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보니 초식남들의 집결지인 패션 멀티숍 데일리 프로젝트 2층에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폭 1.525m, 길이 2.74m 직사각형의 초록 탁구대가 꽤 ‘시크’하게 놓여 있었다. 카페에서 즐기는 탁구라… 꽤나 괜찮을 것 같았다. “탁구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공놀이다. 게다가 탁구는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는 운동이다. 태생부터 귀족을 위한 운동인 만큼 스피드만 조절하면 과격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장근영이 동의하면서 한 말이다. 탁구가 스포츠와 담을 쌓은 초식남들에게 제일 알맞은 운동일 것 같다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탁구대가 출현한 곳은 데일리 프로젝트 2층만이 아니었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놀이 공간 중 하나인 뉴욕의 ‘스핀(SPiN)’이라는 클럽에도 무려 17개의 탁구대가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탁구 게임 한판 하려면 족히 1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유명 광고 대행사인 사치앤 사치(Saatch&Saatc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셀러브리티 핑퐁 매거진>의 저자인 제임스 쿠퍼가 그 클럽의 터줏대감 정도 되는데 “낮에는 매우 심각한 탁구 시합이 펼쳐지죠. 거의 올림픽 선수 트레이닝 수준입니다. 하지만 저녁 플레이는 뭐랄까. 진지한 플레이와 사교용 플레이의 중간 정도? 그리고 밤이 깊어질수록 만취 상태가 되어가는 거죠”라고 했다. 요즘 남자를 위한 사교용 스포츠로 탁구만 한 게 없다. 술을 마시면서도 할 수 있고, 촌스런 스포츠 웨어를 입지 않아도 되고, 축구처럼 너른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골프채처럼 부담스러운 것을 매일 트렁크에 넣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달걀만큼 가벼운 탁구채만 있으면 된다. 90년대 학번의 선배들은 알겠지만, 그때는 교탁 위에 카세트테이프 몇 개 세워 놓고도 탁구를 쳤다. 뭐, 좀 더 스타일리시하게 탁구를 치고 싶다면 프레드 페리에서 탁구 가방 하나 구입해도 좋겠다. 노트북 가방처럼 생긴 것으로 앞부분에 탁구채를 넣는 주머니가 있다. 프레드 페리가 테니스를 뿌리로 발전한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지만, 실은 탁구에서 비롯됐다. 여전히 탁구 사랑이 철철 넘치는 프레드 페리는 영국에서 2007년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탁구대회를 열고 있다. 토너먼트식으로 이뤄지는 이 대회는 영국 청소년들에게는 올림픽만큼이나 큰 행사다. 프레드 페리는 한국에서도 내년부터 이런 탁구대회를 개최하고 그 수익금을 불우한 청소년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번 가을부터 당장 맹연습에 들어가야 된다.
TV와 라디오와 잡지에 ‘초식남’이라는 신인종이 활개를 친다. 당근만 먹을 법한 비쩍 마른 초식남들에게 모질게라도 운동을 시키기엔 탁구만큼 괜찮은 게 없다. 그들에게 농구나, 축구나, 야구는 너무나 남성적이어서 차라리 카페에서 혼자 앉아 있는 편을 선택할 것 같기에 탁구란 꽤 야들야들한 스포츠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싶다. 그리고 탁구란 장담컨대 타 운동보다 스타일을 덜 해치는 운동이란 점도.
요즘 남자를 위한 사교용 스포츠로 탁구만 한 게 없다. 촌스런 스포츠 웨어를 입지 않아도 되고,
축구처럼 너른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골프채처럼 부담스러운 것을 매일
트렁크에 넣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달걀만큼 가벼운 탁구채만 있으면 된다.
“땀을 흘리세요. 식물인간처럼 방 안에서 무기력함과 공허함에 시들어가지 말고 하루 종일 탁구라도 쳐보세요. ‘탁구 치면 뭐하나’라고 생각부터 하면 절대 탁구를 칠 수 없듯이, 생각이 앞서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염세주의자로 인생을 탕진하게 됩니다.” 황신혜밴드의 리더 김형태가 쓴 청춘 카운슬링 책 <너, 외롭구나>에서도 그러라 하지 않는가. 체육은 못하지만 탁구는 잘 쳤다는 후진타오의 뉘앙스가 꽤 세련돼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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