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란
재즈풍 솔 감성의 보컬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약 중이다. 프라이머리, 코드 쿤스트, 빈지노, 얀키, 김예림…. 수란과 협업한 뮤지션 이름을 모두 쓰자면 기사 몇 줄을 할애해야 할 거다. 그만큼 많은 뮤지션들에게 수란의 목소리와 감성이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수란과 많은 작업을 함께한 프라이머리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한다. ‘여러 가지 스타일을 다 소화할 수 있는’ ‘한국에는 없었던’.
김예림의 ‘아우’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김예림의 노래 ‘아우’를 프로듀싱하면서다. 프라이머리와 맺은 인연 덕이다. 프라이머리 정규 2집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수록곡 ‘골드핑거’도 만들고 함께 불렀다. ‘골드핑거’가 세상에 나오기 전, 이 곡을 우연히 김예림 측에서 들었다. 프라이머리에게 ‘골드핑거’와 같은 곡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내게도 기회가 생겼다. 프라이머리, 지구인, 행주와 함께 ‘아우’를 만들었고, ‘골드핑거’보다 ‘아우’를 먼저 발표했다.
재즈와 라이브 무대
나의 음악적 뿌리는 재즈와 라이브 무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처음 음악인들과 어울리며 속한 음악 신이 재즈였다. 그 시작과 과정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 같다. 내 목소리는 약간 ‘재지’한 스타일에 리듬을 자유롭게 타는 것이 특징인데,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접한 재즈에 영향을 받았다. 피처링 멤버로 참여할 때를 비롯해 어떤 음악을 노래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 음악에 내 목소리가 완벽히 어울리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내 노래가 하나의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원한다. 모든 음악은 각자의 소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낼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로 그 안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초록 머리 수란
수란이라 하면 초록색 머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첫 앨범을 내고 활동 아닌 활동을 시작할 무렵, 아쿠아 그린에 가까운 색깔로 머리카락을 염색했다. 초록색으로 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당시 프로필 사진을 준비하면서 포토그래퍼와 이야길 나누다 그렇게 됐다. 초록색으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지금은 초록 머리에서 벗어난 상태다. 무슨 색이라 하면 좋을까. 회색을 한 번 입혀서 톤 다운한 건데 강렬한 초록색이 잘 덮어지지 않더라.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는 그저 자연스럽고 싶다.
첫눈에 통하는 눈빛처럼
음악은 ‘첫 귀’에 바로 끌어당기는 마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나 나름대로 좋은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일종의 지향점을 말하자면 이런 거다. 음악은 곧 감정이고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를 담는 그 순간이 되어야 하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가끔 미치도록 좋은 음악을 발견할 때면 숨겨둔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들지 않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내 음악도, 내가 참여하는 음악도 모두 그랬으면 한다. 음악은 감정이고, 순간의 장면처럼 남아야 한다. 하나의 곡을 오래도록 품으며 듣는 경우는 이제 많이 사라진 것 같으니까. 물론 좋은 밸런스는 필수적이지. 감정선과 볼륨 등 요소들의 좋은 밸런스를 찾아내야 이미지 좋은 음악이 된다. 더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매일 새롭게 살아가려고 한다.
꿈속에서 무모하게
작곡과 편곡 등 프로듀싱 과정을 모두 내 손으로 한다. 상상하는 무대와 음악 판타지를 표현하려면 직접 셀프 프로듀싱을 하는 게 답인 것 같다. 처음 프로듀싱할 땐, 음악 창작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었던 건, 함께하던 친구가 곁에서 말도 안 되는 말로 용기를 주고 칭찬해주고 나를 믿어준 덕이다. 자연스럽게 용기를 얻어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현실이 아닌 꿈속에 빠져 있어야 무모하게 새로운 것도 시도할 수 있다. 나의 시작이 그랬다.
