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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는 아이러니

산이에게 물었다. 래퍼인데 바른 사람으로 보이는 건 득일까, 실일까?

UpdatedOn February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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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색 재킷과 티셔츠는 모두 HSH, 귀고리와 반지는 모두 저스틴 데이비스 제품.

형광색 재킷과 티셔츠는 모두 HSH, 귀고리와 반지는 모두 저스틴 데이비스 제품.

래퍼라면 이래야 한다. 누구도 정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그림이 있다. 산이는 그 틀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다. 그는 랩이라는 마법진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를 오갔다. 심지어 래퍼로서 공익광고에도 출연했다. 세상에나, 래퍼인데 반듯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산이는 래퍼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자기가 지금 하고 싶고, 해야만 할 이야기를 던질 뿐이다. 그에게 래퍼라는, 래퍼이기에, 래퍼니까, 하는 추임새는 부연일 뿐이다. 그냥 랩을 통해 지금 생각을 전할 뿐이다. 단, 솔직하게. 요새 바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근 몇 년이 가장 바빴을 듯하다. 재작년인가, <쇼미더머니 4> 출연할 때가 제일 바빴다. 그때 앨범 작업도 같이 했으니까. 작년 목표는 재충전하고 업그레이드할 시간을 보내는거였다. 근데 쉬기만 했다. 좀 많이 쉬었다. 그래도 현재 앨범 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다. 열심히 일하려면 잘 쉬어야 한다. 2016년에 잘 쉬었으니 후회는 없겠다. 아니다. 아쉬움이 많은 한 해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전에는 1년에 히트 곡 서너 개씩 나왔는데 2016년에는 그럴 만한 곡들을 만들지 못했다. 요즘엔 1년만 지나도 노래가 오래돼 보이잖나. 음악적으로 잘 못한 거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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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가 화려한 점퍼는 베르사체 진, 바지는 부르즈수르트, 목걸이는 저스틴 데이비스, 구두는 로스트가든, 검은색 티셔츠와 팔찌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늬가 화려한 점퍼는 베르사체 진, 바지는 부르즈수르트, 목걸이는 저스틴 데이비스, 구두는 로스트가든, 검은색 티셔츠와 팔찌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대한 솔직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얘가 이런 일이 있었고 거기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했구나, 하고 공감해주시긴 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MC 등 방송 활동으로 바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은 음악 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 MC가 별것 아니라는 게 아니다. 난 원래 음악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음악을 잘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원래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 그래서 MC도 해봤는데 많은 분이 재밌게 봐주셔서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레나>에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 않나.

 

새 앨범을 공개하기 직전이다. 앨범 내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기분이 어떤가?

지금까진 일단 타이틀 곡을 만들고 나머지 곡을 모았다. 그러다 보니 앨범 콘셉트를 정하려 할 때 조금 어렵더라. 아무래도 억지로 녹이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앨범 구성과 전체 콘셉트를 미리 정했다. 그러느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초공사를 잘해야 좋은앨범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해서 먼저 구성하고 음악을 만들었다. 이번 앨범은 솔직한 이야기,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공이 미술이다 보니 예술적 느낌도 많이 녹이고 싶었다. 이제는 성장보다는 성숙해야 할 때다. 단순히 히트 곡이 있는 앨범이 아니라, 당연히 히트 곡이 있으면 좋지만, 내 자서전 같은 완성도 있는 걸 만들려고 노력했다. 


예전에는 애초에 콘셉트를 정하고 앨범 작업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나?

상황보다는 그렇게 만드는 건지 내가 잘 몰랐다. 그냥 이게 꽂히니까 이거 해야지, 하고 집어넣었다. 나중에 어떻게든 버무려보자 했다.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본 거다. 나도 싱글은 여럿 냈지만 앨범 자체를 많이 내지는 않았으니까. 배워가는 중이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서 이번 앨범을 완성하기까지 힘들기는 했다. 그래도 도전하는 의미가 있어서 재밌었다.

솔직함이라는 게 방대하잖나. 앨범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넣으려 했나?
소설책 보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있잖나. 그런 것처럼 내 인생의 각 시기를 나눴다. 그래서 발단은 교만의 시기로, 내가 교만했을 때 얘기. 그리고 전개는 타락의 시기로, 교만을 넘어서 내가 타락했을 때 얘기. 그리고 중심이 되는 위기와 절정은 고난의 시기다. 고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내가 힘들었을 때를 다뤘다. 그리고 결말은 회복의 시기다.

서사시처럼 쭉 훑어 내려갔다.
전체적인 앨범 재킷 분위기도 자서전이나 내가 믿는 기독교의 느낌을 많이 녹이려고 했다. <쇼미더머니 5>에서 비와이 같은 친구가 종교적 이야기를 멋있게 하는 걸 보면서 나보다 더 깊고, 더 바르고, 더 배울 게 많다고 느꼈다. 내가 그 고난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신앙이었다. 그래도 결국 내 이야기다. 갑자기 너무 잘되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 점점 나 자신이 힘들어지더라. 나 스스로도 잘못이라는 걸 아는데 어디서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지 몰랐다. 충고해주는 사람도 줄었고. 나 스스로 담을 쌓아서 가족이 나를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도 많이 받고, 약도 먹어보다 극복의 시기로 넘어갔다. 이런 과정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자기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는 셈이다. 앨범을 통해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부담스럽진 않나?
솔직한 생각을 쓰고 싶은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언더’에 있을 땐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은 많은 분이 지켜보고 들어주시니 한마디 할 때마다 조심스러워지더라. 그렇게 변화하니 자꾸 틀을 만드는 단점이 생겼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쓰면 안돼, 하면서 만들면 나중에 재미도 없고 느낌도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그래서 최대한 솔직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얘가 이런 일이 있었고 거기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했구나, 하고 공감해주시긴 한다.

