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데뷔를 하네요. 〈k팝스타〉 이후 3년 만이에요. 기분이 어때요?
좋아요. 긴장돼요. ‘무대에서 ‘삑사리’ 나면 어떡하지?’ ‘라이브 잘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 많이 해요. 그리고… ‘Mama Don’t Worry’라는 자작곡을 제일 먼저 공개했는데, 완전히 제 이야기를 쓴, 제 입장을 담은 노래거든요. 저와 가족에 관한 노래요. 그래서 걱정 많이 했어요.
본인 얘기라서?
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공감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되게 섭섭할 텐데’ 했어요.
걱정이 무색하게 그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너무 좋아요. 정말 감사하고요. 신기해요. 이 노래를 많은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게요. 제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니까요. 이 노래는 온전히 샘의 이야기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Mama Don’t Worry’는 어떻게 탄생한 곡이에요?
우연이었어요. 작년 추석 아침에 (정)승환 형하고 보컬 수업을 위해 택시 타러 나가는데 날씨가 무척 좋더라고요. 갑자기 마음이 짠한 거예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혼자서 흥얼거리게 됐어요. 그러면서 승환 형한테 물어봤죠. “형, 이런 라인 어때? 랄랄라 라랄라라(흥얼거림). 기타 치면, 예쁠 것 같아?” 그랬더니 형이 “야, 그렇게 들려주면 내가 알 것 같아?” 하더라고요. I’m so sad. 하하. 보컬 수업이 오후 1시였고 택시 타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가 12시 40분쯤이었는데 아까 입으로 불렀던 라인이랑 똑같이 기타를 쳐봤어요. 그러면서 그냥 저도 모르게 말이,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연락도 잘 안 하는 멍청한 우리 아들 잘 지내니.”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러느라 결국 보컬 수업에 10분 늦었어요.
보통 테마나 콘셉트를 생각하면서 곡을 쓰지 않나 봐요.
그 방법이 사실 깔끔하고 좋은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최근에 회사에서 숙제를 하나 주셨어요. 일기를 쓰는 것처럼 제 곡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것인데 되게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고요. 이런 곡을 써야겠다 하면서 쓴 게 아니어서요.
그렇게 쓴 ‘Mama Don’t Worry’를 왜 버리려고 했어요? 묻힐 뻔한 곡을 안테나 뮤직의 스태프가 우연히 발견해서 살려냈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곡을 쓰고 가이드까지 제가 녹음을 했어요. 그다음 혼자 모니터하면서 들어보는데 속마음이 너무 들어 있는 곡이더라고요. 유희열 형님께 보여주면 “너무 딥하다. 선을 넘은 것 같다”고 하실 것 같았어요. 내보내지 말자고 할 줄 알았죠. 그렇게 그냥 뒀는데, 제작실장 누나가 어느 날 이 곡을 발견하고는 이메일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리고 유희열 형님께 전한 거죠. 유희열 형님이 절 부르셔서 노래가 너무 좋으니 한번 불러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계속 만든 데까지만 불러보자고 하셨어요.
유희열 형님이 노래 좋다고 하는데도 왜 망설였어요?
민망했어요. 왜 계속 이 노래를 밀지? 싶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제 감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어렵거든요. 행복한 마음이나 아무 생각 없는 모습 같은 건 보여주기 쉬워요. 그런데 슬프다, 화가 난다 같은 감정은 민망하고 어려워요.
평소에는 그런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나요?
저의 슬프거나 외로운 마음을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안 하려고 해요.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요.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아주 가끔은 그렇게 하는데, 되도록 안 해요. 왜냐하면 일단 저는 웃는 게 좋고요. 습관이 그렇게 든 것 같아요.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 애들처럼 습관이 들었나 봐요. 미국 애들은 슬픈 감정은 숨기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보여주겠어요. 딱 열여덟에만 부를 수 있는 노래일지도 몰라요. 스물여덟이 되어서 ‘Mama Don’t Worry’를 부르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딱 지금만 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샘이 데뷔하기까지 유희열 형님은 샘의 어떤 부분을 끄집어내주시던가요?
유희열 형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작곡 안 쓰면 너 데뷔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당장 ‘아, 오케이. 그럼 자작곡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계속 써봤어요. 저 혼자 쓴 걸 형님한테 갖다 주곤 했는데, 형님께서 최근 말씀하시길 “그때 진짜 엉망이었다고, 완전 쓰레기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어떻게 곡을 쓰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래도 용기 내서 계속 썼어요. 그렇게 이번 앨범 수록곡 ‘Seattle’ ‘Dance’ ‘Touch My Body’가 나왔어요. ‘NO눈치’랑 ‘Mama Don’t Worry’는 곡 쓰는 경험을 쌓고 우리말도 많이 늘어난 후 만든 것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고요. 물론 제가 아직 우리말을 잘하지 못해서 이야기는 단순하지만요.
부모님께서 LA 쇼케이스에 깜짝 등장하셨잖아요. 샘 모르게 오셨잖아요. 그 모습을 뮤직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공개했고요. 영상에는 부모님과 포옹하고 집에 가서 식사하는 정도만 나왔는데, 그때 부모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엄마랑 아빠를 되게 오랜만에 봤거든요. 쇼케이스 끝나고 허둥지둥 집에 가서 두세 시간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눴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했어요. 제 우리말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서 드디어 부모님이랑 대화가 되는 거예요. 그나마 엄마는 영어를 하시니까 제가 우리말 잘 못할 때 영어, 국어 섞어서 대화했는데, 아빠는 영어를 잘 못하시거든요. 아빠도 아들이랑 이야기하기 무척 답답하셨을 거예요.
