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숙 작가
조선 시대 진경산수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의 조합이다. 크리스털은 이 그림에서 어떤 상징을 지닌 매개체인가?
시대적 욕망을 표상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해 고민했다. 2000년대 초부터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도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털은 보석이다. 시대적 욕망을 표상하는 적절한 소재라 생각했다.
꽤 좋은 발상이다. 어찌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나?
서양화를 전공하고 다른 작가들과 비슷비슷한 작업들을 해왔다. 그런데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고 싶었고, 결국 내 뿌리로 돌아갔다. 선친께서 서울 왕십리 주변에 몇 개의 나전 장롱 공방을 운영하셨다. 어린 시절 난 그곳에서 뛰어놀았는데 그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반사돼 부서지는 빛이 아름다웠던 그곳은 마치 천국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산수를 그리기도 하셨다. 수시로 산수를 보고 눈에 익혔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 동양적인 정서가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던 것 같다. 반발하듯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2000년대 초반, 깊은 고민에 빠지면서 나와 잘 맞는 작업을 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나와 잘 맞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근데 그게 전부일까?
그건 기본이고, 시대와 호흡해야 한다. 크리스털은 충분히 시대와 맥을 같이 하는 소재였다. 동양적인 진경산수와 크리스털이 만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있었고, 2004년부터 실험을 거쳐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여기 걸린 19점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와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 듯싶다.
최근에 나온 시리즈다.
그 작품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면 되겠다.
그러는 게 좋겠다. 이 작품은 최근작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가장 업그레이드되었고,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공정이 더 복잡하다.
이런 작품을 완성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하루 15시간 작업을 한다. 일주일에 이틀은 학교에 강의를 나가느라 작업을 쉬긴 한다. 그렇게 작업하면 3~4개월 정도 걸린다.
난 잘 모르겠다. 당신의 작품은 장르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묻곤 한다. 회화냐? 아니면 공예냐? 그것도 아니라면 설치 미술이냐?라고. 하지만 내 작품은 확실하게 페인팅에서 출발한다. 물감 그림을 베이스로, 실크스크린 페인팅, 그리고 에어브러시 기법도 사용한다. 그리고 당연히 크리스털을 붙여 그 위에 그림을 더해 완성한다. 그래서 내 그림 장르가 크리스털 페인팅이다. 내가 200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인데 2010년 이후 다양한 작가들이 크리스털 페인팅을 선보이고 있다.
패션에서도 그런 작업들을 많이 한다. 물론 벽에 걸어놓는 작품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패션 아이템은 다르겠지만, 크리스털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기우겠지?
초기엔 접착제를 과도하게 써서 크리스털이 흉측하게 붙어 있거나 덜 써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게 과제였다. 접착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답을 찾으려 했다. 1세기 전, 피카소와 브라크가 콜라주 기법을 창시했다. 그때 그 작품들은 여전히 문제없이 잘 붙어 있다. 미술 재료를 사용하는 게 맞고,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름의 노력으로 접착제의 진화를 일궈냈다. 캔버스 위, 크리스털이 떨어질 일은 절대 없다.
비법을 공개할 순 없겠지?
미안하다. 그걸 위해서 10여 년 이상 노력했다.
점을 찍어놓고 크리스털을 붙이나?
그냥 그린다. 크리스털 페인팅이라는 장르는 크리스털로도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크리스털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걸 다 고려하고 배치하는 것이지?
맞다. 빛이 화려하게 분산되는 것, 반짝거리는 것, 속으로 빛을 흡수해 덜 반짝거리는 것 등을 구분한다. 여러 컬러의 물감을 사용하듯 말이다.
기존 산수화에 빛 반사의 개념이 추가됐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이 흥미롭더라.
자연 채광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색다른 풍경처럼 다채로워 보인다. 작품 하나가 고정적이지 않고 변한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 갤러리 같은 곳에선 국부 조명을 쓸 수 있으니 작품이 걸려 있는 벽이 검은색이거나 회색일 때 좀 더 중후함이 느껴진다. 깊이 있는 가치가 우러나올 수 있다.
부산에서는 아트 페어나 엑스포를 제외하고 사설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진행한 적은 없었다. 갤러리 래를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부산에서 제의해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이 나서 문화적 친밀도를 높이려 노력하는 게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동참하게 됐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이곳을 둘러봤다. 채광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을 참 잘 만들어놓았다.
갤러리 래 김미희 관장
김종숙 작가의 전시를 기획한 배경은 무엇인가?
김종숙 작가 작품을 전시하기 전, 그녀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미국에서 구입했다. 근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 김종숙 작가의 전시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실행에 옮기려 연락했다. 하지만 당시 김종숙 작가의 매니저가 우리에게 엄청난 요구를 했다. 그래서 결렬돼버렸다. 인연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 후 김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고, 덕분에 오해를 풀었다. 마침내 전시를 하게 됐다.
갤러리 래는 성격 있는 공간인 것 같다. 구태의연하지 않고, 자유롭다. 갤러리 래를 이끌어가는 관장의 철학이 궁금하다.
일단 자동차 전시장에 있는 갤러리다. 6층이고, 문턱이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누구나 쉽게 들어와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갤러리를 상업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난 전혀 그쪽으론 관심조차 없다. 젊은 작가들을 양성해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턱 낮은 갤러리가 되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작품 전시를 자주 보고, 수집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감식안이 부족한 나다. 예술 작품에 대한 눈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많은 관장들이 말한다. 많이 보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그건 기본이고, 예술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성향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갤러리 관장이 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냥 컬렉터였을 뿐이다. 근데 재밌었다. 결국 갤러리를 이렇게 오픈하게 됐다.
내가 선택한 작가의 작품이 상승한다. 보는 눈이 아닐까?
글쎄.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느 작품 하나 좋지 않은 게 없다. 각각 작가의 개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가 수집한 작품들이 모두 가격이 상승한 건 아니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내가 선택한 작품에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구매해야 애착이 더 생기고 관심도 커진다. 감식안을 높이는 방법은 시간, 노력 그리고 투자가 정답이다.
부산 미술 시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부동산과 같은 돈만을 위한 투자가 아닌 미술과 같은 문화 쪽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종숙 작가와의 전시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2014년에 개관과 함께 한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짚어주는 핵심 작가들이 꾸민 <이중감각전>을 진행했었다. 권오상 작가, 강강훈 작가, 이형구 작가, 이문호 작가, 원성원 작가가 참여했었는데, 이번에 그들이 다시금 참여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중감각전>의 두 번째를 준비하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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