I Feel
나를 알 수 있는 노래를 단 한 곡 듣고자 한다면, ‘I Feel’을 추천하고 싶다. 수란의 음악 세계가 아닌, 수란 그 자체가 궁금하다면 말이다. 처음 발표한 나의 음악 ‘I Feel’ 이후에 2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나 자신도 음악적 변화가 있었다. 요즘은 나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아가려 한다. 음악도 그렇게 하고 싶다. 내 삶 속에 음악을 담고 싶다. 힘을 좀 빼고 말이다. 올 연말과 내년에 낼 앨범을 준비 중이다.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강이채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싱어송라이터다. 화려한 바이올린 멜로디, 피치카토 주법 등 강이채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버무려 독특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시니컬하고 서늘한 태도로 장르의 경계를 보란 듯 없애버린다. 고목 줄기처럼 단단하고 진한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올해 초까지는 베이시스트 권오경과 함께 이채언루트로 활동했으며, 지난 10월에 첫 솔로 앨범 <Radical Rapadise>를 발표했다.
듣는 음악과 하는 음악
클래식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전공했다. 여섯 살에 클래식 바이올린을 시작해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 돌아온 지는 이제 3년째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팝이나 재즈 음악 쪽을 더 즐겨 들었다. 클래식 바이올린을 하는 동안은 연주 실력을 갈고닦는 공부만 했다. 다른 악기를 만질 시간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듣는 음악과 하고 있는 음악의 갭이 컸다. 이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연주에 집중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멀어져 내 음악을 하기 시작한 건 그래서다.
새로운 시작
사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지냈다. 나는 집시 재즈에 심취했고, 이를 공부하려면 미국에 있는 것이 좋았으니까.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었다. 음악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연주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점차 고갈되어간 것 같다.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했고, 연주를 다녀야 했다. 내 음악을 할 시간이 없었다. 자꾸만 음악을 놓치게 됐다. 연습실에 박혀서 7~8시간 바이올린만 켜고 싶은 갈증이 매일 일었다.
자신에게 거듭 물었다. ‘돈이냐, 음악이냐.’ 내가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직감한 순간 결심했다. 다 그만두고, 내 음악 하자고. 그렇게 마음먹고 한국에 왔다. 물론 그때는 내가 노래할 줄도, 직접 프로듀싱할 줄도 몰랐다. 한국에서 1년간은 놀며 지냈다. 재즈 클럽 다니면서, 많은 뮤지션들을 만났다. 학생들도 가르쳤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내 음악을 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베이시스트 권오경을 만나 이채언루트를 결성하고 EP를 내기도 하면서 클럽 공연을 다녔다.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원하는 만큼, 음악에 심취할 수 있었으니까.
Radical Paradise
1년 동안은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언제고 붙들 수 있는 근본적인 낙원을 찾고 싶다고. 첫 솔로 앨범을
나의 리듬
클래식 공부하며 스트레스 받을 때는 다른 음악을 들으며 풀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펑크 음악을 듣고 힙합도 들었다. 제이 딜라, 디앤젤로처럼 그루비한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 음악이 가진 자유로움에서 치유받았다. 바이올린은 멜로디 악기니까, 리듬과 그루브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다. 이채언루트 때까지 보컬을 시도한 바이올린 연주자에 그쳤다면 이번에 발표한 첫 앨범에서는 필요한 소스를 모두 직접 만들고 썼다. 특히 비트와 신시사이저 활용에 공을 들였다. 바이올린과 보컬은 모두 멜로디를 담당하는 사운드다. 나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멜로디를 제외한 파트의 사운드를 해낼 수 있어야 했다. 리듬 파트를 만드는 공부와 연습을 많이 했다.
피치카토
욕심 없이 음악 하기
스스로 계속 되묻는 문장이 있다. 지금, 욕심 없이 음악 하고 있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정말 솔직하고 순수했다. 음악은 그래야 한다. 가수 닉 하킴이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닌 뮤지션이다. 그를 실제로 봤는데 정말 예사롭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면서도 확신이 있는 친구였다. 거들먹거리지 않고 건방지지도 않다. 그가 자신의 노래를 내뱉는 순간에는 모든 게 완성된다. 정말 멋있다. 때 묻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는 음악은 언제 들어도 훌륭하다. 나도 그러길 원한다. 노력하고 있다. 욕심 없이, 순수하게 음악 하기.
신설희
최근 두 번째 정규 앨범 <Cinder Cone>을 발매했다. ‘Cinder Cone’은 폭발 때문에 생겨난 화산 분석구를 뜻한다.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흐름과 삶의 모습을 몽환적이고 광활하게 그려내는 음반이다. 그녀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면, 주저 없이 아무 곡이나 들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어떤 앨범의 어떤 곡을 들어도 ‘좋다’고 느낄 테니까. 이런 뮤지션, 이런 목소리는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한다.
