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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옥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보자고 말했다. 옥상은 언제나 비어 있고, 먼 곳의 풍경은 미래처럼 희미하니까.

UpdatedOn August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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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소원, 별똥별

황현진 소설가

내게는 갈 만한 옥상이 없다. 1979년에 지은 우리 집에는 옥상 대신 뾰족한 삼각 지붕이 있다. 내 집이지만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서울에 산 지 근 10년째다. 예전에는 자주 고향을 다녀왔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서울을 아주 좋아하게 되어버린 탓이다.

짧은 여행을 다녀올 때, 한밤에 동서울 IC를 지나 강변북로에 들어설 때, 기분이 꽤 좋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이제 나는 누가 뭐래도 서울을 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내게 옥상이 있다면, 상암동에서 강변북로로 빠져나가는 고가도로 위다. 이곳은 드물게 차를 세울 수 있다. 강변북로와 한강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친구는 자주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출동을 기다리는 견인차 옆에서, 연인이 숨어 있는 승용차 옆에서. 친구의 말을 들은 뒤부터 나 역시 종종 그런다. 차에서 내리는 일은 없다. 나 말고도 다들 그런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차에서 내려 고가도로 위를 걸었다. 고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옥상에나 있을 법한 쓰레기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는 쭉 아파트에 살았다. 딱 한 번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담배를 가르쳐주겠다고 해서였다. 한밤이었다. 친구는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툭 튕겨냈다. 불붙은 담배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친구가 하라는 대로 담배에 불을 붙이다 곧장 기절했다. 친구는 무서워서 남은 담배를 모조리 옥상에 버렸다. 그 뒤로 친구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나만 흡연가가 되었다.

수험생일 때는 주로 독서실 옥상에서 살았다. 자정까지 라디오를 듣고, 자정이 넘으면 밤하늘을 쳐다보다 컵라면을 먹었다. 자주 별똥별을 목격했다. 공부를 하는 대신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내가 가장 열심히 한 짓은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거였다. 나는 옥상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담배 그리고 우주.

별은 매일 떨어진다. 매일 떨어지는 것에 소원을 비는 일은 담배를 피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는 매일 소원을 빌 수 있다. 매일 반성을 할 수도 있다. 매일 기대하고 매일 결심한다. 부동 자세로 열심히 산다. 별은 매일 떨어져서, 옥상 바닥에 꽁초처럼 남는다. 캔커피. 물티슈. 목장갑. 담배꽁초. 쓰레기를 찍다 말고 강변북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지붕을 찍었다.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했다. 트럭 지붕에 선명한 행운의 메시지. 자세히 읽어보니 이번 행운은 내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곳은 모두의 옥상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전혀 섭섭하지 않다.

 

 

망설이는 시간

변웅필 미술가

옥상에 올라가면 막 떠올라 형태가 희미한 태양이 보이고, 민간인은 접근 금지인 한강 하류가 보이고, 5백 년 살아온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선 연미정이 보이고, 둘러봐도 끝도 없이 펼쳐진 이장님 논밭이 보이고, 하루에 꼴랑 너댓 번 오가는 읍내행 10번 버스가 달리는 모습이 보이고, 내가 이사를 오자마자 새로 짓기 시작한 망할 공단에 들어서는 더럽게 못생긴 회색 건물들이 보이고, 정권이 바뀐 뒤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읊어대는 대남 방송에 그려지는 정은이 얼굴이 보이고, 우렁이를 사냥하다 마을 어르신이 던진 돌멩이에 놀라 날아오르는 왜가리가 보인다.

