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스튜디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박보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이상했다. 예쁜 여자는 지난주에 봤고, 어제도 본 것 같은데, 오늘은 긴장이 됐다. 그렇다고 그녀가 잠을 달아나게 할 정도로 화려한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수했다. 조금 낯을 가렸고, 스태프들 사이에서 떠드는 대신 조용히 미소 짓는 사람이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달라진다. 염세나 뇌쇄적, 슬프게, 귀엽게, 나른하게 그런 용어에 맞춰 춤을 춘다. 정확히는 포즈를 취하지만 보고 있으면 셔터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듯 보인다. 박보람에게는 박보람만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를 글로 묘사하는 것은 어려워 이렇게 큰 사진을 붙인다.
노란색 퍼 재킷은 쟈딕앤볼테르, 오렌지색 보디수트는 유라고 제품.
앨범 <오렌지 문>의 활동이 끝났다. 아쉬운 점도, 좋았던 점도 있을 것 같다.
내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런 장르도 할 수 있는 가수임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 것도 좋았고. 연습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하다.
활동을 마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대학 축제 기간이라 축제 행사를 다닌다.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쉬자는 주의다. 쉴 때는 집에만 있는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해서 혼자 쇼핑을 하거나, 동네를 산책하기도 한다. 마트와 영화관이 근처에 있어서 둘러보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세 가더라. 집에서는 대부분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보낸다.
산책하다 보면 주변에서 알아보는 팬들도 있나?
있다. 알아보고 다가오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쓴다. 마트를 가거나, 친구들과 술 마실 때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자극받을 때가 있나?
앨범 활동 끝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 부족한 점, 못한 점을 깨닫고, 다음에는 그런 부분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노래도 그렇고 춤도 너무 많이 부족하다.
‘넌 왜?’는 안무가 독특한 곡이었다. 많이 어려웠나?
어려웠다. 레슨을 받고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춤 잘 추는 피가 몸에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춤을 추면 어색한 경향이 있더라. 그런 점이 아쉬웠다.
춤추는 게 어렵다면, 그에 맞춰서 안무를 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율동 수준밖에 안 되더라. ‘예뻐졌다’ 활동할 때 나를 위해 안무를 짰는데, 하나도 안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율동 같았다. 그래서 이번 ‘넌 왜?’는 안무 선생님이 쉽게 짜주셨는데 그것마저도 어려웠다.
요즘 10대, 20대에 데뷔하는 가수들은 그룹이 많은데, 그에 반해 박보람은 어린 나이부터 솔로로 활동했다. 활동하면서 외로울 때는 없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한때 느낀 외로움이 사실은 심심함이었던 것 같다. 대기실에 있으면 그룹은 멤버끼리 서로 얘기를 하면서 논다. 그걸 보면서 심심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다. 스태프들이 있으니까.
데뷔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말수가 줄었다.
성격이 바뀐 건가?
성격이 바뀌지는 않았다. 친한 사람들과 있으면 옛날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 처음 만난 사람이나 낯선 사람과 있을 때만 말을 아낀다. 말을 많이 해서 좋을 건 없는 것 같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그럼 본인을 웃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친구들? 또는 친구들과의 수다? 나는 여느 스물넷 여자들과 똑같다. 웃기는 거 보면 웃는다. 날 웃게 만드는 특별한 것은 없다. 성격이 털털해서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한다. 보통의 스물넷 소녀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인가?
연예인 친구들에게는 고민을 터놓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고민을 잘 말하지 않는다. 내가 연예계 활동하며 느끼는 힘든 점에 대해 이 일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연예인 친구들에게만 고민을 말하게 된다.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다음 앨범의 방향성을 찾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답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 또는 친구들과의 수다? 나는 여느 스물넷 여자들과 똑같다. 웃기는 거 보면 웃는다.”
시간이 빠르다. <슈퍼스타K>로 데뷔한 지 벌써 8년 차이고, ‘예뻐졌다’로 데뷔한 지는 4년 차다.
8년이 됐지만 데뷔 당시에는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할 나이는 아니었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그래서 확고한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다.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영향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이고,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도 궁금하다.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옛날 가수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재하, 김광석 같은 옛날 가수를 좋아한다. 외국 곡도 좋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번역한 가사를 보면서 들어야 하는 게 힘들다. 눈 감고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할 때는 옛날 가요가 좋은 것 같다.
직접 작사해볼 생각도 있나?
언젠가는 시적인 가사를 써보고 싶다.
자신이 부른 곡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도 알려 줄 수 있나?
제일 좋아하는 곡은 ‘혜화동’이다. 리메이크한 ‘혜화동’은 추억을 되살리는 분위기인데 그런 점이 좋다.
지난 활동을 찾아보면 OST 작업을 꽤 많이 했다.
감사하게도 요청을 많이 받아서 작업할 수 있었다. 내 앨범에는 발라드가 없는데, OST에서 발라드를 부를 수 있어 좋았다.
음악 활동 이외의 생활도 궁금하다. 평소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혹은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다.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은 별로 없다. 영화를 보고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제는 새벽 4시까지 영화 <내 사랑>을 봤다. 에단 호크가 나오는 영화인데, 오랜만에 예쁜 영화를 본 것 같아 좋았다. 장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봤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책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어떤 책을 읽나? 인상 깊게 읽은 책 몇 권만 추천해달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좋게 읽었고, 하상욱 시인의 <시밤>이라는 시집도 재밌게 읽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책보다는 영화를 더 많이 보는 편이라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는다.
남성지니까 이상형도 물어보자. 어떤 남자를 좋아하나?
남자다운 남자가 좋다. 예전부터 배우 하정우, 조진웅, 김지석을 좋아했다. 그리고 설경구. 얼마 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봤는데, 설경구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 연애하고, 연애할 때 헌신하는 스타일이다. 남자에게 대시받기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타입이다.
그럼 대시한 적도 있나?
그렇다. 좋아하는 티를 낸다. ‘썸타는’ 건 안 좋아한다. 썸타는 시간이 아깝다. 만날 거면 빨리 만나는 게 낫지, 밀고 당기며 간 보는 걸 싫어한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취미도 궁금하다. 유튜브에서는 주로 무엇을 보나?
뮤직비디오와 먹방을 즐겨 본다. 밴쯔, 떵개, 프란 등 먹방 채널은 굉장히 많다. 배가 고파서 대리만족하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심심할 때 습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을 검색할 때도 있나?
자주 검색한다. 오늘은 어떤 기사가 나왔고, 블로그에는 어떤 글이 올라왔는지 찾아본다.
박보람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다이어트가 뜬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감량할 수 있었나?
세상에 안 빠지는 살은 없는 것 같다. 그때 나는 어려서 살을 잘 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데뷔라는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절실했었고.
마지막 질문이다. 앨범 활동 기간이 인간적으로 너무 짧은 것 아닌가? 다음 앨범은 언제쯤 나올까?
올해 말에 나올지, 내년에 나올지,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모든 가수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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