잖아요.
써둔 곡이 많았어요. 연애에 관한 곡도 있었고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좁혀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제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되니까요. 저는 가끔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으로 쓰기도 해요. 그럴 땐 작정하고 상상해요. 신나게 써요. 난리가 나죠. 이를테면, 이전에 발표했던 ‘본드’는 제가 정말 섹시한 여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쓴 곡이에요. 그때 정말 신났는데. 하하. 요즘은 여자의 시각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길 많이 쓰고 싶어요. 아메바 컬처에 들어왔잖아요. ‘여자 연예인’보다 ‘여성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집중적으로 다져나가고 싶고요.

2곡 중 ‘나란 책’을 예은 씨가 썼어요. 제목이 뜻하는 그대로 자전적인 곡이죠. 자신에 대해 다 알려줄 기세로 노래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 알 순 없는 느낌이었어요. 곡이 끝나고 나서도 궁금해진달까요?
가사를 더 솔직하게 썼는데 바꿨거든요. 약간, 숨기는 쪽으로요. 그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다 듣고 나서도 궁금해졌다니, 좋아요. 다행이에요.

일찍 철든 어린아이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법보다 혼자서 감당하는 법부터 터득한 아이요.
아, 정말요. 잠시만요. 지금 좀 울컥했어요. 너무 정곡을 찌르셔서.

곡 쓰는 동안 조금 울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엄청 울었어요. 정말 많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감정적으로는 의지하지 않으며 자란 것 같아요. 그럴 수 없었어요. 엄마가 많이 힘들어해서요. 학교에서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이야길 집에 가서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나란 책’을 쓰면서 그 시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섯, 열둘, 열다섯, 열여덟의 이야길 한 줄씩 썼어요. 열여덟 이후는 왜 쓰지 않았나요?
사실은 썼어요. 스물부터 스물아홉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쓴 브리지 파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애매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번엔 제 목소리로 제 이야길 하는 파트와 또 다른 대상이 다른 이야길 보태는 파트가 어울리는 구조로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펀치넬로의 피처링을 삽입했어요. 스물에서 스물아홉을 쓴 브리지 파트는 들어냈고요. 언젠가 제 솔로 정규 앨범을 만들면, 그때 쓰려고요. 스물 이후에도 나름 파란만장했어요. 하하. 제가 다음에 따로 들려드릴게요.

여자로서의 주체성을 표현한 아티스트 중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프리다 칼로를 너무 좋아해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재료로 썼잖아요.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도 열렬했고요. 자신을 지독히도 힘들게 한 그 남자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저는 그런 사랑 자신 없거든요.

하고는 싶고요?
하고 싶죠. 그런데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포기가 빨라요.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해요. 상대가 절 오래 붙잡아주지 않으면 관계를 지속하지 못해요. 그러면서도, 그런 상대를 마음속으로는 기다리고요. 사랑을 열렬히 믿고 강하게 붙잡는 사람을요. 저는 누군가 저에게 와서 ‘나는 네가 좋아, 그냥 나한테는 딱 너야’라고 하면 끌리거든요. 반대로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거나 의심하고 있다면 저는 그 옆에 머물 수가 없어요.

 

 

드레스는 해프닝, 양말은 코스,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솔직한 편이에요. 사실에 대해 솔직해요. 누가 날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에 어떤 사실을 다르게 말하거나 숨기는 걸 잘 못해요. 거짓말을 싫어해요.”

 

이어링은 1064 스튜디오,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은 1064 스튜디오,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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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곳곳에 작은 문신이 있잖아요. 모두 예은 씨를 상징하는 것들이죠. 철로 된 나비, ‘펠트’라는 단어처럼요. 이 다음엔 뭘 새기고 싶어요?
뮤직비디오 촬영차 독일에 갔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마이네(Meine)’를 새기고 돌아오려고 했어요. 이번 앨범 제목이요. 아쉽게 못해서, 곧 하러 가려고요.

문신할 땐 어떤 걸 새길까 오래 고민하는 편인가요?
예쁘다고 생각되면,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첫 타투가 누구나 어렵대요. 그런데 몇 개 하다 보면 오히려 후회해요. 첫 타투 할 때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의미를 가득 담다 보면 나중에 유치해 보인다고요. 제 첫 타투는 손가락에 있는 ‘(핫)펠트’예요. 여기, 왼손가락에 점과 직선으로 새겼어요. 생긴 게 꼭 펜으로 장난 쳐놓은 것 같잖아요. 이것도 실은 당시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했어요. 하하.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던 타투입니다. 볼펜으로 그린 것 같다, 돈 주고 이런 짓을 했냐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아마도 유행에는 딱히 관심이 없나봐요.
맞아요.(웃음) 정말 그래요. 뭐가 유행하는지 잘 몰라요. 아니, 그다지 관심이 안 생겨요. 그래서 늘 제 본능이 끌리는 대로 시도하고, 경험하고, 구매해요.

누구나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때가 있잖아요. 지금 예은 씨는 그런 시기를 지나, 비로소 하고 싶던 일들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시절로 접어드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것 같아요. 음. 그런데 사실 원더걸스 때도 저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때도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원더걸스로 살면서, 인생에서 꼭 하고 싶던 걸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고 아이돌이 되고 싶었어요. 춤추는 것도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일도 좋아했고요. 미국 활동에 대한 꿈도 있었어요. JYP에 들어가기 전부터요. 지금껏 저는 그런 것들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시간을 쓰지 못했고요. 청소나 내 옷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나, 영수증 정리 같은 것들이요. 그땐 그런 일에 쓰는 시간이 아까웠어요. 노래, 춤, 영어에만 시간을 다 썼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 제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현실감도 없어지고요.

지금은요?
독립해서 혼자 살아요.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요리도 하면서 제가 쓰는 공간을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청소해주시는 분이 간혹 들르긴 하지만요. 주변을 챙기는 일에도 부쩍 신경 쓰고요. 동생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는 동안 저는 동생 졸업식에 가보질 못했더라고요. 못 갔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이제는 조금씩 여성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다지고 싶다고 했죠. 어렴풋이 그려둔 큰 그림이 있어요?
저는요. 데뷔하기 전엔 제가 정말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자식들에게 “너희는 모두 존귀한 존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도 매일 제 머리끄덩이를 잡고 말리셨다니까요. 그런데 어떻게든 뭔가가 됐잖아요. 저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저 사람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는 생각을 했으면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어요. 저를 보고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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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김성범
HAIR 이현우
MAKE-UP 오성석
ASSISTANT 김윤희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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