옥상에 올라가면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수발을 들고 있을 엄마 생각이 나고, 오늘도 이 집 저 집 택배 박스를 나르고 있을 동생 생각이 나고, 이렇게 그려도 저렇게 그려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대고 있을 어떤 화가 놈 생각이 나고, 독일에서 공부할 때 아픈 내게 살갑게 대해주시던 마을의 의사 선생님 라이네가 생각나고, 잇몸이 완치될 때까지는 절대 삼가라 했던 에쎄 담배 생각이 나고, 읍내 풍물시장에서 떠주는, 청양고추와 곁들인 광어회에 소주 한잔 생각이 나고, 만득이에게 월초에 먹였어야 할 심장사상충 알약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옥상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한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고 바로 뛰어내리는 방법이 있다. 두 방법을 두고 고민하진 않는다. 망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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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동과 B동 사이, 주운 죽은 것들

이해민선 미술가

·16세대가 사는 이 건물은 한 몸통에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 출입구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쪽은 A동, 저쪽은 B동이라고 한다. 두 개의 건물을 애써 붙여놓았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맨 위층인 4층에 산다. 이곳에 사는 8개월 동안 이웃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넘어 오는 냄새와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 벽에서 나는 소리들로 그들을 감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천장에서 짐작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가늘면서 선명한 소리가 어떻게 육중한 천장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는지 불안하고 궁금했지만 곧 잠을 청하고 다음 날 낮에 그 소리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옥상에 올라갔다. 문을 열자 서툰 편집자의 영상처럼 화면이 뚝딱 바뀌어버렸다. 녹색이라고 통틀어 표현하기도 미안한 바닥은 방수 페인트와 시멘트가 심한 각질을 앓다 죽은 환자의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밟으니 바스락거린다. 이곳 아래가 내 침실 위치인 것이다. 시선을 돌리니 평상에는 삼겹살과 소주, 기약을 해놓고 사라져버린 약속처럼 먼지가 앉아 있다.

옥상 한가운데는 낮은 이음매 턱이 가로질러 있다. 여기가 A동과 B동의 경계인가 보다. 그 경계에 환풍구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 모양새를 찬찬히 보다가 고기 냄새의 통로임을 이해했다. 요리를 하면서 ‘레인지 후드’ 기계를 작동시키면 이 환풍구로 냄새가 빠져나가는데 바람이 역으로 불면 다시 냄새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점점 얇아져가는 천장, 나무로 지은 계단과 외관은 주변의 어느 건물보다 빠르게 풍화되어가는 것만 같다. 옥상에서 소리와 냄새의 원인을 확인한 후로 점점 벽은 얇아지고 바람은 세게 불어 소리와 냄새가 선명해져만 갔다.

·그동안 길에서 주운 죽은 화분들을 옥상 한곳으로 옮겨 쭉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옥상에는 모르는 화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 미터 간격으로 벽에 딱 붙어서 한두 개씩 놓여 있었다. 짐승들이 자신의 영역을 오줌 갈겨 표시하듯이, 아무도 머무르지 않은 폐허의 땅에 가끔 먹이를 찾아 올라오는 짐승이 어슬렁 지나간 것처럼.

·사람을 만났다. 옥상에서. 나는 A동 쪽에 서 있었고 B동 쪽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물고 급작스레 나타났다. 등장한 그의 몸동작이 이어지질 못하고 갑자기 뚝 끊긴 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듯 당혹감에 몇 초나 굳어 있었고 나의 눈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옥상은 A동과 B동이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가 곧 어느 한곳을 정하여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잠시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는 사이 그는 사라졌다. 그가 골라 선 그곳이 그의 방이 위치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옥상은 바람만 무차별 통과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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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수록 선명해지는

민구 시인

옥상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 옥상 빼고 다 있겠지. 난 옥탑방에 살아본 적도, 빨래를 널어본 적도 없다. 쫄리면 따라오라고 말하며 누군가를 데리고 올라간 기억은 더더욱.

하지만 옥상에 올라가면 아늑하게 떠오르는 시골 옥상이 하나 있다. 그곳은 사라진 경기도 여주 옛 마을에 있는 곳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툭 건드리면 장롱 냄새를 풍기며 바스라질 것 같은 잠자리가 빨랫줄에 앉아 있다. 또 거기에는 더 이상 울지 않는 뻐꾸기시계도 있는데, 그 새는 우리가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모를 때 시간과 공간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의 길조다.