 

“씨잼이나 비와이가 하는 랩도 멋있고,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여러 친구들이 하는 랩도 멋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그 친구들만의 영역이다. 내가 그들과 똑같이 하면 별로 재미없다. 힙합도 색깔이 되게 다양하다. 그래서 힙합이 재밌다.”

귀고리는 저스틴 데이비스, 재킷·셔츠·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귀고리는 저스틴 데이비스, 재킷·셔츠·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귀고리는 저스틴 데이비스, 재킷·셔츠·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위빠남, 신발은 로스트가든, 머플러는 이디엇, 목걸이는 아르겐,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위빠남, 신발은 로스트가든, 머플러는 이디엇, 목걸이는 아르겐,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위빠남, 신발은 로스트가든, 머플러는 이디엇, 목걸이는 아르겐,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산이의 음악을 들으면 스펙트럼이 넓다고 느낀다.

요즘 랩을 하면서도 옛날 랩 느낌도 들어 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내가 억지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야지 한 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음악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런 거 보면 난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 시계 자랑, 차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원래 힙합은 그래야 멋있고, 나도 그런거 좋아한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하는 친구들이 많고, 어느 순간 이제 나랑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나만의 색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힙합 트렌드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항상 그런걸 공부하지만, 이미 다른 친구들이 잘하는 영역이니 내가 쫓겨서 뭐라도 보여주려고 하면 내 색깔이 없어질 거 같다. 결국 각자 개성이 있어야 하잖나. 산이라는 아티스트만의 다른 영역,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싶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지금 시대의 주류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씨잼이나 비와이가 하는 랩도 멋있고,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여러 친구들이 하는 랩도 멋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그 친구들만의 영역이다. 내가 그들과 똑같이 하면 별로 재미없다. 힙합도 색깔이 되게 다양하다. 그래서 힙합이 재밌다. 내 색깔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트렌드와 멀어지지 않아야 한다.

한글 공익광고에 나온 걸 보면서 신선했다. 영어를 많이 쓰는 래퍼가 한글 공익광고에 출연했다. 광고 출연 제의받았을 때 어땠나?
나도 고민했다. 내가 랩에 영어를 엄청나게 혼용하는 건 아니지만, 바른 한글을 쓰지도 않으니까 제의받았을 때 의아하기도 했다. 광고속 가사를 내가 쓰진 않았다. 내용을 받아 랩으로 만든 거다. 보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어서 많이 얘기했다. 사실 줄임말이나 ‘ㅋㅋ’ ‘ㅇㅇ’은 일상에서 너무 자주 쓰니까. 뭘 어떻게 바꿀 수 없잖나. 그쪽에서도 이런 공익광고를 통해서 바른 말을 쓰도록 경각심을 주는 것 정도가 목표라고 하시더라. 광고에 ‘나부터 반성’이란 구절도 나온다. 나도 하면서 반성하고 한글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하긴 하더라. 앞으로 아무 말도 못 쓰는 거 아니냐고. 

신선한 또 다른 이유는 이제 래퍼가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공익광고 쪽에서도 이게 나름 파격이라고 하더라. 랩 하는 공익광고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난 너무 즐겁게 작업했다.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바른 사람은 아니다. 술 마시면 실수도 하고 욕도 하고 나쁜 짓 할 때도 있고 그러고 나서 반성도 한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내게 바른 이미지가 있어서 이렇게 공익광고에 출연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 기회도 됐다. 물론 조금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어쨌든 바른 이미지의 래퍼가 됐으니까.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래퍼 중에선 바른 사람으로 보인다.
어릴 때, 언더에 있을 땐 건방진 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생각에 괴리감을 느꼈다. 정말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어릴 때는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건너와 미국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으니까. 미국에선 래퍼가 (두 발을 탁자에 올리고) 이렇게 인터뷰하는게 매너 없는 행동이 아니다. 진짜 친구처럼 얘기하는 거다. 한국에 있으면서 사회생활 예절 등을 배우다 보니 그러지 않는 게 편해지더라.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힙합 요소에 그런 면이 많다고 꼭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서른 살쯤 많이 했다. 한 살씩 먹어가면서 철든 거랄까.

자신이 변한 것을 보며 놀라나?
자연스레 변하면서 그대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멋이다. 스무 살 때는 스무 살의 생각을 말하고, 서른일 때, 서른다섯일 때, 마흔일 때, 그 순간에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게 힙합적인 것이고 멋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나이 들고 예전에 말한 걸 실수라고 말하더라도, 당시에는 솔직했기에 후회하진 않는다. 후회하는 게 제일 안 좋은 거다.

“서른일 때, 서른다섯일 때, 마흔일 때, 그 순간에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게 힙합적인 것이고 멋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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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덕화
STYLIST 김보성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박장연(에이바이봄)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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