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헬카페 스피리터스
보광동에 있던 헬카페 1호점은 음악으로 손님을 밀고 당기는 공간이었다. 헬카페의 공동 대표 임성은은 손님의 눈앞에서 따라주는 클래식 카푸치노와 매일 직접 만들어 파는 티라미수 못지않게 음악 선곡에 신경 썼다. 탄노이 스피커를 놓고는 키스 재릿부터 ECM 레이블의 음반, 서태지와 송대관의 노래까지 종잡을 수 없는 선율을 뽑아내며 대표이자 바리스타이자 DJ 역할을 했다.
이촌동에 문을 연 헬카페 2호점, 헬카페 스피리터스는 보광동 헬카페의 정신을 이어받는다. 보광동 헬카페와 달리 오후 8시까지는 카페로 운영하고, 이후 새벽 2시까지는 바로 변신하는 공간이다. 임성은, 권요섭, 이훈 바리스타의 카페와 서용원 바텐더의 바가 공존한다. 짙은 갈색 나무 테이블, 의자들과 함께 거대한 클립쉬 혼 스피커를 두고 쓴다. 바 테이블 위에는 생화 한 줄기를 꽂고 재생되는 레코드의 커버를 올린다.
화장실에도 음악을 틀어놓는다. 보광동 1호점보다 한층 더 극진하고 정성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리에 앉으면 따뜻하게 데운 물수건을 내고, 눈앞에서 라테와 카푸치노를 부어주고, 식기 전에 꼭 두 모금을 마시라 권한다. 커피잔은 두께감과 촉감까지 신경 써 제작해 손에 쏙 들어온다. 모든 요소가 요란하지 않고 세심하다. 음악 역시 보광동 1호점보다는 조금 얌전해졌다. 일과를 시작하는 오전에는 클래식을 틀고 오후에는 짐 홀과 팻 메스니, 찰리 헤이든 등의 재즈 음악이나 보사노바를 흘려보낸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248 한강맨션 31동 208호
문의 070-7612-4687
2 모어댄레스
모어댄레스는 미니멀리즘과 문화적 만족감이라는 콘셉트 아래, 국내외 여러 브랜드 제품들을 소개하는 편집매장이자 디자인 스튜디오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보난자 커피를 국내에 유통하고 판매한다. 보난자 커피의 명성 때문에 이곳을 ‘카페’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어댄레스는 커피뿐 아니라 음악, 전시, 책과 그 밖의 제품들을 꾸준히 다룬다. 품질과 전문성은 물론 가치도 있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모여 있다.
보난자 커피 역시 이와 같은 방향에 잘 부합한다는 이유로 선택됐다. 맛있는 커피, 멋진 공간, 질 좋은 아이템만큼이나 모어댄레스가 중시하는 것은 음악이다. 음악은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니까. 모든 음악은 클럽 미스틱에서 활동하는 DJ 앤트워크(Antwork)와 의논하여 선정한다. 계절, 날씨, 시간과 그 당시의 분위기에 적합한 음악으로 트는데 대체로 오전에는 차분한 앰비언트 음악을, 오후에는 하우스나 슬로 템포의 음악으로, 분위기가 고조될 때는 누 디스코 계열의 음악으로 공간을 메운다.
“햇살 쏟아지는 일요일 낮. DJ들이 좋은 음악을 틀어주고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전시를 관람하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기획 초기부터요.” 두 대표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일요일 낮에는 입구 쪽에 마련한 DJ 부스에서 매주 다른 DJ들이 음악을 튼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49길 24
문의 070-4113-3113
3 웝트샵
이름난 카페와 편집매장, 바와 레스토랑이 저마다 어깨를 으쓱거리는 한남동 골목에서 가장 생경한 풍경은 바로 웝트샵의 쇼윈도다. 노 웨이브와 해브어굿타임 등의 의류 레이블과 제품을 소개하는 가게의 쇼윈도에 옷이 아닌 DJ 부스가 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한남동에 오프라인 숍을 연 웝트샵은 아직 국내에 생소한 미국, 호주, 일본 등 다양한 독립 의류 브랜드를 소개한다.
웝트샵이 취급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음악과 관련 있다. 재즈 크루인 오닉스 컬렉티브의 머천다이즈와 함께 DJ 크루들이 만든 공연 포스터를 활용한 펠비스의 티셔츠, 예술과 음악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라디오 스테이션인 노 웨이브의 제품 등을 판매한다. 가게의 방향성과 어울리도록 웝트샵은 쇼윈도에 만들어둔 DJ 부스에서 2주에 한 번씩 온라인 온-에어 방송, 디제잉 라이브 스트림을 진행한다. 라이브 스트림의 이름은 퍼피 라디오.
파티 크루 딥코인 소속의 프로듀서 말립과 가수 오존 등이 함께하는 온라인 온-에어 디제잉으로 2시간 동안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한다. DJ가 음악을 트는, 서울 유일의 패션 편집매장이다. 한쪽에는 일본의 DJ 라이트가 내놓은 5백 장 가량의 싱글 바이닐도 놓여 있다. 평소에는 주로 힙합 혹은 DJ 믹스세트를 튼다. 디제잉을 연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와서 플레이할 수 있다. 단 바이닐로 해야 한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42길 26
문의 070-7808-0852
4 이피 커피앤바
이피 커피앤바는 요즘 연남동의 번잡함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굳게 닫힌 강철 문을 스륵 열면, 실내를 가득 메우는 소리가 후룩 쏟아진다. 오전에는 클래식 라디오가, 오후에는 솔 혹은 전자음악이, 새벽으로 향하는 늦은 밤에는 조금 더 ‘딥’한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이피 커피앤바는 커피와 칵테일, 위스키,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이자 바다. 대리석 테이블이나 브라스 소재 조명과 같이, 소위 ‘트렌드세터’들이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만한 요소는 전무하다.
다만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와 스페이스 에이지의 디자인,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집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이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할 뿐이다. 모두 두 대표가 각각 수집하여 소유하고 있던 사물들이다. 음악은 두 대표의 완벽한 통제 아래에 둔다. 공간감이 좋고 완성도 높은, 귀에 쉽게 거슬리지 않는 음악으로 엄선한다. 음악이란 결국 감출 수 없는 것이라 더욱 신경 쓴다. 보기 싫은 건 등을 돌리고 안 볼 수 있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오픈 초기에는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턴테이블을 떡하니 놓아두고 LP로 음악을 틀었다. 번번이 판을 갈아 끼워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한 그때처럼 지금도 틀어둔 곡이 끝나갈 때면 칵테일을 만들다가도 다음에 틀 음악 생각을 한다.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에 따라 한 곡 단위로 섬세하게 플레이리스트를 고른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0-6
문의 070-4791-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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