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peration 랜드로버 코리아 Editor 정석헌
나와 당신이 오프로드에 들어설 일이 거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는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애초에 BMW X5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는 갈 길이 달랐다. 그 차이는 X5가 스포츠 쿠페 수준의 주행성에 오프로드 성능을 더하고, 레인지로버가 완벽한 오프로드 성능에 안락한 주행성을 더하는 데서 기인한다. 2002년 풀 모델 체인지된 3세대 레인지로버가 지난해 말 페이스리프트되면서 성능 면에서도 완벽을 기하고 있다.
길지 않은 다리로 힘겹게 오른 레인지로버의 ‘고위층’ 운전석. 탁 트인 시야로 세상을 굽어보니 지난 마감의 체증이 싹 가신다. 유난히 크고 각 진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바깥 풍경에 속이 후련하다. 뉴 레인지로버는 구분 동작으로 나누어 앉거나 폴짝 뛰어내려야 할 만큼 시트 포지션이 높다. 높은 자리도 그렇지만, 나무와 가죽 트림으로 멋을 낸 실내도 여전히 기품이 흐른다. 바뀐 게 있다면 ‘Supercharged’의 배지가 들어간 계기반과 센터페시아 주변 정도. CD 체인저는 2단 글로브박스로 옮겼고, CD 체인저가 있던 자리에는 AV 시스템과 프리미엄 내비게이션, 4×4 인포메이션 센터를 겸하는 모니터가 삽입되었다. HDC(내리막길 주행제어 장치)와 차고 조절 버튼은 터레인 리스폰스(Terrain Response,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와 함께 실렉트 레버 쪽으로 이동했다. 뒷좌석을 위해 헤드레스트에 마련된 6.5인치 모니터는 센터페시아의 모니터와 별개로 작동한다. 여전히 크고 투박한 스티어링 휠은 녹슬지 않은 핸들링 솜씨를 보여준다. 뛰어난 피드백과 정교함으로 소문난 속도 감응형 랙-피니언(rack-and-pinion) 파워 스티어링의 힘이다. 외모에도 변화가 좀 있다. 범퍼는 더 넓고 두꺼워졌고, 일체형 다이아몬드 메시 타입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전보다 강한 이미지를 풍긴다. 물론 엔진 냉각을 위해 가능한 한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파워 벤트 또한 그릴과 같은 다이아몬드 메시 타입. 여러 개의 원으로 구성된 바이제논 헤드램프를 작동시키니 한 번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인 후 적당한 높이로 맞춰지는데, 야간 운전 시 제몫을 톡톡히 한다. 20인치 알로이 휠 속의 고성능 4피스톤 브램보(Brembo) 캘리퍼와 네잎클로버 모양의 브레이크 등, 밖으로 더 튀어나온 트윈 머플러는 이내 심금을 울린다.
페이리스트된 레인지로버의 요체는 전격 교체된 엔진과 랜드로버의 상징이 된 터레인 리스폰스에 있다. 랜드로버에 따르면 V8 4.2ℓ 슈퍼차저 엔진은 기존의 V8 4.4ℓ 자연흡기 엔진에 비해 30% 이상 향상된 출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5750rpm에서 최고 출력 400마력, 3500rpm에서 57.1kgㆍm의 걸출한 토크를 발휘해 2.65톤에 달하는 레인지로버로 하여금 저회전수에서도 뜸을 들이거나 머뭇거리는 일 없이 민첩하고 속 시원하게 속도를 끌어올리게 만든다. 그 이면에 튼튼한 하체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커맨드 시프트 자동 6단 기어도 있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3500kg의 최대 견인력, 최대 750kg의 적재 하중 능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큰 자랑거리.
다른 온로드 중심의 SUV들과 달리 랜드로버 모델들과 오프로드는 애초부터 불가분의 관계였다. 뉴 레인지로버는 온로드 위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잘빠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최악의 오프로드에 들어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차고를 4가지로 조절하는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과 27cm의 오프로드 지상고는 기본. 디스커버리 3를 통해 선보인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오프로드 마니아가 아니어도 다양한 오프로드를 생각보다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터레인 리스폰스는 SUV가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오프로드 상황을 일반 주행, 눈길/초지/자갈, 진흙/패인 길, 모래 그리고 바위 오르기 등 5가지 모드로 나누어 그 상황에 맞는 운전 조건을 자동으로 설정할 수 있는 장치. 운전자는 그저 터레인 리스폰스 다이얼의 그림을 보고 상황에 맞는 모드를 ‘직관적으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몸을 맡기는 거다.
퇴근길에 집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려 산을 넘고 물을 건넌 것 또한 레인지로버의 직관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험한 길에서 작아지는 나와 달리 레인지로버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반나절을 함께 보내면서 문득 페이스리프트된 레인지로버 앞의 ‘NEW’라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레인지로버는 긴 세월, 고집스럽게 4WD 한 우물만 판 랜드로버의 변치 않는 상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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