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말한다. 이 인터뷰는 조금 다르다. 윤상에게 물었지만, 그동안 윤상에게 궁금해했을 법한 질문은 없다. 윤상이 답했지만, 그동안 윤상이 답한 내용과도 다르다. 그의 음악적 성취가 궁금한 사람은 당황할지 모른다. 더불어 음악가를 넘어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그의 자세가 궁금한 사람 또한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윤상 인터뷰인 건 맞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아는 윤상은 이곳에 없다.
이유가 있다. 윤상과 에디터 사이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아들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사는 윤상의 아들, 이찬영. 아들과 함께 선 윤상은 그냥 홀로 에디터 앞에 선 윤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를까, 싶었는데 달랐다. 윤상은 아들과 함께 인터뷰에 나섰다. 애초에 촬영도 아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다. 둘에게 특별한 시간이 생긴 까닭이다.
찬영이 혼자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예전에는 엄마와 함께 왔다. 혼자서 아빠와 함께 열흘을 보내기로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윤상도, 찬영도. 윤상은 특별한 시간을 더 특별하게 채우기 위해 둘만의 촬영을 기획했다. 윤상이 말한다. “일본에 같이 가는 게 가장 큰 이벤트고, <아레나> 인터뷰도 굉장히 의미가 깊어요. 얘가 한국 나이로 중학교 1학년이거든요. 대견하죠. 저는 이 나이 때 혼자서 어딜 다녀본 적도 없으니까. 과거 상황 자체를 기억하는 시기가 전 중학교 때였어요.” 윤상은 지금 둘이 함께 있는 이 순간을 기억하길 바라는 눈치다. 그러면서 자기가 평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상황도 미안해한다. 인터뷰 시작부터 윤상은 짠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도 함께 머금으면서. 그 순간, 이번 인터뷰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이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윤상과 아들의 특별한 순간에 가교 역할만 해주면 그뿐.
가만히 생각해본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다. 요즘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지 않나? 하지만 윤상과 아들은 몇 달에 한 번씩만 얼굴 보는 관계 아닌가. 열흘이라는 한시적 시간은 봄날 소풍처럼 설레기에 충분하다. 봄방학 맞아 한국에 온 찬영보다 윤상이 더. 미안한 마음을 품은 그에게 아들과 보내는 열흘은 자는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이 윤상의 표정에 드러난다. 이건 빤한 수사가 아니다. 그가 말한다. “이번 기회에 자연스러운 찬영이 모습을 볼 수 있겠죠. 밤에 같이 자면서 엄마와 같이 있을 때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듯한데….” 아빠와 아들만의 비밀이라도 간직하길 고대하는 표정이다. 말하지 않아도 뒷말이 생생하게 들린다. 더 들어볼까 했는데, 아들 걱정으로 이어진다. “운동(수영)을 해서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요. 학교 가기 전에도 어쩔 땐 계속 훈련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게임을 좋아해도 주말에 잠깐밖에 못 해요.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나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죠.” 찬영을 바라보는 윤상의 눈에 애틋함이 담긴다. 눈을 통해 감정이 실체로 드러나는 광경을 목도하는 기분이라니.
한참 윤상의 바람을 듣다가 찬영을 바라본다. 찬영 나름대로 기대하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찬영에게 인터뷰는 낯선 상황일 거다. 비록 아빠와 함께 있지만, 오히려 함께 있어서 더. 윤상이 분위기를 만든다. “편하게 얘기해, 찬영아.” 그렇다고 술술 얘기할 리 있나. 쑥스러운 듯 찬영이 머뭇거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딱히 뭘 생각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는 답변도 깔아두면서. 그러다가 툭, 본심이 나온다. “한국에서 아빠가 음악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싶어요.”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찬영의 말. 특별한 열흘을 풀어갈 단초다. 윤상도 아들의 계획은 처음 들어본다. 그도 호기심에 자세를 바꿔 잡는다. “그 얘기 좀 해봐. 나도 궁금해.”
