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것
레드몬드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근무하며, 올해 초에 발표한 홀로렌즈와 최근 발표한 엑스박스 원S의 디자인과 디렉팅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클라우드앤코라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스튜디오에서는 다양한 기업과 작업을 했는데 일본의 무인양품, 월트디즈니, 하라 켄야 등과의 디자인 협업 활동을 거론할 수 있겠다. 그동안 여러 작업을 이어오며 나름 확고한 철학도 세웠다. 바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디자인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즉, 타임리스 디자인을 추구하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 본질에 충실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이 담긴 디자인이 어떻게 해야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하고, 또 그런 과정에서 영감을 얻는 걸 즐긴다.
더 많은 영감
제품 디자인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1차적으로 받은 영감을 시각화하거나, 실체화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실 시간이 지나서 사라지는 휘발성 영감이나 단순히 한 번 받은 영감은 디자이너에게는 무의미할 뿐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몸소 체험하기도 해야 한다. 좋은 물건을 구입하기도 해야 하고, 사용도 해봐야 한다. 또 그런 물건을 자신의 주변에 배치해놓고 자주 관찰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그래야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호기심의 발전
나는 본래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소유욕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사물에 대한 소유욕은 자연스레 사물의 형태와 소재, 디테일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다. 사물 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또 일상에서 영감도 많이 얻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게 되는 사소한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하면서 겪는 문제점을 생각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러 다니기도 한다. 나아가서는 디자인으로 해결해내기 위한 새로운 문제점을 인식하기도 한다.
유혹적인 습관
디자이너라고 매번 영감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는 없다. 사람인지라 때로는 영감에 대해 둔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기발한 영감이라 할지라도 느끼지 못하면 디자이너로서는 창조적 원천을 잃는 것과 같다. 특히 핀터레스트처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감노다지’에서 오래 머무르는 것은 피하길 권한다. 그곳에서는 자극적인 영감을 매우 많이 얻을 수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결국 쉽게 영감을 찾는 방법에만 빠져버리게 된다. 그러한 습관은 영감을 느끼는 감수성과 상상력을 무뎌지게 만든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힘든 과정을 거쳐 찾아낸 영감은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걸 잘 알고 있다.
디자인 언어
최근 디자인한 홀로렌즈의 디자인 언어를 예로 들어보자. 오래도록 변치 않는 타임리스한 부분과 매우 간결한 측면, 미래적인 느낌이 고루 들어 있다. 그 디자인에는 과거 아우디 TT 1세대에서 받은 영감을 많이 반영하였다. 처음 디자인 언어를 구축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5년 전 처음 접한 1세대 아우디 TT의 카탈로그였다. 그 매력적인 디자인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디테일 사진이 실린 카탈로그를 처음 본 순간, 그동안 갖고 있던 심미적인 생각이 거의 무너져 내렸다. 새로운 시각과 목표에 대한 확고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잉골슈타트에 위치한 아우디 본사도 찾았다. 1세대 아우디 TT만 두 번 경험하면서 많은 디자인적 영감을 얻은 기억이 있다.
무인양품 포스터
스튜디오를 오픈할 때의 일이다. 일본의 무인양품 전 아트 디렉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초기 무인양품 포스터다. 지금 클라우드앤코 스튜디오에 걸려 있다. 무인양품 포스터는 절제를 모르고, 직접적이고 아우성치며 표현되는 오늘날의 상업 디자인을 반박하며, 사진 하나만으로 시선을 압도한 성공적인 캠페인이었다. 실무를 시작한 게 1997년이다. 당시 절제된 단순한 디자인을 설득하는 과정은 아주 험난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절제된 디자인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며 내 디자인 철학을 다질 수 있었다. 바로 이 포스터 덕분이었다.
하라 켄야에게서 받은 무인양품 포스터는 아직까지도 내 디자인 철학의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이 포스터가 주는 가치를 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영감이자 힘이 되었다. 영감을 바탕으로 나온 결과물은 미국 쿠퍼휴잇 펄머넌트 컬렉션의 월드 클락이나,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원S, 홀로렌즈 디자인의 큰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모두 이 영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