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의 유려한 라인에서 모던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장중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아우디는 지난 7월 16일, 창립 1백 주년을 맞았다. 1백 년이라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야 제각각이겠지만 그 흐름 속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도 있었고, 4.19 민주화 항쟁도 있었으며, 마이클 잭슨의 죽음도 있었다. 그 동안 아우디는 수많은 모델을 만들고, 폐기하며 자동차 브랜드 간의 전쟁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잔치를 벌여야 한다. 아우디가 창립 1백 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큰 이벤트를 열었다. 각 리그를 대표하는 4개의 강팀을 모아 ‘아우디컵’ 대회를 연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이라지만 비시즌 동안 이런 빅 클럽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가능할까? 어쨌든 아우디는 해내고야 말았다.
뮌헨 시내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오브제 같은 이곳은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다.
지금은 영국과 스페인 리그에 비해 약간 뒤처진 듯하지만, 여전히 세계 클럽 축구의 한 축인 독일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다. 시작 전부터 아우디의 엠블럼이 그려진 깃발을 손에 들고 입장하는 관중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머문 곳은 경기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출입문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잘 익은 고추 같은 빨간색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아우디의 A5 스포츠백 시리즈가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호평을 받았던 아우디 뉴 A4의 디자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A5 스포츠백을 본 이들의 입에서는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잘빠졌다’는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유려한 보디라인과 예쁘게 봉긋 솟아 올라 있는 엉덩이는 아우디의 해치백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기대할 만한 생김새였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압도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터디움이 기가 막히게 훌륭해서가 아니라, 각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들의 압도적인 규모 때문이었다. 항상 해외 클럽들의 경기를 보면 그 응원 문화가 부러웠는데 실제로 맛보는 응원 문화는 달라도 뭔가 달랐다. 극성맞기로 유명한 영국의 훌리건들, 비교적 점잖았던 AC 밀란의 팬들, 홈팀인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 그리고 경기장 한편에 작은 무리를 이루고, 일당백의 응원을 펼치던 보카 주니어스의 팬들까지.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구장 안을 가득 메웠을 때의 감동은 한국 프로축구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아우디의 1백 년을 상징하는 행사가 있은 후, 4개 팀의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4개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이번 경기는 돈이 있다 해도 보기 힘든, 환상의 매치업임이 분명했다. 남미에 있는 보카 주니어스를 빼면 곧바로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환상적인 대진표. 저 4개 팀의 깃발이 동시에 한 운동장에 펼쳐지는 순간을 언제 또 목격할 수 있을까. 아마 아우디의 2백 주년 기념 행사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살 자신은 없으니 이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개막식 이후 곧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보카 주니어스의 시합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3일 전, 상암구장에서 FC 서울과 친선 평가전을 펼치며 세계 최상급 축구란 이런 것임을 보여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용은 여전했다. 모국에서 컨디션 난조로 후반에만 잠깐 모습을 보였던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해 여전히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빛나는 팀답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비교적 쉬운 승리를 거뒀다.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환상적인 대진표. 저 4개 팀의 깃발이
동시에 한 운동장에 펼쳐지는 순간을 언제 또 목격할 수 있을까. 아마 아우디의 2백 주년
기념 행사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살 자신은 없었다.
이후 이어진 게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하면서 이탈리아 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 AC 밀란을 가지고 노는 듯 압도적인 승리를 챙겼다. 홈 어드밴티지를 감안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력은 경탄할 만했다. 리베리와 클로제를 비롯한 주전 공격수들이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선수가 한 몸인 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기처럼 수준 차이를 보여줬다. 바이에른 뮌헨 앞에서는 AC 밀란의 ‘외계인’ 호나우지뉴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짧은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오전. 아우디는 기자단을 위해 특별히 뮌헨 본사의 아우디 팩토리를 공개했다. 아우디의 모든 차들이 잉태되는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은 특별했다.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 세단인 A6 시리즈나, 젊은 층이 갖고 싶어 안달인 TT 같은 차들이 제 모습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공정은 사실상 이미 로봇이 점령한 상태. 거대한 로봇들은 알아서 모양을 찍어내고, 도색하고, 용접했다. 그 모든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모습은 감탄을 넘어서 어떤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로봇의 상태를 모니터로 지켜보거나, 아주 간단한 조립을 하는 정도였다. 아마,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면 인간은 더 이상 이 경건한 작업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기뻐해야 할 일일까?
다시 돌아온 저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았다. 어제 경기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두 팀답게 경기는 내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비록 박지성은 출장하지 않았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빈자리를 채울 뉴 페이스인 발렌시아나, 박지성의 경쟁자인 나니의 경기력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홈팀의 열광적인 응원에 기죽지 않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쳐 나갔다. 친선 경기라기에는 너무 치열했던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17명의 키커가 번갈아가면서 슛을 한 끝에 결국 바이에른 뮌헨이 최후의 승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는 했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원 4개가 서로 간섭하는 아우디 엠블럼처럼, 그들은 서로 대립하는 라이벌인 동시에 서로 존중하는 동료일 테니까. 게임이 끝나고 난 뒤, 상의를 교환하는 선수들의 얼굴 뒤로 광고판을 장식한 아우디의 엠블럼이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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