윤상에겐 내심 반가운 소리였나 보다. 일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건 언제나 아버지에게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음악 만드는 작업을 궁금해하니까. 이유가 있다. 윤상이 말한다. “엄마가 음악을 아예 안 들어요. 저와 음악 얘기를 안 하는데 얘를 보면 진짜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걸 느껴요. 얘가 스스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가 덧붙인다. “운동도 하는 상황에서 음악까지 하면 너무 부담스러울 듯해 지금은 그냥 자유롭게 듣게 놔두는 편이에요. 나중에 정말 원하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찬영이 먼저 손을 내민 거다. 물론 호기심이 먼저 작용했겠지만. 윤상이 웃는다. “이번에 하루는 작업실에 가보자.”
음악 얘기가 나오니 윤상이 오히려 아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진다. 좋아하는 음악가라든지, 음악을 만드는 게 재미있는지. 그러면서 찬영이 자신과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고 뿌듯한 기색도 내비친다. 아들에 관해 얘기하는 윤상의 얼굴에서 여느 아버지가 떠올랐다. 마냥 자랑하고픈, 매번 핏줄이 신기한. 그걸 바라보는 에디터 마음도 왠지 뭉클했다. 윤상의 마음이 전해져서. 아들이라는 존재 앞에서 윤상은 우리가 알던 윤상과 다른 빛깔이었다. 몇 도는 훌쩍 높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퍼진다. 묻지 않아도 지금 기분을 알 정도로 확연하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거워 감출 수 없는 표정. 앞으로 보낼 시간에 대한 기대감도 담겼을 테다.
윤상도 예전에는 막연하게 두려웠다고 한다. 처음부터 지금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본 건 아니란 얘기다. 윤상이 말한다. “얘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빠가 되는 게 너무 무서웠죠. 제가 아빠와 오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 더.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니 잘 커주니까 고맙더라고요. 오히려 얘가 내 인생에 없었으면 어떨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가 덧붙인다. “사실 예전엔 가족의 의미도 잘 몰랐어요. 제가 외아들이기도 했고. 그래서 애들하고 만난 일이 저한테는 음악을 시작한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죠. 걱정하기보다 감사하며 받아들이면서 살아야죠.” 이상적인 답변이 술술 나온다. 앞서 확인한 표정의 근원을 따라가면 고마움이라는 감정에 다다른다. 윤상은 아들이라는 존재가 고마울 따름이다. 자기를 변화시킨 존재는 언제나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나.
윤상은 가족과 떨어져 살기에 그 의미가 더 소중하다. 그런 존재를 매일 볼 수 없는 상황이니 감정이 더욱 풍성해진다. 윤상도 동의한다. “애들이 커나가면서 달라지는 변화, 눈빛 같은 건 같이 산 아빠보다 오랜만에 봤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힘을 얻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이란 문장은 그에겐 비유가 아니다. 해서 그 변화는 극적이다. 어느 순간 말이 통하게 된 아들을 만나는 기쁨이랄까. 그가 말한다. “5년 전만 해도 안 통하던 얘기가 통하는 거예요. 굉장히 감동적이었죠.” 좋아하는 음악가를 서로 얘기하는 즐거움은 윤상에게는 희대의 명곡보다 값질 테다.
이런 감정은 윤상에게 고스란히 쌓였다. 그 말은 그 감정이 언젠가 음악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윤상 역시 그 순간을 기다린다. 아마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될 듯하다. “‘기러기’ 생활을 시작하고 앨범을 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 아마 올해 낼 앨범에는 그런 감정이 배어 있겠죠. 기러기 생활을 하며 싱글만 냈는데, 올해는 그런 기분을 담아서 정리해야겠어요.”
앨범을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찬영은 아빠의 앨범을 어떻게 들었을까? 윤상이 굳이 찾아서 들려주진 않았겠지만. 찬영이 말한다. “가끔씩 들어요.” 본격적인 답이 나오기 전에 윤상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이건 내가 없어야지…. 아빠 잠깐 나갔다 올까?” 한참 웃던 찬영이 툭, 답한다. “다른 사람같이 보여요. 말하는 목소리랑 다르니까요.” 모두 그냥 웃을 뿐이다. 더 집요하게 질문할 의욕이 무장해제된다. 대신 열흘 동안 윤상이 해주길 바라는 일을 하나 더 꺼내놓는다. “아빠가 만들어주는 카레.” 윤상은 호기롭게 답한다. 물론 카레 레시피를 찾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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