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과 방송 복귀 사이 기간이 무척 짧았다.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데뷔한 이래 늘 일에서 나를 찾고 가치 실현을 해왔다. 일을 하지 못한 군복무 기간에는 내가 없어진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었겠다.
맞다. 나는 앞날을 준비하며 살 때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군복무 기간에는 그런 나를 덮어둬야 했다.
그래도 윤시윤은 전보다 더 분명해진 느낌이다. 치열하게 자신을 탐구한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느낀다. 선명해졌다. 내가 아닌 부분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진짜 나만 보여주려 해서 그렇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게 전보다 쉬워졌다.
버린 것은 묻지 않겠다. 취한 것은 무엇이었나?
예전에는 내 단점을 가리고 싶었다. 그런데 프로 세계에 들어서니, 장점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더라. 단점을 가리려는 사람은 외려 이상해지고. 그래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단점을 완전히 취하기로 했다. 굳이 내보이지 않은 나의 일면을 다 보여주기로 했다.
<1박 2일>은 능글맞고 늘어진 재미가 핵심인 프로그램이다. 이제 막 유입된 윤시윤은 완전히 다른 리듬을 만들어냈다. 멤버들은 이상한 애가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하하. 나 정말 이상한가? 그 특이한 사람들이 나더러 이상하다고 하는 걸 보면.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윤시윤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면, 좀 생소하긴 하다. 대개 재미란 삐딱하고 거칠고 우스꽝스러운 부분에서 나온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웃음을 직구로 던지는 캐릭터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내가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아날로그’인 것 같다. 나는 구식 기계처럼 단순하다. 목적이 소박하고. 반지르르하게 꾸미는 것도 정말 못한다. 연애할 때도 그렇다. 세련된 멘트는 아예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스스로 세련된 사람이 아니라고 자주 말하더라. 어느 인터뷰에서 세련된 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건방진 생각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거짓말하지 않는 연기다. 거짓말하지 않으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나까지 탈탈 털어서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털어봤더니, 나는 그런 사람이더라.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
<지붕 뚫고 하이킥>을 연출한 김병욱 PD의 말이 생각난다. 윤시윤은 짝사랑에 빠진 1980년대 소년의 눈빛을 지녔다고 했다.
맞다. 지금 또 사랑에 빠진다면 나는 그런 감성으로 빠져들 거다. 드라마 <마녀보감>에서 내가 연기하는 허준이 딱 그렇다. 좋아하지만 매일 토닥거리고. 무엇이 그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마녀보감>에서 허준은 잠시 방탕한 한량이 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윤시윤과 멀지?
와,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나라고 뭐 제기차기 같은 것만 하고 놀겠나?
윤시윤은 일탈도 건전하게 할 것 같거든.
사실 그렇긴 하다. 스트레스 받아도 만화방에서 만화책 쌓아놓고 읽거나 영화 보고 미술관 가며 푸니까. 그래서 방탕한 허준을 연기할 때 나름 재미있었다. 여자에게 둘러싸이고 파묻히는 장면도 있었는데… 하하.
허준은 또한 이런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몸 던져 희생하는 사람. 이는 윤시윤과 가까운가?
가깝다. 온몸을 던져 사랑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결국 그런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다. 대단히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순정남도 아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허준의 결핍과 사랑 방식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다. 다 내어주고, 상대도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
감히 생각하건대, 그게 사랑의 원초적 모습 아닐까?
맞다. 내가 하는 사랑 역시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마녀보감>에선 그런 걸 표현하고 싶다.
<마녀보감>의 허준으로 드라마판에 돌아온 윤시윤은 마치 홀로 오롯이 서서 자신의 연기를 해보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녀보감>을 사극으로 보지 않았다. 그냥 판타지 드라마다. 판타지는 픽션이고,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극이다. 어디까지만 가야 한다는 제한선도 없다. 배우에게는 스스로 정답이라고 믿고 가기에 좋은 장이다.
판타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윤시윤과 김새론이라는 배우를 통해 현실감을 얻더라.
(김)새론이와 나는 밝음을 타고났다. 반대로 말하면 우린 아무리 묵직하고 어두운 것을 해도 살리지 못할 거란 이야기인데… 어쨌든 밝음은 우리가 지닌 특유의 빛깔이다. <마녀보감>은 스토리 라인이 슬프고 어둡다. 극이 어둠으로 치달으면 우리 두 사람의 밝음과 드라마 사이의 명암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게 새론이와 내가 <마녀보감>에서 맡은 역할인 것 같다. 감독님께서는 이 모든 걸 나의 진짜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전적으로 믿어주신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자. 네가 말하는 게 옳다.’ 이렇게 말씀해주신다. 그 말에서 얻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여전히 시선이 따뜻한 작품이 본인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여기나? 그건 어쩌면 윤시윤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과 같은 온도이기 때문일까?
나는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다.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다. 그래서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시선이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은 건, 인간 윤시윤이 배우로서 꾸는 꿈이다. 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재밌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따뜻한 것 같다.
그런 말 오랜만에 듣는다. 아니,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제일 따뜻하다는 말.
사람이 모든 갈등의 씨앗이기도 하지. 그런데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 또한 사람에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예전의 윤시윤이 배우로서 품은 꿈에는 이런 게 있었다. 희망의 키워드가 되고 싶다. 묻고 싶다. 그렇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이 세상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나?
희망은 각자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지 않은 삶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그런 희망이 세상을 압도했으면 좋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봤나? 기쁘고 화나고 슬픈 감정을 마구 버무린 삶이 가장 예쁜 것 아니던가? 모든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또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통해서.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단단했나?
말만 단단하지, 아직 한참 어리다. 불안하고 두렵고 슬프고 겁나고 무섭다. 차기작을 걱정하고 말실수할까봐 걱정한다. 요즘은 여러 가지를 조금씩 깨닫는 시기다. 어느 순간, 깨달은 대로 행동하면 그게 정말 어른이 되는 거겠지?
지금의 윤시윤은 인생의 어떠한 점 위에 있는 것 같은가?
이제 막 준비 운동을 끝낸 상태? ‘좋아. 오케이. 이제 가자!’라고 속으로 외치는 순간. 몸을 풀어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 상태다. 이를테면 요즈음 나는 나의 촌스러움을 제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나 정말 촌스럽거든. 쓸데없이 진지하고. 여자를 만나도 꼭 이렇게 진지하다. 매끈한 농담이나 할 줄 알면 좋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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