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시간 내가 살아온 흔적, 만나고 교류한 많은 사람들과의 풍경을 한데 모았다고 보면 된다.”
비틀스의 팬이라면, 그리고 에릭 클랩튼 팬이라면 패티 보이드를 모를 수가 없다. 그녀는 영국의 모델, 사진가이며 조지 해리슨의 첫 번째 부인이자 에릭 클랩튼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조지와는 비틀스의 첫 영화 〈비틀스: 하드 데이즈 나이트〉 촬영장에서 만났다. 모델이었던 패티가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눈에 반한 조지의 열정적인 구애로 1965년 결혼식을 올린다. 조지는 패티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노래로 만들었다. 1969년 비틀스의 명반 〈Abbey Road〉에 수록된 ‘Something’을 두고 미국의 팝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송’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이 순조롭게 흘러가진 않았다. 조지의 바람기와 마약 문제 등으로 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고, 조지의 절친 에릭 클랩튼이 그녀 앞에 등장한다. 두 사람은 미묘한 관계가 된다. 친한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지는 다시 패티에게 돌아왔고, 에릭은 실연의 아픔을 1970년 ‘Layla’라는 노래로 표현했다. 1977년 조지 해리슨의 바람기에 지친 패티는 정식으로 이혼하고, 기타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린 에릭 클랩튼과 결혼한다. 외출할 때 늘 그녀의 치장을 기다려야 했던 에릭은 그 시간 동안 노래를 만들었다. ‘Wonderful Tonight’은 평생 염원하던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한다는 행복에 관한 곡이다. 애석하게도 이 사랑 또한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세기의 러브 스토리를 남긴 채, 패티 보이드는 카메라를 들었다. 4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열리는 〈Rockin’ Love〉는 그녀 삶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은 전시다. 세계를 뒤흔들던 패션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남자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사적인 모습, 사진가로서 그녀가 찍은 작품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온 패티 보이드와 마주했다. 있는 힘껏 올린 속눈썹과 경쾌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세계적 팝 스타의 뮤즈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일상의 어느 순간을 기록하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패티 보이드에게 사진은 일상의 기록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나 역시 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을 기록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피사체와 그를 둘러싼 분위기를 ‘캡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일상의 기록이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은 순간을 기억하나?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카메라를 빌려서 촬영하곤 했는데 이제 완전히 내 것을 살 수 있게 돼서 무척 기뻤다. 내가 모델로 활동을 하던 열여덟 살 무렵이었다.
카메라는 여러 종류를 사용하나?
대부분의 사진가가 그렇겠지만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늘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는 캐논 G10이다. 작고 가벼워 어디든 휴대할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특히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런던을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는 그 시대가 음악과 패션을 비롯한 문화가 엄청나게 발전한, 굉장히 낭만적인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회상해본다면?
1960년대는 모든 분야에서 창의력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달랐다. 패션, 사진, 영화, 디자인 그리고 메이크업조차 새로운 표현법이 대거 등장했다. 젊은이는 대담한 컬러와 디자인을 사랑했고, 무엇이든 시도했다. 런던은 이 변화의 중심에 있던 도시라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이 사랑과 섹스가 일치한다고 생각한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그래서 피임약이 처음으로 합법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사랑과 섹스가 같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당시엔 그랬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중 누가 더 모델로서 괜찮은가?
에릭 클랩튼이 옷도 멋지게 잘 입고 포즈도 잘 취해준다. 하지만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한 번은 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반면 조지 해리슨은 무심하게 찍힌 사진이 꽤 많다. 그의 사진은 내가 훔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장난치거나 평온하게 있는 모습 등을 많이 찍었다. 두 사람 외에도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을 많이 찍었는데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로니 우드, 비틀스의 링고 스타가 솔로 투어를 앞뒀을 때 내가 사진을 찍어준 것이 기억난다.
톱 모델이었고 세기의 뮤지션과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랑에 빠졌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멋진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묻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음, 아마 공부를 좀 더 했을 거다. 당시 학교에서 가드닝을 전공했는데 배우다 말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가든 디자인 같은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에 관심이 많으니까 파인 아트를 공부해도 좋았을 것 같고. 어쨌든 뭔가 쓸모 있는 것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당신의 사진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문화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될 것 같다. 관람객에게 이 전시의 주제를 전달하고 싶다면?
내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사진전이다. 열여덟 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1960년대 사진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최근에 작업한 사진도 있다. 퀸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를 찍은 사진이 있는데 3년 전의 작품이다. 아주 긴 시간 내가 살아온 흔적, 만나고 교류한 많은 사람들과의 풍경을 한데 모았다고 보면 된다.
당신은 트위기(Twiggy), 진 슈림프턴(Jean Shrimpton)과 함께 1960년대 영국 패션을 대표하는 모델이었다. 요즘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다면?
우아하면서도 약간 위트가 가미된 룩을 좋아한다. 지금 입은 옷도 단정한 검은색 니트 같지만 소매 부분이 과감하게 트여 있는 디자인이다. 오늘 처음으로 서울에 왔는데 다들 미세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기자회견장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해봤다. 모두 웃음을 터뜨릴 줄 알았는데 당황해서, 나도 당황했다. 하하.
누군가 당신의 사진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뭘까?
내 사진을 그저 바라보고 그 순간을 즐긴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전을 여는 이유도 그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행복해하며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 그것이 내 작품 세계에 대한 가장 큰 찬사가 아닐까 싶다.
이번 사진전의 제목은 ‘Rockin’ Love’다. 그리고 부제는 ‘팝 역사상 가장 위험한 뮤즈’다.
전시 제목은 사실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로큰롤’이라고 하는데, 내 사진의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 이런 제목을 지은 것 같다. 그리고 난 부제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 와우, 정말 너무나 맘에 든다!
당신은 왜 위험한 뮤즈인가?
아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단숨에 나와 사랑에 빠져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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