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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이 사는 세상

젊었을 적, 한상원은 ‘내 세상’에 살고 있었다. 올해로 57세가 된 훵크 마스터 한상원은 드넓은 우주 속을 유영하듯 천천히 살아간다. 소멸하는 그날까지, 더 많은 사람과 더 좋은 음악을 나눠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UpdatedOn November 04, 2016

 


한상원은 기타 두 개를 메고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하나는 1955년도쯤에 만들어진 기타였고, 또 다른 하나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손을 타서 반질거리는 기타들을 소중히 매만지는 모습은 이제 막 기타에 입문한 소년 같았다. 10세 때부터 기타를 잡고 ‘기타리스트가 되어야지’ 결심한 소년은 ‘훵크 마스터’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대부’가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장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에 연주하러 간다는 그는 아직도 후배들과 부대끼며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 더 높은 것, 더 어려운 것을 탐구하던 한상원은 그간의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가 대학에서 가르치던 학생 또래일 법한 까마득한 후배, 크러쉬와 만나 ‘Skip’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일 거다. 30대 작곡가 박우상이 곡을 만들고, 20대 뮤지션 크러쉬가 노래를 부르고, 50대 기타리스트 한상원이 훵크 리듬을 연주해 완성한 곡이다. 한상원은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건 앞으로 그가 연주를 멈출 그날까지 계속 해나가고 싶은 소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INTERVIEW 
크러쉬와 한상원의 조합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협업한 곡 ‘Skip’은 CJ뮤직과 하이그라운드의 프로젝트 ‘사운드 부티크’의 첫 번째 기획이었다고요?
그렇죠. 내가 하는 훵크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노래로 만들겠다고 하니까, 흔쾌히 오케이 했지요. 작곡자 박우상이라는 분도 처음 만났는데, 마마무? 이런 아이돌 음악을 작곡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게 더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대중하고 많이 친한 사람은 아닌데,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으니까요. 아마 예전 같았으면 ‘가오’ 잡느라고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하하. 그런데 이번에는 참 좋더라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내가 지금 한국 나이로 57세거든요. 옛날에는 더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야지, 더 높은 곳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야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 교감하고 같이하고 싶더라고.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마 2000년대 초반일 거예요. 이적, 정원영 이런 친구들과 긱스 활동을 함께할 때지. 그전까지는 대중적인 인기는 전혀 생각 안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글 쓰는 작가셨는데(1960년대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한운사), 늘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상원아, 어려운 걸 혼자 탐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더 쉽게 풀어서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해봐라”라고요.

사실 당시엔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내 도를 닦는 목적으로 음악을 할 뿐이었거든요.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나를 위한 음악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음악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요즘은 그게 더해요. 학생을 가르친 게 1996년부터니까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예전의 고집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그러던 차에 젊은 친구들이 같이 작업하자고 하니 참 좋았죠.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재즈 클럽 공연하러 가신다고 들었어요. 크고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계속 하신다고요?

클럽 공연은 쉬지 않고 계속 하고 있어요.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에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 동료와 함께 연주하고 숨 쉬는 게 좋아요. 1983년 미국에 음악 공부하러 가서 10년 만에 귀국했는데, 주변에서 참 많이 도와줬지요. 그래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자꾸 내 음악에 대한 배고픔이 있는 거예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내가 하고 싶은 연주를 해야 하는데 매일 정형화된 어떤 것을 하고 있으니까, 갈증이 일더라고. 그래서 전인권 형님을 찾아갔어요. 형님이 삼청동에서 ‘전인권 클럽’을운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마 1994년, 아니면 1995년일 거예요. 형님 클럽에서 연주를 하게 해달라고 했더니 비싸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돈 안 받을 테니까 무대에만 서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매일 1년쯤 그곳에서 연주를 하니까 다시 나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그 이후 2000년도에 혜화동에 있는 클럽에 찾아갔었지요.