비 내리는 옥상 창고에는 할머니가 계신다. 어떨 땐 나를 지그시 웃게 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기가 죽은 줄 모른다. 더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장판에 앉아서 밤을 굽거나, 대바구니에 가득 담은 털실을 고르며 편안한 얼굴로 뜨개질을 하다 내 뒤로 다가와서는 가만히 등의 너비를 재고 간다. 우리 집 서랍에는 그녀가 짠 털조끼들이 있는데 과거로 가는 열쇠는 그런 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오래된 옷이니 ‘갖다 버려야지’ 하고 꺼낼 때 짤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황금 열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 여러 개의 문 앞에서 어리둥절해진다. 이 문은 어디로 통할까. 갸우뚱거리며 털조끼들 중 가장 작은 것 하나를 바닥에 펼친다. 그러고서 털실 한 올 한 올이 격자로 만나는 마을 교차로에 먼저 와 앉아 있다가, 과거에 사는 이들과 재회하곤 하는 것이다. 그들 중 나와 전혀 안면이 없는 한 사람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민 형” 하고 부를 때의 적막함. 누군가는 묻는다. 그것이 너의 경험이냐고. 나는 속으로 되묻는다. 옥상에 올라가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냐 되겠느냐고. 사라질수록 선명해지는 먼 이야기, 먼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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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사이키델릭, 벨벳 언더그라운드

백민석 소설가

어느 옥상에서 본 풍경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말하는 순간 내 설명이, 설명적 사진이 갑자기 생명력을 잃고 거대한 상징의 힘에 휩쓸려 의미를 놓아버릴 테니까. 이 풍경의 도시는, 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이자 문화 현상이고 우주선을 타고 찾아올 외계 문명을 안내할 전 지구적 랜드마크다.

이 도시에서 1960년대 후반의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전자 건반악기의 출렁이듯 몽롱한 사운드와 약 빨고 웅얼거리는 보컬의 창법은 청각적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도시의 1960년대를 아는 사람들에게 너바나의 음악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낮에서 저녁으로, 밤으로 흘러가는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며 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바닐라 퍼지의 음악을 떠올렸고, 도시의 어떤 문화적 형질이 환각의 핵심까지 파고 내려가는 음악을 만들었는지 둘러보게 됐다.

이 도시는 또한 앤디 워홀 팩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팩토리는 앤디 워홀과 그의 조수들이 세웠지만 앤디 워홀은 이 도시가, 도시의 문화적 형질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팩토리는 다시 현대 미술을, 팝아트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공장 주인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작품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는 원안을 디자인하고, 제작 공정의 미묘한 과정을 컨트롤하며, 마지막에 사인을 함으로써 가격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낮보다 더 찬란한 도시 야경을 보다 보면 이곳이 팝아트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앤디 워홀의 색채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깨닫는다. 이곳의 야경을 납작하게 눌러놓고 마천루 사이 어둠에 윤이 나는 검은색 아크릴을 발라놓으면 언뜻 또 다른 팩토리의 작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대가 이곳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풍경은 거의 모든 것의 랜드마크다. 세계 정치와 경제의, 사이키델릭과 팝아트의 랜드마크이고, 세계 대중문화와 고급 예술의 랜드마크다. 이 도시의 역사가 채 3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이 도시가 뿜어내는 상징의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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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장수와 트램 운전사

백가흠 소설가

아주 오래전 마을 옥상에서 다른 마을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길에 시장이 서고, 광장이 생겼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허공에 철학과 예술이 자리 잡았다. 미코리스 안티아스 집안은 최초의 지붕 밑, 옥상 밑 그늘진 곳에 터를 잡고 산 지 2천 년이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쯤 됐을 거라고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현재 그의 집에 살았다.