음악의 시작
어린 시절 학원에서 배운 피아노를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타고나길 싫증을 빨리 느끼는 사람인데, 피아노만큼은 꾸준히 쳤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일곱 살 때, 말도 안 되는 음악 작곡을 하겠다고 설쳤던 기억도 있다. 혼자 작곡하고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면서 철없이 놀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는 학교 내 밴드 동아리에 들었고, 음악반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의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온 것 같다. 지금도 피아노 치며 곡 만들기를 가장 즐긴다.
마음의 고향, 아이슬란드
지난 5월. 두 번째 정규 앨범의 큰 틀을 잡아두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벨기에, 네덜란드, 런던, 파리…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그중에서도 제1의 목적지는 아이슬란드였다. 아이슬란드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여행지다. ‘얼음의 나라’라 일컬어지는 아이슬란드가 불러오는 심상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마음의 고향은 따로 있다더니, 내게는 아이슬란드가 바로 그렇다. 시규어 로스, 비외르크. 좋아하던 뮤지션들도 그 땅 출신이 많았다. 내가 겨울에 태어났거든. 1월에. 눈보라 치던 날에 태어나서 엄마가 눈 설(雪) 자를 이름에 넣었고.
버려진 비행기
아이슬란드에서 찾은, 버려진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찍어 앨범 커버로 실었다. 아이슬란드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정보를 찾다 알게 된 비행기였다. 1970년대 미국에서 만든 군항기이고 아이슬란드의 어느 땅에 불시착한 것이라 했다. 황무지 같은 평야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이것을 찾으려고 세 시간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 위를 걸어 들어갔다. 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이었다. 두 시간쯤 걷다 보니 저 멀리 작은 점이 하나 보였고, 또 한 시간을 걸어가서야 비행기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도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직접 찍고 편집해 만들었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비디오 메이커들이 보면 코웃음 칠 수준이겠지만. 뭐, 느낌이 중요한 거지.
유영
이번 앨범의 주제는 유영이다. 흐르는 대로 사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수록곡 ‘무생물’에는 이런 노랫말도 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 꿈꾸던 소년들은/ 수상한 어른이 되어/ 감정 없는 무생물인 척/ 숨죽이며 가면을 쓰고 살아가네’ 20대 초·중반에 쓴 첫 정규 앨범에는 어쩔 수 없는 자기 연민의 감성이 있었다. 한창 그런 감성에 젖기 쉬운 나이 아닌가. 별로였지.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못난 감성이지만 말이다. 내가 느낀 것 아니면 거짓말이 되니까,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앨범에는 ‘그래, 흐르게 내버려두자’ 한다. 사랑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는다. 사랑, 이별 노래에 별 감흥이 없다. 내 입에서 나올 만한 음악들을 쓰는데 삶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혼자 하는 음악
레이블이 없다. 음반을 발매할 때면 혼자서 모든 작업을 마치고 배급사에 연락한다.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혼자 한다. 혼자 하는 게 편해서다.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작업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고독한 성향이다. 그 고독함이 음악에도 묻어나오는 것 같다. 매일 작업한다. 오래 하고, 많이 한다. 작업하는 시간을 즐긴다. 디지털 싱글이나 EP보다는 정규 앨범에 무게를 둔다. CD로 음악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하나의 정규 앨범과 그 흐름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래서 작업을 꾸준히 한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 같다. 1월 7일에는 홍대 벨로주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되게 늦게 열게 되었다.
비걸
비공식적으로는 춤을 춘다. 비걸이다. 춤을 춘 지는 10여 년 정도 되었다. 누구나 다중적인 성향이 있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좀 심한 편인 것 같다. 내 음악과 비걸의 춤은 극과 극이니까. 두 가지 상반된 취향이 이질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잘 못 느끼고 있다. 갭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 이베어를 보라. 예전에 그가 낸 앨범을 들어보면 지금 그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다중적인 감성으로 전혀 다른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도 한다. 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확장해가고 싶다. 힙합 아티스트와도 협업을 잘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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