아, ‘천년동안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거기 사장님 만나서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때만 해도 훵크 음악 공연은 없었고 재즈 공연만 했었거든요. 처음에는 내가 연주하니까 한 네 테이블 정도 있었나. 그나마 앉아 있던 사람들도 ‘재즈 클럽에서 왜 이런 음악을 하지?’ 하는 표정이더라고요. 세 달쯤 지나니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 여섯 달째부터는 줄을 서더라고요. 그렇게 10년 동안 사람들로 꽉꽉 찼었지요. 그때 다른 일을 하더라도 클럽 공연은 꼭 했어요. 그래야만 나의 근육을 잃지 않고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천년동안도에 후배들이 찾아와서 ‘이런 데 나오면 한물간 사람인 줄 안다’고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어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지금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안 있으면 육십인데 이 나이에 아직까지 무대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 하하.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던 천년동안도가 지난해 문을 닫았잖아요. 그만큼 라이브 무대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텐데요.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환경 변화가 라이브 뮤지션을, 음악 하는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할 일이 없어지게 만들 거라고 말해요. 그런데 나는 거꾸로 생각해요. 좀 더 진정한 음악, 라이브가 뭔지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현장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실체감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더 음악이 발전하고,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클럽 공연이나 음악 축제에 가보면 사람의 이해도가 더 높아진 걸 느껴요. 대신에 옛날처럼 무대 보면서 우는 건 없어졌지. 공연 보는 게 애절하지는 않으니까. 하하.

그렇지만 지금 대중음악 신은 분명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봐요. 예를 들면 장르가 너무 편중되어 있다거나, 지나치게 유행에 휩쓸려서 짧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음악이 많아지는 것도 좋지만은 않죠.
물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음악들도 있죠.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데. 스타도, 음악도 찍어내듯이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반감이 있죠. 그런데 내가 반감을 가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나는 음악의 가치를 믿어요. 진정한 음악이 주는 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지금보다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자꾸만 이 신의 흐름에 노크를 하고 조금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게 할 수 있는 한 노력하는 거죠. 요즘엔 의무감까지 느낍니다.

예전에 한창 활동할 때 같이 무대에 선 동료들은 누구였어요?
김광민, 정원영, 한충완 등이죠. 이 친구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에요.

지금 활동 중인 옛 동료들 모두 요즘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하시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야 조금 음악 할 맛이 나요. 내가 1집을 1993년도에 발표했는데 그땐 참 너무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요즘 음악 들어보면 나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싶어요. 오히려 요즘 음악과 그때 내 음악이 잘 맞는 느낌도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시대를 앞서나갔다는 건 아니고, 음악의 유행이 돌다 보니까 다시 훵크 리듬이 돌아오고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스피커에서 흐르는 이 음악도 잘 들어보면 훵크예요.

 

‘한상원’ 하면 ‘훵크 마스터’라는 애칭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어쩌다 이런 별명을 얻게 되셨나요?
내가 미국 버클리에서 음악 공부할 때 생긴 별명이에요. 사실 나는 훵크를 잘 못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속주만 생각했지 리듬감이 없었거든요. 너무 못해서 잘해보려고 미국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게 내가 하려던 음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1등 하는 훵크 주자가 될 것이냐 2, 3등 하는 재즈 주자가 될 것이냐 갈림길에 놓였을 때 나는 1등 하는 훵크 주자가 될 거라고 마음먹었어요. 더 파고들었지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여유가 넘치세요.
나는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일단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게 제일 큰 행복이고요.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어요. 당시 정서로는 기타를 때려 부술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인생에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또한 행복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악기를 사주셨지요. 그때부터 내 행복의 근원은 음악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도 음악이고, 듣고 싶은 것도, 가르치는 것도, 취미도 음악이에요. 집에서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LP 음반을 꺼내 듣고 앰프 망가진 곳을 고치고 닦는 게 또 내 행복이고요. 삶이 음악으로 일체가 되니까 행복해요. 그래서 내가 자꾸 음악을 권하는 거예요. 남들도 행복할 줄 알고. 하하.

