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음악이 좋고, 그 안의 감성도 좋고, 그 밖의 스타일도 좋다고 말이다. 나도 딘을 알고 있었다. 2015년 여름 무렵, ‘I’m Not Sorry’라는 곡을 들었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신선한 해외 뮤지션이 등장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사가 영어이기도 했지만 독특한 비트와 사운드, 몽롱한 창법 등은 분명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었다. 올해로 스물다섯,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청년 딘은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슈퍼 루키다. 엑소와 존 박 등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다 본격적인 솔로 경력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올해 3월 EP 앨범 〈130 mood: TRBL〉로 평단과 리스너들의 극찬을 받았다. ‘천재 뮤지션’이라는 호들갑스러운 수식어가 참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딘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남다른’ 인상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장난스럽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유행에 엄청나게 민감할 것 같지만, 초연하기도 했다.
일주일이면 차트 밖으로 한참 밀려 나가는 빠른 유행 속에서, 몇 달 전 발표한 딘의 곡들은 차트 상위권에 살아 있다. 음악을 만들고, 여행을 다녀와서 또 다른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는 그는 이유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말한다. 그저 독특하니까, 새롭기 때문이 아닌 진심을 전달하는 것. 그 ‘솔’을 담은 음악이 앞으로 딘이 계속해나갈 작업이다.
딘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다들 ‘딘 한국말 잘해?’라고 묻더라. 아마 영어 가사 싱글 곡을 듣고 최소한 교포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 고향은 어딘가?
서울이다.
단지 영어 가사 때문만이 아니라, 딘의 음악에선 ‘미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미국 감성’을 만들어내는 요인은 뭘까?
한국어는 발음할 때 소리가 안으로 먹는 편이다. 그래서 한국어 가사로 그루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그 발성에 대해 연구 아닌 연구를 많이 했다. 가사를 유심히 듣지 않으면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발음과 창법으로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이 ‘미국 음악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뮤지션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뮤지션으로 딘을 꼽는다. 무엇 때문인 것 같나?
일단 다들 그렇게 같이 하고 싶어 하는지 지금 알았다. 하하. 글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는 함께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뮤지션과 작업을 하는데, 만약 나와 협업하고 싶어 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0대 시절에는 랩을 했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었다. 당시 그곳에서 긱스, 지코 같은 뮤지션들을 많이 만났다. ‘잊지 마’란 곡으로 유명한 키스 에이프(Keith Ape)도 그때 만난 친구다. 랩을 하며 크루 활동을 하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인을 통해 데모 곡을 들은 줌바스뮤직 신혁 대표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작곡가로 활동을 하게 된 거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렸을 테다. 신혁 대표는 어린 딘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봤다고 말하던가?
(진지하게) 잘했으니까. 신혁 형님은 저스틴 비버와 공동 프로듀싱한 곡 ‘One Less Lonely Girl’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유명한 프로듀서다. 최근에 예전 형님에게 들려준 데모 음악을 다시 들어봤다. ‘이걸 내가 어떻게 만들었지?’ 신기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거다. 그때 내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으니까, 신혁 형님도 뭔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런데 그 데모 곡을 만든 이후 곧 슬럼프에 빠졌다, 내가. 하하. 아마 굉장히 운이 좋게, 얻어걸린 게 아닐까 싶다. 만드는 곡마다 기복이 심해서 슬럼프가 왔는데, 작곡가로 데뷔한 이후로는 곡의 완성도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얼마 전 뮤지션 시아(Sia)가 비욘세, 리한나, 아델 등에게 갔다 되돌아온 곡을 모아서 앨범을 냈다. 딘에게도 그렇게 되돌아온 곡이 있나?
작곡가로서는 그 가수와 잘 맞는지, 그래서 흥행성이 있는지를 고려해 곡을 쓴다. 그래야 그 가수의 소속사에서 믿고 구매를 하니까. 하하. 누군가에게 준 곡이 되돌아온 적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내가 준 곡 중에도 특히 애착이 가는 것은 있다.
어떤 곡들인가?
이하이와 작업한 ‘비행’을 참 좋아한다. 내 음역대와 맞지 않아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이하이였기 때문에 곡이 참 잘나왔다.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에릭 벨린저(Eric Bellinger)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영어 곡 ‘I’m Not Sorry’가 첫 싱글이었다. 미국에서 먼저 데뷔했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미국에서는 먼저 앨범으로 아티스트의 색깔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좀 더 길게 보고 작업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을 염두하고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런데 영어로 가사 쓰는 게 어렵지 않나?
