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오의 시계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세계 최초 풀오토 캘린더 기능을 탑재한 디지털 시계 카시오 트론(CASIO TRN)이 탄생한 1974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지샥(G-SHOCK)의 열풍을 지나 지금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1분 1초를 꼼꼼하게 기록해왔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세계인의 일상을 잠식하는 지금, 카시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시계는 메탈’이라는 공식을 깨고 전자시계를 만들던 그때처럼, 카시오는 사람들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혁신을 계속해서 연구 중이다.
영광스러운 어제를 지나 오늘, 카시오가 생각하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도쿄의 하무라 R&D 센터와 야마가타 카시오 공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카시오의 빛나는 시간들
도쿄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저 멀리 익숙한 카시오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믿음직스러운 파란색 바탕에 카시오 로고가 멋지게 자리한 이 건물은 하무라 R&D 센터다. 세계 최초의 전기식 계산기를 시작으로 새로운 분야를 꾸준히 개척해온 카시오의 역사와 기술 변천사가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카시오 미니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 계산기였다. 이 계산기를 만든 노하우를 응용해 정확한 시간은 물론 날짜까지 표시하는 달력 기능을 최초로 탑재한 카시오 트론이 1974년 탄생했다. 이렇게 출발한 카시오 시계의 역사는 지샥을 통해 뜨거운 부흥기를 맞이한다.
1997년 지샥 붐이 가라앉고 난 뒤 카시오는 지샥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강인함을 뽐내는 ‘터프니스’를 지샥의 오리지널리티로 강조하면서, 다시금 부흥했다. 작년 한 해 지샥을 8백만 개 출고했다고 하니, 지샥이라는 브랜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카시오 시계 사업부 마쓰다 전무는 차분하게 카시오의 지난 시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글로벌 컴퍼니인 카시오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제품군은 역시 시계다. 가장 널리 사랑받는 지샥을 통해 베이비지(BABY-G), 프로트렉(PROTREK), 오셔너스(OCEANUS), 에디피스(EDIFICE), 씬(SHEEN) 6개의 시계 브랜드 프로모션에 주력한다. 여기에, 전 세계에 지팩토리 스토어를 론칭해 카시오 브랜드의 힘을 높이고자 한다.
또 ‘카시오’ 하면 떠오르는 ‘합리적 가격대’의 공식을 깨고 최첨단 기능을 탑재한 하이엔드 제품의 보급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마쓰다 전무는 카시오 시계 사업의 차기 전략으로 ‘아날로그 시계 분야의 변화’를 언급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 만나 스마트워치를 만들어냈다면, 아날로그와 인터넷이 만나 어떤 시계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 “2004년부터 우리는 카시오만의 아날로그란 무엇인지를 생각해왔다. 그래서 카시오 시계 사업부는 ‘인텔리전트 아날로그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상적인 시계는 간단한 조작으로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시계의 아날로그 심장부에 디지털 컴퓨팅으로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인텔리전트’한 아날로그 시계를 만든 이유다.
지금까지 디지털 워치 중심이었던 지샥에 아날로그 개념을 도입하면서 다양한 흡인력을 갖춘 것도 ‘고기능 아날로그’의 좋은 성공 사례였다. 카시오는 스마트워치를 인터넷과 연결하기 위해선 스마트폰이라는 중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향후 스마트폰 없이 직접적으로 시계와 인터넷이 연결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측 하에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아날로그와 인터넷의 결합은 카시오의 내일과도 연결된다. 시계가 인터넷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면 다른 사물과도 연결될 수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용도가 발생하는 것이다. 카시오는 다음 세대에는 인터넷이 혁신을 가져올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하무라 R&D 센터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준비 중이다.
카시오의 빛나는 장인 정신
도쿄 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3시간 가까이 달리면,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에서 대구나 부산 정도 가는 거리에, 야마가타 카시오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카시오의 장인 정신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오차 없는 완벽한 시계를 탄생시키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카시오 시계 브랜드에 새긴 ‘메이드 인 재팬’의 저력을 확인 가능하다. 카시오의 프리미엄 라인 시계들은 모두 이곳 야마가타에서 만드는데, 카시오 시계 마스터 시험을 통과한 장인들, 일명 ‘메달리스트’들이 시계 공정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다. 하무라 R&D 센터에서도 이미 목격했지만, ‘고문’에 가까운 다양한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한 튼튼한 시계들에 세심함을 얹어 품격 있게 완성해내는 것이다. 물, 전기, 가속도 낙하, 진동 등의 테스트 과정에서 흠집 하나 없이 살아남은 시계들은 ‘터프니스’ 외에 ‘독창성과 신뢰성(Originality & Reliability)’을 더해 유일무이한 시계로 탄생한다.
