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서 암스테르담 우스터 니트 운동화
진경모(편집매장 ‘플롯’ 대표)
발가락을 가려야 할 계절이 다가온다. 그래야 한다면 난 스니커즈다. 아주 가끔 구두나 부츠를 신기도 하지만 편하고 자연스러운 스니커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브랜드의 로고가 도드라지는 운동화는 좋아하지 않아 거의 반스 스니커즈를 신는 편인데, 눈에 띄는 새로운 운동화를 찾았다. 머서 암스테르담의 스니커즈다. 이탈리아에서 주문 제작한 플라이니트를 주재료로 쓰며, 인솔에 젤 소재를 레이어드하여 착용감이 꽤나 훌륭하다. 내부는 고급스러운 이탈리아산 가죽으로 마무리했다. 게다가 올리브색이다. 네이비나 그레이처럼 보편화됐지만 여전히 독특한 색. 그래서 난 몇 년 전부터 괜찮은 올리브색 운동화를 찾고 있었다. 답을 찾았으니 가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겨울은 좀 더 천천히.
슬로우 스테디 클럽×도큐먼트 협업 울 코트
원덕현(‘블랭코프’ 디자이너/ ‘슬로우 스테디 클럽’ 대표)
와이드 팬츠와 잘 어울릴 만한 코트가 없었다. 올 하반기엔 꼭 하나 장만하고자 했는데, 이번에 도큐먼트란 브랜드와 작업한 코트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100% 일본산 울 소재로 만든 멋진 오버사이즈 롱 코트. 슬로우 스테디 클럽에서 제안한 울 원단에 도큐먼트의 간결한 실루엣과 정직한 이미지가 녹아 있다. 이 검은색 롱 코트와 가을과 겨울을 보낼 생각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티셔츠 위에 단출하게 걸치고, 한겨울엔 이것저것 레이어링한 다음 묵직한 코트를 입을 거다. 오버사이즈라 레이어링이 용이하다.
더 리틀 가이 스토브 탑 에스프레소 메이커
한영훈(‘한영후운’ 디자이너)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살림살이에 관심을 갖다 보니 에스프레소 머신이 가장 사고 싶다. 가격과 종류가 다양해서 열심히 구글링을 하던 중 직화식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전설적인 제품 아토믹 커피 머신(atomic coffee machine)을 알게 됐다. 그런데 수량이 많지 않아 구하기도 어렵고, 알루미늄 소재의 고질적인 단점 때문에 포기하고 더 세차게 구글링을 하던 차, 오또라는 제품을 발견했다(2013년 더 리틀 가이로 재론칭했다).
호주의 한 엔지니어가 아토믹을 모티브로 알루미늄 소재의 단점을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로 보완해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한국에서도 정식 통관되어 살 수 있다고 한다. 유레카! 기계를 분리하여 공구함 같은 박스에 넣어 주는데, 부피가 크지 않아 좋고, 직접 조립하는 맛이 있어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한다. 이동도 쉬워 캠핑 시 야외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곡선을 살린 디자인은 너무나 우아하다. 무엇보다 직화 방식으로 불 위에 머신을 올려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아날로그적인 행위가 가장 마음에 든다.
부쉐론 리플레 워치
고동휘(<아레나> 패션 에디터)
갖고 싶은 시계가 뭐냐고 물으면 늘 답은 하나다. 부쉐론의 리플레는 2순위 혹은 3순위 정도다. 1순위를 소유한 뒤라면, 이내 1순위가 될까. 이번 가을에 무얼 갖고 싶은지 생각하다 이 시계가 번쩍 떠올랐다. 여전히 1순위는 아니지만 그냥 그랬다. 정갈한 셔츠의 소맷자락을 둘둘 걷어 입거나, 곰 인형처럼 푸근한 스웨터를 입을 때 이 시계를 차면 얼마나 좋을까. 순수한 골드 색상과 어디서도 보기 힘든 에나멜 스트랩, 남자가 차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 우아하기도 야하기도 한 모호함, 어떤 것도 내 취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어떤 계절보다 가을을 위한 시계처럼 보였다.
빈센트 갈로의 헬무트 랭 리폼 패딩
조기석(아티스트/‘쿠시코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빈센트 갈로는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화가, 음악가다. 영화 <버팔로 66> <브라운 버니> 등이 그의 대표작. 모두 개성이 강하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이다. 홈페이지에 가면 영화뿐 아니라 그의 아트 작품도 구경할 수 있다. 볼수록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고, 작업도 재미있다. 여기 상품을 판매하는 섹션이 따로 있는데, 본인이 직접 리폼한 옷들, 작업한 음반이나 책 등을 판다. 빈센트 갈로의 사인을 프린트한 티셔츠,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린 가방 등이 그 예. 헬무트 랭 패딩 역시 그중 하나. 이런 패딩이 하나 있다면 가을·겨울에 가볍게 입기 좋을 거다. 이미 품절됐다는 게 함정이지만.
티파니 1837™스위스 아미 나이프
홍석우(〈the navy magazine〉 에디터)
새 시즌 컬렉션을 보고 감탄하거나, 지금 입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유행을 좇다가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괜히 모든 것에 질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이미 고전 범주에 든 물건 중 작은 사치가 될 만한, 그러나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무언가에 끌린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자기만족이라도 말이다. 은세공 기술과 고급 보석류로 명성이 높은 티파니가 만든 ‘티파니 1837™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성인 남자 새끼손가락만 한 빅토리 녹스 나이프를 티파니의 순은으로 감싼 제품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자태도 아름답지만 시간이 흘러 자잘한 흠집이 자연스럽게 생긴 모습도 멋질 것이다. 열쇠고리로 쓰거나 매일 드는 가방 한쪽에 매달고 다니면서 길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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