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기성율 cooperation 마틴 마르지엘라 Editor 이지영
비록 뮤지컬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토요일 밤의 열기>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1977년 영화로 만들어져 단숨에 존 트라볼타를 할리우드 대스타로 만든 이 작품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리치 블랙셀은 그 열기에 탑승한 채 누구보다 뜨거운 토요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런던팀 프로덕션 매니저를 맡고 있는 그는 매일 밤 공연장에 머무른다. 조명, 음향, 무대 감독을 두루 거친 그의 약력은 ‘프로덕션 매니저’라는 이름 아래 더욱 빛을 발한다. 토요일 밤, 우리들이 공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까지, 혹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오로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까지 그의 노고는 사이키 조명처럼 빛난다. 누구보다 공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물었다. “토요일 밤에 뭐하세요?”
‘프로덕션 매니저’라는 당신의 직함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체결되는 모든 계약을 두루 책임진다. 공연 자체에 대한 계약, 스태프와 배우들의 계약, 공연장 대관에 대한 계약 등 모든 일에 관여한다. ‘프로덕션 매니지먼트’, ‘제너럴 매니저’라 불리는 이유다. 전체적으로 ‘쇼를 딜하는 일’이 내 몫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 내한 공연을 위해 당신은 또 한 번 ‘딜(deal)하는’ 과정을 겪었겠다.
물론이다. 일단 극장을 먼저 보기 위해 지난해 내한했다. 여러 극장을 두루 살펴본 뒤 그곳에 이 공연이 어울릴 것인가를 가늠한다. 음향, 조명, 설비 등 모든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극장이 결정되고, 지난 12월경에는 홍보차 또 한 번 내한했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번 공연을 올리면서 장기간 머물고 있다.
당신에게는 낯선 나라를 드나드는 일이 익숙하겠다.
공연을 해외에 올리다 보니 그게 생활이 된 부분이 있다. 일본에도 7, 8번 공연을 올린 적이 있다. 대학에서 무대 매니지먼트를 전공하고, 작은 규모의 공연팀에 들어간 것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다 갖가지 공연을 해외에 올리면서 나의 무대 역시 넓어진 거다. 그러기를 벌써 10년이다. 런던 웨스트 앤드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약 10개국은 방문한 것 같다.
당신이 하는 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아는 분야가 이것밖에 없어서 이 일을 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 그게 열정으로 바뀌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커튼이 올라갈 때,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할 때, 공연이 끝난 후 박수가 터져나올 때,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아마 그건 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이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일단 준비 과정에서 힘든 일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제나 재정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상태에서 스태프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질 경우, 그걸 해결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고, 그들 전체를 핸들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은 아니다.
아마도 당신은 꽤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여야 할 것 같다. 프로덕션 매니저가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의사소통 능력, 다음은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는 거다. 나 역시 조명, 무대, 테크닉에 관한 모든 부분을 한 번씩 경험한 적이 있다. 어떤 분야를 맡기든, 어떤 분야에서 사건이 터지든 본인이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그래야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웃음) 그리고 또 하나. 유머가 필수요소가 아닐까 싶다.(웃음) 전체적인 진행에서 놓치는 부분이 없어야 하면서, 동시에 여러 분야를 아우르려면 유머와 스마일이 기본이다.
당신의 하루 24시간은 어떤가? 혹은 당신의 1년은?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바쁠 것 같다.
보통 공연 중과 공연 준비 중일 때가 많이 다르다. 공연 중일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의 스케줄을 짜고 극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보통 공연 오픈 4~5일 전에는 셋업 기간을 갖는데 그런 때는 아침 8시부터 짐을 내리고 무대 설치를 하는 등 새벽까지 일이 이어진다. 1년 스케줄은 하루 스케줄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보통 1년에 3~4개의 공연을 올리고, 또 내년에 진행될 3~4개의 공연에 관한 계약 과정이 맞물린다. 올리비아 어워드 총감독을 맡고 있는 일도 내게는 큰 의미다. 1년에 한 번은 시상식을 총괄하는 거니까.
<토요일 밤의 열기> 주인공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춤으로 푼다. 당신은 어떤가? 주인공들처럼 춤과 음악으로 해소하는 부분이 있나?
하하. 나도 그럴 수 있는 끼와 열정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저 혼자 기타 치는 거 좋아하고, 시간이 나면 암벽등반을 한다. 암벽등반을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다.
토요일 밤에는 뭐하나?
보통은 공연장에 있다.(웃음) 공연이 끝나면 스태프들과 간단히 술을 마실 때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토요일을 즐기지는 못한다. 공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말은 매우 바쁜 날이니까. 공연이 없는 토요일엔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번 토요일엔 런던에 가 있겠다. 그동안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웃음)
당신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달라.
마지막 질문인가? 꽤나 어렵다.(웃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워낙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짜온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내가 관심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이쪽 분야여서 매달리다 보니 직업이라는 틀 안에 들어오게 됐을 뿐이다. 거창한 계획 따윈 없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다가,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줄 만한 뭔가가 생기면 그때 생각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모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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