이를테면 지샥의 최고급 모델 MRG는 전부 야마가타 카시오 공장에서 만든다. ‘메이드 인 재팬’을 어필하기 위해 일본의 전통을 콘셉트로 도입했다. 시계판을 자세히 살펴보면 얇은 금속판에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만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사노 비호(Asano Bihou)라는 장인의 작품이다. 새로운 소재와 일본의 전통을 결합해 유럽 시계와 다른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하는 카시오의 야심이 응축됐다. 2016년, 300개 한정으로 출시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야마가타에서 생산하는 프리미엄 프로덕션 라인은 고집이 세다. 새로운 가공 기술을 개발하며, 환경을 배려하면서도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고, 기계와 사람이 조화롭게 융합하며, 공인된 장인들의 손끝을 거칠 것. 이 네 가지를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것이 야마가타 카시오 공장의 자부심이다. 플래그십 모델, 카시오 무브먼트 생산은 물론이고 구매 설계와 생산까지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초정밀 가공 기술을 완성하는 것은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계와 카시오 장인들의 협업이다. 정밀함을 자랑하는 카시오 프리미엄 라인은 모든 데이터를 일원화해 제조에 반영한다. 프리미엄 라인의 무브먼트 마무리 작업은 늘 인간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프로덕션 엔지니어링 매니저 쓰요시 다카하시는 “사람의 감각이 필요 없는 부분에 한해서는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를 조정할 때는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생산, 분해, 조립 등에 숙련된 카시오 메달리스트들의 완벽한 마무리 과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전한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야마가타 카시오 공장에서는 이처럼 기계와 인간의 촘촘한 협업으로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시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카시오의 시계는 힘차게 움직인다.
마쓰다 전무 인터뷰
하무라 R&D 센터에는 마쓰다 전무가 책상에서 발견한 카시오 전자시계의 초기 모델이 전시되어 있다. 깜빡 잊고 있던 시계였는데, 배터리를 갈아주니까 다시 힘차게 작동했다고 한다. 카시오의 긴 역사를 대부분 함께한 마쓰다 전무를 만났다.
카시오 시계들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단어는 무엇일까?
지샥이 대표하는 내구성, 튼튼함일 것이다. 정확함, 높은 신뢰성, 고품질 역시 카시오를 대표하는 설명이다. 그리고 카시오는 늘 젊은 층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니까 ‘젊음’ 역시 카시오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겠다.
지샥은 당시 유행을 역행하는 혁신적인 시계였다. 지샥이 상징하는 ‘새로움’을 앞으로도 카시오 브랜드의 독자적 가치로 유지할 것인가?
지샥 자체는 카시오라는 브랜드에서 독립적으로 전개된다. 전 세계 사용자에게서 압도적으로 튼튼하다는 내구성, 언제 어디서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이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되, 지샥은 꾸준히 진화할 것이다. 그 가치를 구현한 상품을 개발하고자 한다.
지샥의 프리미엄 라인 마스터 오브 지 역시 계속해서 신제품을 발표한다. 이 시계는 어떤 남자가 착용하면 좋을까?
마스터 오브 지는 스스로 ‘프로듀스’할 줄 아는 남자들이 입어야 폼이 나는 시계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 이를테면 아나운서 같은 사람도 우리 시계와 잘 어울린다. 이 시계는 그런 남자들이 착용해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계이고 싶다.
지샥의 프로그맨은 재난 등 특수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전문가를 위해 탄생했다고 들었다.
당시 카시오에는 수심계를 갖춘 시계 모델이 없었다. 그래서 다이버 등 전문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펙을 갖춘 라인업이 없었다. 아시다시피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커다란 재난 등에서 활약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팀을 꾸렸다. 개발자들은 다이버 자격증을 따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며 개발을 추진했다. 프로 다이버들이 가장 원하는 기능, 필요로 하는 기능을 응축한 모델이기에 자부심이 크다.
마스터 지 시리즈 역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위해 만들었다. 다이버나 파일럿이 아니어도 이 시계를 착용해도 괜찮을까?
프로가 인정하고 함께 개발했다는 것은 디자인 등 다른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중시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정보만을 담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사용하기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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