똑같은 단어라도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성격도 드러나는데, 한국어로는 이런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어는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지난 앨범은 사랑에 관한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지금 작업 중인 앨범의 주제도 사랑인가?
사랑보다는 더 넓은 범위의 주제를 담으려고 한다. 하지만 새 앨범 역시 영화 같을 거다. 곡과 곡 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늘 중요하게 생각한다. 좀 더 완성도 있고 격이 높은 앨범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패션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더라도, 색감과 소재,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컬렉션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지 않나. 내 앨범 역시 그런 공통적인 흐름으로 만들고 싶다.
영화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어려운 주제를 어렵게 푸는 영화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나 이별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미셸 공드리의 영화가 그렇다. 현실에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터널 선샤인> 같은 판타지 가득한 영화를 좋아한다.
요즘 귀에 들어오는 음악은?
최근 한 곡 안에 여러 장르가 섞인 음악을 많이 본다.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르가 튀어나오는 음악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혼합된 장르의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그런 장르의 혼합이 요즘 창작자들 사이에서 유행인가?
음악 하는 사람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자주 찾는 사이트가 있다. 사운드 클라우드 같은 것들. 그런 곳에서 많이 시도하는 걸 보면 유행인 거 같긴 하다.
그런 유행에 초연해야 오래가는 음악을 만들 수 있나?
유행보다도 진심이랄지, 솔이랄지. ‘영혼’이 담긴 음악은 트렌디하건 트렌디하지 않건 사랑을 받는다. 요즘 유행하는 풍을 선택하는 것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끌리는 비트나 멜로디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가사는 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주제를 담고 표현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해야 한다. 사운드보다 주제 의식이 진실해야 사람들에게 와 닿을 수 있다. 최근 비와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가사의 주제가 종교적인 자기 신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도 그 신념이 보였다.
딘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신념은?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 꾸준히 한 편의 영화 같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다. 의미 있는 조각들로 앨범을 완성하는 사람이고 싶다.
딘의 음악을 들으면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세련됐다’는 것이다. 어떤 요소에서 그 세련됨이 나오는 것 같나?
사람들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듣는다’는 것과 맥락이 비슷할 것 같다. 나는 세련된 음악을 만들기보다 이유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음악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는 얘기인데, 예를 들어보겠다.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 소스로 유리잔에 얼음이 짤랑이는 소리를 넣었다고 치자. 그 소스를 이용해 여름 느낌의 노래를 만들면 ‘아, 시원한 기분을 느끼라고 이 소리를 넣은 거구나’ 알 수 있을 거다. 단지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 곡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이유였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만들면 음악이 더 재미있어진다.
지금껏 너무나 많은 칭찬과 호평을 받았다. 다음 행보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뭘 해도 지금보다 잘해야 하니까.
좋은 평가가 감사하긴 하지만, 많이 의식하지는 않는다. 좋은 곡을 만들고 부르는 것은 온전히 내 행복이기도 하다. 나는 그냥 이렇게 앨범을 준비해 발표하고, 또 다음 앨범의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곡을 만들고. 이렇게 반복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부담보다는 새로운 곡을 빨리 만들어서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크다.
음악 하는 딘과 스물다섯 살 청년 권혁은 많이 다른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계속 딘으로 사는 기분이다. 일을 하지 않고 권혁일 때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딘일 때는 좀 더 재미있다. 사물을 보더라도 다르게 보고 싶고 그렇다. 딘과 권혁이 많이 일치되는 것 같다.
20대, 아직 사랑을 고민하는 청춘이 딘의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다. 주로 어떤 이들을 생각하며 곡을 만드나?
성별이나 연령의 구분과는 상관없다. 대신 이 노래를 어떤 시간대에, 어떤 감정일 때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내 진심을 느끼길 원해서다. 내 감정에 입각해서 곡을 만들기 때문에 내 기분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내가 들어서 슬프면 남들도 슬프고, 내가 신나면 남들도 신난다고 생각해서다.
그럼 어떤 시간대에 들어야 가장 좋은가?
밤에 들으면 좋다. 자정 넘어서 약간 ‘센치’해지려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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