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은 잘 웃었다. 그냥 살짝 미소만 짓는 게 아니라 온 얼굴 근육을 사용해서 정말 즐겁게 웃었다. 촬영을 위해 모인 모든 스태프들은 그가 연기를 막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박서준의 곁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오래 두고 사귄 이들과 함께할 때 그는 가장 편안해 보였다. 새로운 것에 빨리 흥미를 느끼는 딱 요즘 남자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우직한 구석이 많다. 일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고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다른 곳에 눈을 돌린 적도, 다른 생각을 품어본 적도 없다. 언젠가 연기에 필요할 것 같아서 승마를 배우고, 골프를 배웠다는 그는 쉬는 시간을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끊임없이 뭔가를 해왔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로 한 단계 올라선 그는 이 성공을 결코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쉼 없이 노력했고, 열심히 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20대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심 중인 박서준은 언제나 그랬듯 여유롭게 다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10년 전엔 뭘 하고 있었나?
배우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박서준은 결국 꿈을 이룬 거네?
꿈을 이룬 동시에 딜레마에 빠졌다.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 이후로 내 목표는 대학 입시였다. 막상 연기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나니까 목표가 사라지면서 되게 힘들더라. 그때부터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려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그럼 이제 목표가 없나?
연기에 있어서는 그렇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다고 해서 꼭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나 이번에 무조건 상 받을 거야’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그런데 상 받는 연기가 어디 있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감사한 한편 불편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거 너무 불편해, 내 사생활을 잃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들 한다. 지금은 한창 물이 들어오는 때 아닌가?
그 얘기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항상 노를 젓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는 날도 다음 일을 생각할 때가 많고,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새로운 것을 보고 ‘연기할 때 응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늘 준비하고 있어야 어느 물에서건 노를 저을 수 있다.
놀 땐 그냥 막 놀아야 한다.
나도 일과 일상을 구분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아, 하나 구분되는 게 있다. 작품 하나가 끝나면 많이 망가진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얼굴부터 망가지는 게 보인다. 하하. 일할 때와 일상생활을 할 때의 차이다, 관리의 차이.
최근작인 <그녀는 예뻤다>가 워낙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이 작품이 박서준의 연기 인생 2막을 열어줬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그냥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단지 전작에 비해 내가 맡은 역할이 극을 조금 더 이끌어갔던 것이 다른 점이겠지. 극 중 분량과 비중이 커지다 보니 인물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만약 내가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겪고 도저히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맡게 된 작품이라면 이 드라마가 내 인생의 2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굳이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면, 나를 한 계단 더 올라가게 해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에선 여심을 사로잡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다. 그런데 영화는 노선이 조금 다르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닌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악의 연대기>를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에 도전했으니까. 일부러 어떤 노선을 정한다기보다는 내가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 흥미가 중요한 선택의 이유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싶었던 게 있나?
계속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연기할 때는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즐거움을 잃으면 많은 것을 놓게 될 것 같다. 언제까지 즐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서준에게선 항상 자신감이 느껴진다. ‘내가 제일 잘나간다’는 느낌보다는, 열심히 노력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박서준은 노력형 인간인가?
내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그 한계를 모르겠다. 그 끝을 보고 싶어서 계속 노력한다. 대중은 ‘박서준은 이런 역할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늘 도전하고 시도해왔다고 생각한다. 나까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싶진 않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가능성이 분명 있기에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흔들리기도 쉬운 직업이 배우다. 그래서 최소한의 나를 지킬 수 있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를 지켜나가려 하는 것이 자신감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절대 자만하지 말자는 생각 또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성공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을 것 같다. 배우로서 ‘성공의 의미’를 정의해본다면?
나에게 ‘성공’은 일을 즐겁게 하는 거다. 내가 즐거워야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으니까. 얼마 전에 아는 형과 이야기하다가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연기 활동 시작하면서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았다.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더라. 내가 행복하기 위해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서 돌아봤을 때 내가 성공한 배우였는지 알 수 있겠지.
박서준에게도 오디션에서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겠지?
물론이다. 자꾸 떨어지다 보니까 지금 나에게 맞는 역할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보다 연기가 나랑 안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시작이 어렵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면 세상엔 참 다양한 배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역할이 있더라, 결국. 하하.
고심 끝에 선택한 차기작 <화랑:더 비기닝>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녀는 예뻤다> 후반 촬영 즈음에 대본을 봤다. 한 3개 정도를 연달아 봤는데 일단 재미있었다. 그런데 대본에 ‘고생’이라고 또렷이 써 있더라. 하하.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그래서 걱정도 됐지만 또다시 현대극을 한다면 기존과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게 될 것 같았다. 내가 맡은 역할에 한정해 설명하자면 골품도 없는 밑바닥 천민 출신이 전설적인 화랑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지금 내 나이대에 딱 맞는 역할이다. ‘29세의 내가 이 많은 감정과 격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하는 것 말고, 29세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워봤나?
올해 12월부터 한 달 정도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무조건. 뭐 스케줄 잡혀 있다고 하면 “다 빼주세요” 할 거다. 데뷔하고 나서는 시간을 계속 흘려보냈는데 스물아홉 마지막 한 달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사실 30세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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