고대에 아크로폴리스(Ακρόπολη)에서 리카비토스(Λυκαβηττός) 언덕으로 가는 길이 만들어졌고 그 길 한가운데 광장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곳을 오모니아(Ομόνοια)로 불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그곳에 시장이 서기 시작했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시장 뒤편으로 사창가가 있었다. 그곳도 오모니아에 장이 서기 시작한 무렵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간을 셈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다. ‘항상’이나 ‘언제나’가 시간 개념의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오랜 세월, 모든 것은 그대로 제자리에 있었고, 미코리스 안티아스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모니아 시장에서 대대로 생선을 팔았다. 피레우스(Πειραιάς) 항구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다 도시에서 되팔았다. 미코리스 안티아스도 생선 장수였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고, 자신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생선 장수가 되어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에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당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생선 장수가 되었다. 생선을 좋아하는 아테네 사람들 덕에 특별히 경기를 타지도 않았다. 국가채무불이행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게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는 이제 결혼을 꿈꾼다. 할아버지는 은퇴한 뒤 카페에 앉아 농구 시합을 보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예전 같지 않게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가게를 운영해야만 할 날이 오고 있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결혼이 필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가정을 꾸리고 아들이나 딸을 낳아 ‘언제나’나 ‘항상’ 혹은 ‘그대로’의 안티아스 집안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 때마침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서 구애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트램 운전사인데, 얼마 전에 에뎀(Εδέμ) 역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요즘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는 오늘밤, 리카비토스 언덕 위에서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었다. 수백 번을 올랐어도 그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때마다 새롭고 아름다웠다. 아테네 지붕에 올라앉아 점점으로 남은 사람들의 사랑을 세어보는 일만큼 근사한 일은 없었다. 그 불빛 위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약속하고 속삭이고 싶었다. 그도 그녀와 함께 아테네의 불빛 하나로 남고 싶었다.

그는 다른 날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한 카페로 향했다. 천천히 오모니아(Ομόνοια)에서 모나스티라키(Μοναστηράκι) 역 광장을 향해 걸었다. 광장 근처 옥상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곳은 옥상에 올리브 나무와 정원이 있는 카페였다. 그는 이상하게 아침부터 마음이 떨리고 긴장돼서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올리브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아크로폴리스와 리카비토스 언덕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많은 사람들이 밤이 되길 기다렸다. 밤이 되면 두 언덕을 향해 조명이 드리워졌고 그 모습은 아테네 어디에서 보아도 근사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는 간단히 에소프레소 프레도를 한 잔 마시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리카비토스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는 건너편 건물의 작은 옥상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아크로폴리스건 리카비토스건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볐기 때문에 낭만적이지 않았지만 밤이 되면 오랫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두 언덕은 본연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몇몇 연인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밀어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작은 교회 앞 계단에 자리 잡고 그녀를 기다렸다. 손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심장으로 요동쳤다. 여름이었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한기가 들었다.

저 멀리 피레우스 항구 쪽으로 태양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지만 그녀는 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초조해졌다. 난간에 붙어 굽이굽이 마을 옥상을 향해 올라오는 길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아테네 전역에 천천히 깔리며 집집마다 가장 밝은 등을 밝혔다. 점점으로 남은 수많은 불빛들이 다른 날과는 달리 그의 마음을 불안함으로 적셨다.

“미코리스 늦어서 미안해. 글리파다(Γλυφάδα) 근처에서 사고가 나서 마지막 근무가 한 시간이나 연장됐어.” 등 뒤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땀을 흘리며 숨을 고르는 그녀가 어느새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그가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고마워. 와줘서 고마워.” “무슨 말이야.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어. 트램을 운전할 때도 당신에게 달려가는 상상을 해.” 그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아테네의 지붕 아래 점점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불빛이 마을의 옥상 위 둘의 사랑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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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이우성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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