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창작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다룬 건, ‘환경을 살리자’는 메시지보다 ‘버려진 이야기를 가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구를 만드는 한편, 설치 미술과 공간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공간 작업 역시 오랫동안 사용해온 곳을 원래의 형태로 복구하거나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 큰 맥락에서는 ‘업사이클링’과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패브리커의 관심사는 ‘업사이클링’이 아니다. 가구가 됐건, 공간이 됐건 혹은 설치 미술이 되었건 간에 가치를 잃어버린 채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무언가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는 것. 그래서 보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패브리커답게
‘패브리커다운 것’이 뭘까 생각해보면, 분명 어떤 색깔은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테두리가 굉장히 넓어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동일한 연장선상으로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가구 형태의 작품을 만들다가 갑자기 공간을 디자인한다고 하니 이질적으로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가구를 만드는 것도, 공간을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잊힌, 혹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래서 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성수동 어니언
이전의 프로젝트들에서는 공간 그 자체가 역사성이 있거나 의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성수동에 위치한 이 건물에선 딱히 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경제 부흥 시기에 필요에 의해 지은 건물이었을 뿐이다. 건물 주인에 따라 용도가 바뀌고 증축되면서 형태도 변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이 건물에 새로운 가치를 심어주고 싶었다. 테이블 하나를 놓더라도 공간 안의 오브제가 아닌 건물의 뼈대처럼 심어놓는 형식을 취했다. 건물이 많이 헐었기에 필요한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가 자연스레 가구가 되어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쓸모없이 방치된 이곳에 ‘쓸모’를 심어줌으로써 공간을 치유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영감의 원천
각자 결혼해서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아무래도 취미나 좋아하는 것들이 약간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더 즐겁다.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뉴스나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다음 작업에 응용하고 싶은 요소가 생각지 않게 튀어나온다. 요즘엔 사소한 일상용품이 의외로 큰 영감을 준다는 걸 알았다. 이를테면 핸드크림이나 샤워 젤의 향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잠자고 있던 감각을 일깨워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런 작은 것들이 삶의 질을 높여주고 시야를 넓혀주는 것 같다.
진화 혹은 변화
패브리커라는 이름으로 진화하는 작업을 보여준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는 크고 작은 수많은 변화가 모여야 가능하지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니까. 지난 8년을 돌아봤을 때 ‘진화’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큰 발자국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첫 시작을 비교한다면 굉장한 발전이 있었지만 단어에 담긴 힘을 고려했을 땐 ‘진화’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다만 늘 이전보다 변화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고무적인 것은 8년간 한 번도 뒷걸음친 적은 없다는 점이다. 공간을 다루면서도 첫 시작이었던 가구를 놓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계속 변화할 수 있었던 포인트 같다.
의미 있는 작업
패브리커의 이름으로 전시를 열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제안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다. 하지만 그 역시 기준은 명확하다. 단순히 ‘장사가 잘되는 공간’을 원한다고 하면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됨으로써 지역사회 전체를 살릴 수 있는 제안을 한다든가 하는, 돈을 넘어서 의미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왔다. 러버덕 업사이클링 아트 프로젝트인 <컴 스윙 위드 러버덕×패브리커(Come Swing with Rubber Duck×Fabrikr)> 전시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석촌호수에서 전시했던 러버덕이 ‘수명’을 다하고 난 뒤 예술 작품으로 ‘환생’했다. 혹자는 이걸 ‘제품’으로 판매하면 어떠냐고 했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행위는 패브리커의 지향점이 아니다.
패브리커의 수식어
패브리커를 통칭하는 단어는 아티스트다. 때에 따라 디자이너로 불리기도, 작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패브리커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고,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아직 헷갈린다면 그건 우리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을 예로 들자면 사람들은 그를 디자이너다, 작가다 구분 짓지 않는다. 우리도 그냥 패브리커라고 불리면 좋겠다. 굳이 수식을 해야 한다면 ‘사물이나 대상을 그들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사람들’ 정도가 좋겠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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