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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이켜보니 햇수로 11년이다. ‘챠우챠우’의 가사에 가슴이 서늘하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고, 밴드는 여섯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후렴구를 팬들은 주문처럼 흥얼거렸다. 지금 그 소년소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델리 스파이스는 여전히 노래를 계속하고 있다. “인디 밴드의 맏형 격이라는 이야기도 듣죠. 그런데 활동 기간이 몇 년이고 이런 건, 단지 숫자일 뿐이잖아요. 오래된 만큼 힘줘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델리 스파이스의 이전 앨범이 비교 대상입니다. 그보다는 잘해야겠다는 거죠.”(최재혁) 새 계절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앨범의 타이틀은 <봄봄>이다. 이번 음악에는 따뜻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는 설명이 따른다. 델리 스파이스의 이름표를 단 음악으로는 5집 <에스프레소> 이후 3년 만인데, 사실 그 사이 멤버는 각자의 음악적 욕심을 좀 더 양껏 풀어내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김민규는 ‘스위트피’라는 이름으로 어쿠스틱 사운드를 실험했고, 최재혁과 윤준호는 키보드에 고경천을 영입해 밴드 ‘오메가 3’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간의 경험은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에도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이제는 점점 음악의 실마리를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우리에게 가까운 음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음악을 만나게 된다고 그 영향이 델리 스파이스의 앨범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윤준호) “비판에 대해서도 편안해요. 예전에는 (혹평을 들으면) 서운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요즘은 심술이라고 할까, 장난기라고 할까, 그래, 이렇게 별로인 음악 어디 한번 들어봐라라는 식의 배짱이 생기는 것도 같고요. 하하.”(김민규)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한 곡이 엄청나게 성공해서 델리 스파이스가 국민 밴드라도 됐다고 치죠. 부담감도 커지고 자꾸 남들이 요구하는 틀에 저희를 맞추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원하는 대로 순수하게 몸에서 나오는 음악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인 거죠. 그런 게 멤버의 부침 없이 밴드가 오래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최재혁) 밝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세 명은 말하지만, 사실 <봄봄>이 구름 한 점 없는 봄날의 정오처럼,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앨범은 아니다. 그보다는 힘들고 차가운 현실의 계절에서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그 자체에 가까운 노래다. 음악을 하는 것이 여전히 즐거운지를 묻자, 세 명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즐겁지 않았다면 노래를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은 힘들지만 음악은 행복하다. 델리 스파이스는 11년 전 그자리에 믿음직하게 서서, 보기 좋게 나이를 먹으며 깨달음을 더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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