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우의 팬이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극장에 가서 외화를 제외한 한국 영화를 아무거나 골라 보면 된다. 십중팔구 그 영화엔 배성우가 나온다. 본의 아니게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섭렵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형수에게 끔찍한 짓을 하던 시동생 역할로 평생 먹을 욕을 한 번에 다 먹은 이후 배성우는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주변에선 ‘너무 빨리 소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끊이지 않고 계속 다작을 하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그는 대부분 유쾌하고 즐겁지만, 대체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웃기는 사람 같기도 하고 무척 진지한 사람 같기도 하다. 쉬워 보이지만 한없이 어려운 이 매력 덕분에 2016년에도 그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는 무궁무진하다.
‘다작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건 알고 있나?
정재영 형부터 시작해서 다들 놀린다.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에서 연기하다 영화는 2007년에 데뷔했다. 이후에 띄엄띄엄 출연하다가 근래 들어 자주 하게 됐지.
조금이 아니라 많이다. 필모그래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제는 선택에 대한 부담이 생기지 않나?
그렇다. 작년 여름 <오피스> 개봉 이후부터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됐다. 그때 작품 선택의 책임과 부담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배우는 아무리 잠깐 나오더라도 그 장면에 책임감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출연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영화 전반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한 역할이 새롭게 생기더라. 또 개봉 영화가 많아질수록 대중이 나에 대한 식상함도 느낄 것 같아서 고민이다.
그럼 작품 수를 조금 줄이면 어떤가?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사실 이제는 2014년처럼 어마어마하게 출연할 순 없다. 아무래도 출연 분량이 늘어나다 보니 한 작품당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그렇지만 길게 보면 나는 평생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언제나 촬영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품마다 제대로 몰입해서 내 몫을 해냄으로써 관객을 설득하면, 소모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만 잘한다면 이미지가 중첩될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상을 받았다. 축하한다.
개근상 이후로 처음 받는 상이었다. 제7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오피스>로 ‘올해의 발견상’을 받았다. 내가 연기한 ‘김과장’은 현대 사회의 고단함을 짊어진 슬픈 캐릭터다. 그렇지만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로 포장된 공포라 일단 무서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개인의 슬픔과 장르적인 공포를 동시에 표현해야 해서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오피스> 덕분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작년에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 다녀왔다. 칸은 어떻던가?
좋더라. 그전까지는 공연을 주로 하다 보니 해외에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동네 산책도 많이 하고 프랑스랑 이탈리아 식당에서 요리도 실컷 먹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고아성이 “배성우가 촬영 현장에서 야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고발한 적 있다. 해명을 해보겠나?
당시 현장에선 야한 농담이 난무했다. 더 심한 사람이 많았다고만 밝히겠다. 나는 그저 일목요연하게 정리만 했을 뿐이다.
잘 알겠다. 박혁권, 김희원 등 오랜 친구들은 배성우를 어떻게 평가하나?
복잡한 캐릭터로 본다. 되게 쉬운데, 되게 어렵다. 속내를 많이 드러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시간을 두고 오래 만난 사람에게만 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툭 나온다, 진심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유쾌한 성격으로 보는 것 같긴 하다.
진짜 고민은 혼자 하는 편인가?
그렇다. 가끔 정말 고민되는 문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논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반골 기질이 있어서 기껏 사람들이 해결책을 제시하면 나도 모르게 “에이, 그건 아니지!” 이러고 내 마음대로 결론을 내버린다. 그래서 다들 “배성우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말한다. 하하.
이제는 작품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위치다. 본격적인 전략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내가 연기할 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대했다. 요즘엔 역할도 역할이지만 작품 전체를 본다. 어쩔 수 없이 이전에 내가 출연한 작품도 고려하게 되고.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것 같다.
아무래도 강렬한 것이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다. 징글징글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나 최근작 <내부자들> 때문인지 사대 보험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만을 연기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내가 연기한 직업군이 굉장히 다양하다. 상류층부터 밑바닥 인생까지 두루 연기했다. 얼마 전 개봉한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는 법무법인 대표로 나왔다. 내가 법정에서 열심히 변호하는 신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근데 그 장면만 보면 완전히 변호사다. 하하.
3월 개봉하는 <섬, 사라진 사람들>에선 ‘염전 노예’로 나오지 않나? 스틸 사진을 봤는데….
솔직히 너무 잘 어울리지?
거짓말은 못하겠다.
나도 ‘내가 이런 역할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하하. 2014년 화제가 됐던 ‘염전 노예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흘러간다. 연출을 맡은 이지승 감독과는 <공정사회>라는 작품을 함께한 사이다.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님이 “전작이 초저예산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냥 저예산이야. 나 알잖아?”라는 한마디에 참여하게 됐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 <더 킹>은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화제였다.
조인성, 정우성 그리고 배성우가 나온다. 하하. 나는 극 중에서 정우성과 조인성을 이어주는 검사 역할을 맡았다. <연애의 목적> <관상>의 한재림 감독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돼서 기뻤다.
하반기에 개봉하는 <더 킹> 이전에 또 어떤 영화를 볼 수 있나?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그 사이에 <엽기적인 두 번째 그녀>라는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거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조근식 감독 알지? <품행제로> <그해 여름>의 감독이라 출연하게 됐을 때 정말 좋았다. 함께 연기한 차태현과도 친해졌는데, 그의 추천으로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작품을 또 같이했다.
역시 다작요정답다. 낯간지럽겠지만, 이제 배성우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보나?
운 좋게 여러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매력 있고 믿음직한 모습,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진짜 제대로 운이 트이지 않을까? 나는 최대한 죽을 때까지 많이 찍고 싶다. 그래서 앞으론 더더욱 전략도, 체력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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