음악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더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기 위한 노력.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두시나요?
와,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실은 두 개 다예요. 진실한 음악을 알리고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일단 내가 젊어지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건 육체에 한해서예요. 왜냐면 나는 아직도 20대 친구들이랑 무대에서 함께 연주를 하니까 체력이 방전되면 안 되거든.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10년 전에 끊었어요. 그런데 음악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알 수 있어요. 더 진정성 있게 삶에 대해 노래할 수 있거든요. 참 희한하지요. 젊었을 적에 그렇게 진실을 찾아 헤맸는데 죽음에 더 가까워질수록 찾고 있던 진실이 쉽게 보이니 말이에요. 예전엔 내가 내 세상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우주 속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요. 결국 나는 없어질 거고 살아 있는 동안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주변에 늘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학생들, 함께 연주하는 후배들. 이런 친구들과 소통할 때는 ‘내가 어른이다’라는 생각 대신 ‘같이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야 편할 것 같아요.
어떤 유명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이 들어서도 우리 안에는 그대로 소년이 남아 있다”고.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건 적건 음악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끼리는 소년 같은 마음이 있어요. 서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 삐치기도 하고 그러죠. 하하. 단지 예전에는 내가 잘하는 것 하나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뭐가 안 되는지를 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이에요. 그러니까 나이나 성향, 성격, 나와의 친밀도를 떠나서 음악으로 그 사람을 보는 거죠. 이를테면 나에게 없는 장점을 갖고 있는 친구랑 꼭 무대를 함께하려고 해요. 심지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적으로 존중하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그 점을 이야기해주고 박수를 쳐줘요. 사람을 미워할 순 있지만 그 사람의 음악까지 미워하진 않아요.

얼마 전에는 한대수 선생님 앨범에 참여하셨죠?
나의 음악적 친구이자 멘토인 이범용이란 사람이 있어요. 굉장히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데, 이 친구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알았어요. 20대 초반에 나에게 밥 말리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했는데, 난 레게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무슨 음악이 이러냐 했는데, 나중에야 좋은 음악인 걸 알았죠. 한대수 선생님도, 그 친구가 ‘한대수의 고무신이라는 노래를 들어봐라’ 하고 추천해줘 알게 됐어요. 바로 그 곡을 한대수 선생님 최근 앨범 <Cre`me de la Cre`me>에서 같이 작업한 거예요. 그래서 더욱 특별했죠.

‘그땐 그랬어, 예전이 참 좋았지’ 하는 것보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높다는 느낌이 들어요. 맞나요?
이제야 인생을 알게 된 거 같아요. 많이 속아도 보고, 속여도 보고 하면서 더 알게 된 것들이 있죠. 하하. 사실은 인간의 나약함을 알아서 일부러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죽을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더 다가올 날을 기대한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하.

지나간 시간 중에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너무 즐거워서일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힘들어서일 수도 있을 테고요.

미국에서 보낸 10년이요. 그때 참 재밌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내가 결정한 대로 산 시간이었거든요. 내가 하는 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어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지요. 버클리에서도 외국 친구들과 엄청난 경쟁을 했어요. 내가 그들보다 못하는 것, 잘하는 것을 스크리닝해서 내 존재를 빼내는 역할을 한 10년이었어요.

선생님처럼 음악을 길게 오래 하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중요한가요?

그건 사실 팔자소관이에요.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해도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음악을 할 때 구도 정신은 필요해요. 난 아침에 일어나면 애연가가 담배를 찾듯이 음악을 찾아 들어요. 어떤 건 몇만 번을 들었지만 아직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어요. 내가 좋아한 명반도, 심지어 내가 연주한 것도 항상 달라요. 그래서 늘 정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요.

요즘 음원 차트 보면 힙합 장르가 대세예요.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젊은이들이 이런 음악을 원하는구나’ 생각하고 흘려 넘기시나요?
나는 힙합도 좋아해요. 왜냐면 힙합의 리듬 안에 국악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국악에서 북 한 번 쿵 치고 한참 있다가 다시 딱, 치잖아요. 그 사이에 굉장한 리듬이 숨어 있는데, 나는 이게 힙합에도 들어 있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1983년에 미국 갔는데 랩 음악이 막 유행할 시기라서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간혹 랩 하는 사람들 보면 감각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반반한 얼굴 믿고 나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음악 듣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누가 진짜 힙합을 하는지. 그런 진실한 음악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결국 좋은 음악은 사람들이 다 알아보니까, 요즘 유행이 어떻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단 말씀이시죠?

유명한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이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에는 두 가지 음악이 있다. 좋은 음악과 좋지 않은 음악.” 장르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재즈가 좋은 음악이라 생각한다고 해서 재즈만 듣는다면 팝 음악의 좋은 면을 많이 놓치겠죠. 편견 없이 음악을 대하다 보면 진짜가 와 닿는 순간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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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레스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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