너무 좋았겠네요.
네. 그래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 나눴어요. 깊은 이야기를 많이 했죠. 친아빠는 뭐하고 지내시는지, 그런 이야기요. 엄마한테 이런 것도 물어봤어요. 뮤직 다큐멘터리로 아빠와 친아빠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하게 되었고 분명 데뷔하면 저에게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물어볼 텐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나 봐요.
네. 왜냐하면 제가 섭섭하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은 ‘아, 샘은 섭섭하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잖아요. 저한테는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친아빠가 아니지만 아빠는 저를 친아들처럼 키워주셨고, 저는 아빠에게 조금도 섭섭한 마음이 없다고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물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요. 제가 쇼케이스 때 부모님 발견했을 땐 못 울었어요. 민망해서요. 저한테 스포트라이트가 오니까 완전히 얼었어요. 근데 그날 밤 엄마, 아빠하고 집에서 이야기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카메라가 없었을 때요.
저도 샘이 쇼케이스에 오신 부모님을 발견한 순간, 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안 울더라고요. 얼었던 거군요.
그걸로 엄마가 저를 얼마나 혼내셨는지 몰라요. “너 이 새끼 왜 안 우냐”고요. 계속 말씀하셨어요. “넌 울었어야 해, 이놈아.” 하하하.
시애틀에서 열린 〈K팝스타〉 지역 예선에서 샘이 “기타 잡은 지 1년 반 됐다”며 자기소개를 했어요. 악기를 다루기에는 긴 시간은 아니잖아요. 짧은 시간에 굉장히 빠르게 습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기타 친 지 1년 반에서 2년 정도 되었어요. 근데 거의 매일 치면 그 2년이 되게 긴 시간이 돼요. 저는 그때 거의 기타를 숨 쉬듯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숨 쉬는 것처럼 쳤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미친 듯이 쳤어요.
아버지가 샘 기타를 막 부수기도 했다면서요.
네. 기타 치지 말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기타를 부셔서 제가 그만큼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제 기타를 부순 거예요? 그럼 그만큼 저는 더 칠 거예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보여줄게요.’ 제 고집이 대단했어요. 부서진 기타에 테이프 감아서 치기도 했어요. 그만큼 더 늘었죠. 매일 그렇게 쳤어요.
그렇게 빠져든 계기가 있었어요?
친구가 G 코드를 알려준 이후였어요. 너무 치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부모님을 엄청나게 졸라댔죠. 엄마, 아빠 제발 제발 제발 기타 하나 사주세요. 싼 거라도요. 제가 하고 싶은 악기는 기타입니다. 제발요.
참, 샘이 본인 인스타그램에 기타 숍 사진을 올리면서 ‘캔디 스토어’라고 써놓은 걸 봤어요.
네! 저한테 기타 숍은 사탕 가게나 마찬가지예요. 2년 동안 정말 손가락이 다 찢어질 정도로 쳤어요. 계속 목말라했어요. 기타와 음악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요. 손가락이 찢어지면 좀 쉬어야 하는데 그것도 못 참아서 계속 쳤어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기본 코드가 익숙해질 때쯤 다른 코드들을 치고, 그러다 그것도 익숙해져 심심하게 느껴지자 노래를 얹었어요. 노래하면서 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노래를 얹어서 연주하는 걸 제일 즐겼어요.
그땐 주로 뭘 보고 쳤어요?
유튜브로 존 메이어와 정성하 선배님의 연주를 보면서 따라 쳤어요. 진짜 기타 잘 치는 분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서 몇 시간 동안 따라 했죠.
뮤지션 샘김의 이야기가 이제 드디어 시작되겠네요. 〈K팝스타〉 이후 데뷔까지, 지난 3년이 샘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되게 빨리 지나온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그 사이사이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또 굉장히 긴 시간이에요. 사실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음반 준비하자고 말씀하신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지난 9월에 ‘Mama Don’t Worry’가 완성될 때부터 갑자기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여덟 곡인가를 회사에 보여드렸는데 그중에서 여섯 곡을 실었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바쁘게 지나왔어요.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요.
샘은 한결같이 안테나 뮤직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이유가 뭐였어요?
저하고 잘 맞는 것 같아서요. 〈K팝스타〉 끝나고 나서 안테나 뮤직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유희열 형님이랑 안테나 뮤직 대표님이랑 만났어요. 되게 비싸고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미팅을 했어요. 신선하고 MSG가 하나도 없는 맛이었는데, 저는 완전 아이 입맛이라 ‘이건 뭐지?’라고 생각했죠. 거기서 유희열 형님이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너 안테나 뮤직 들어오고 싶니? 우리 가난하다고 듣지 않았니?” 하하하. 이것저것 물어보셨죠. 그런데 저는 그 질문이 되게 당황스러웠어요. 뭐랄까. “넌 왜 숨 쉬니?” 이런 질문처럼 느껴졌거든요. 안테나 뮤직 아니면 제가 어디로 가요? 그리고 부모님도 안테나 뮤직 너무 좋아했고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식사 끝나고 제가 마지막 인사드릴 때 그냥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제가 잘 따라가겠습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으니까요. “그냥 시키는 대로 잘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고, 진짜 말 그대로 그냥 그분들 따라가기만 했어요.
본인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자주 말하잖아요. 그런데 나이 열다섯에 서바이벌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샘은 진짜 꿈이 뭐예요? 어떤 걸 이루고 싶어요?
저는 그냥 최대한 재밌게 살고 싶어요. 스트레스 없이. 그래서 노력하고 있어요. 고민도 많이 하고요. 하고 싶은 것, 꿈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지만, 그것은 그냥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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