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너블한식당|닭볶음탕
간판도 내달지 않은 가게로 사람들이 속속 들어갔다. 경사진 언덕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가게. 가까이 다가가면 ‘리즈너블한식당’이라 적힌 종이가 유리문에 붙어 있다. 빵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장이 홀로 주방을 지키는 이곳은 2016년 9월에 문을 열어 4개월째 가오픈 중이다. 간판은 왜 달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게을러서”라고 답하는 사장은 시간을 진득이 들여야 겨우 한 접시가 완성되는 요리를 손님상에 낸다. 주물 냄비에서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내는 닭볶음탕도 그중 하나다.
양념으로는 텁텁한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 케이준 파우더를 쓴다. 덕분에 첫술은 더없이 산뜻하다.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매운맛이 아닌 기분 좋은 알알함이 느껴진다. 국물에서 익숙한 감칠맛을 느꼈다면 밴댕이의 맛을 아는 사람일 테다. 육수는 밴댕이부터 양파, 다시마, 멸치, 파뿌리 등을 잔뜩 넣고 팔팔 끓여 만든다. 식사 대신 술을 즐기러 왔노라 말하면 육수를 평소보다 넉넉히 부어준다. 화요, 문배술, 매실원주, 솔송주 등 술도 다종다양하다.
가격 2만3천원
주소 서울시 중구 만리재로35길 50
문의 02-363-5008페어링룸|스파이시 치킨 가라아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 상투적인 이 표현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페어링룸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사람들의 정수리에 흥건하게 고인 노란 불빛, 시야를 은밀하게 가리는 잿빛 레이스 커튼, 구석진 자리에서 껴안고 있는 커플 한 쌍, 지극히 클래식한 인테리어에 다분히 모던한 조명까지. 밑창이 해진 운동화 대신 매끈한 구두를 꺼내 신은 날 찾아가고 싶은 곳이랄까.
우아한 칼질만 오갈 것 같은 이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식 닭 요리, 가라아게를 튀긴다. 한입 베어 물면 얇은 튀김옷이 바스락 찢어지고 백숙처럼 촉촉한 고깃덩어리가 입안에서 꿀떡꿀떡 넘어간다. 소스 없이 먹더라도 단박에 입이 즐겁지만 접시 바닥에 퓌레처럼 푸짐하게 깔린 파 페스토를 같이 곁들이면 가라아게의 잠재력이 더 살아난다. 여기에 씁쓸한 홉 향을 진하게 풍기는 에일 맥주까지 있다면 맛의 2부가 시작된다. 페어링룸의 조명은 대체로 조도가 낮다. 낮에 찾더라도 잘 뚫어놓은 갱도처럼 빛이 희미하다. 고로, 낮달이 밝은 그때부터 부지런히 술상을 차릴 수 있다.
가격 2만4천원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81길 14
문의 010-3100-8861
차이린|구수계
차이린의 식구들은 1년에 두 차례 중국 각지로 요리 견습을 나선다. 산둥, 광둥, 쓰촨, 후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진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 자리에서 맛을 검증하고, 국내에 기꺼이 소개하고 싶은 맛이라면 레시피를 공수해 다시 훌훌 돌아온다. 발품 팔아 완성한 요리는 그대로 메뉴판에 그 이름을 올린다.
1년에 7, 8가지 요리가 새롭게 등장하지만 그중 살아남는 요리는 고작 한두 가지다. 여러 선택지 속에서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버틴 요리는 바로 구수계다. 입에 침이 돌게 하는 닭이라는 뜻의 이 요리는 쓰촨이 고향이다. 젓가락을 휘적여 죽순, 고수, 땅콩, 대파를 걷어내면 붉은 고추기름에 빠진 하얀 닭고기가 등장한다. 정신없이 매워 보이지만 야들야들한 닭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가져가면 의외의 담백함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고슬고슬 갓 지은 밥에 고추기름을 몇 방울 톡톡 뿌려 먹으면 구수계 한 대접을 깨끗이 비워낼 수 있다. 매콤하고 기름지니 당연지사 고량주와 궁합이 좋다.
가격 3만원
주소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112길 10
문의 02-543-2847주반|라즈다니 익스프레스
인도에는 종종 식사가 나오는 기차가 있다. 인도의 크고 작은 도시를 왕복하는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도 그중 하나다. 허름한 다가구 주택과 기울어진 상점들이 풍경을 구성하는 필운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를 파는 주점이 나타난다. 이름은 주반. 물론 기차를 파는 건 아니다. 요리 이름치고는 조금 혁명적이나,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는 주반의 요리사 김태윤이 뭄바이행 기차에 몸을 실으며 인도 전역을 누비던 때 구상한 닭 요리다.
일견 특별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프라이드치킨이지만 도톰한 튀김옷에 비장의 ‘마살라’가 숨어 있다. 마살라란 인도 가정에서 저마다의 배합으로 만드는 복합 향신료. 우리의 된장, 고추장에 비유할 수 있다. 고수, 민트로 맛을 낸 개운한 처트니만으로도 한 접시를 너끈히 해치울 수 있지만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이 요리에 술이 빠지면 곤란하다. 따뜻하게 데운 ‘자주’ 한 잔을 청하는 것이 능사. 꿀 향과 후추 향이 번갈아 올라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가격 2만5천원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9가길 12
문의 02-3210-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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