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 아레나 옴므 플러스
눈치 채셨는가.
표지에 생긴 작은 변화를. <아레나> 로고 오른쪽 아래에 덧붙여진 HOMME+라는 표식을.
이걸 간단히 설명하자면 편집진의 강력한 의중을 드러낸 문구 되겠다. ‘더하기’라는 게 뭐든 상향조정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한 장 한 장의 질을, 그리고 한 칼럼 한 칼럼마다 구성을, 비주얼을, 접근법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라고 보면 된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는 <아레나>와 형제지간인 잡지로, 편집부 내에서는 항상 역할 모델이 돼왔던 최상위의 패션 전문지였다. 영광스럽게도 <아레나>는 창간 3주년이 된 이번 시즌부터 큰형 격인 <아레나 옴므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게 됐다. 좀 더 전문적인 패션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좀더 발 빠른 패션 정보를 전달하고, 범접할 수 없는 비주얼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의지를 천명하게 된 게 매우 자랑스럽다. 일단 벅찬 마음을 억누르고, 기자들을 향해 열정의 채찍을 날리는 걸로 일과를 시작할 작정이다. 잡지에 ‘양질’을 ‘플러스’하려면 그만큼 강한 담금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35 페이지 | 경희궁 트랜스포머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로벌 브랜드와 서울시의 협연으로 가능했던 이번 ‘프라다 트랜스포머’와 같은 일 말이다.
언젠가 말했듯이 지난 몇 년간 나는 상하이를, 도쿄를, 홍콩을 배 아파했다. 밀라노와 파리와 런던은 제쳐두고 상하이를, 도쿄를, 홍콩을 질투한 건 그들이 인접한 이웃사촌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이 홍콩 센트럴과 도쿄 요요기에서 라거펠트와 자하 하디드를 앞세워 벌였던 모바일 전시회, 상하이 인민광장 안에서 열렸던 살바토레 페라가모 80주년 기념 전시회를 힐끔거릴 때마다 배알이 꼴렸다. 한국도, 서울도 역량이 충분한데(이건 내 생각이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게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한국 또는 서울이 그런 역량이 없다고(이건 남들 생각이다) 여기는 걸 측은해했었다.
그런데 측은지심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몇몇 일벌레들의 공으로 서울 땅에서도 전 세계인을 겨냥한 패션 행사가 열린 거다. 물론 대놓고 이 행사를 까는 무리도 있다. 괴물처럼 생긴 철근 구조물이 퓨전이란 이름으로 경희궁을 가로막았네(화선지를 씌워놓은 듯한 흰 건축물이 경희궁을 돋보이게 하던데), 수많은 장소 중 왜 하필 경희궁 앞이었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네(세계적인 행사를 서울시에서 자랑할 만한 장소에서 하는 게 그렇게 욕할 일이라면 대안이 될 만한 장소를 제안하시든가), 문화재를 훼손했네(잔디밭 일부에 불똥 튄 거 인정한다. 하지만 문화재를 훼손하지는 않았는데?), 왜 하필 프라다라는 외국 기업과 그 행사를 해야 하는가(그거야 프라다가 먼저, 누구보다 끈질기게 제안했으니까), 외국 관광객들이 오면 문화재보다 명품 브랜드가 먼저 보일 거네(명품 브랜드와 행사를 함께하는 힘있는 문화재라고 여기는 외국인도 많던데)라는 등등의 이유를 들어 새록새록 까고 또 깠다. 하지만 옛 어른들이 그랬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그토록 아름다운 궁을 복원해놓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있나. 적어도 이번 행사로 우리는 경희궁이란 보물을 ‘다시’ 보게 됐고, 문화와 미를 다루는 전 세계 프레스들은 경희궁을 ‘처음’ 보게 되었다. 옳지, 그게 중요한 거다.
준비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한 여인네가 이 같은 말을 했었다. “요즘 트랜스포머 때문에 생긴 고민이 수백만 가지죠. 그중 하나가 전 세계용 보도자료에 경희궁을 영문으로 어떻게 표기할까 하는 거예요. 기존에 써왔던 ‘GYEONGHUI GUNG’을 고수해야 하나 ‘GYEONGHUI PALACE’로 정정해야 하나...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큰 문제죠.” 경희궁은 결국 ‘GYEONGHUI PALACE’로 표기됐다. 그 역시 옳다.
130페이지 | 테리 리처드슨의 특별한 화보
솔직히 나는 매우 궁금했다.
지난 시즌 공개된 톰 포드 향수 비주얼을 보고 그 폭발할 것 같은 관능미에 (땀이 고인 육덕진 여인의 가슴골 내지는 쩍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향수가 박힌 비주얼) 입맛을 다시다가, ‘역시 그는 달라’라는 말로 잡지를 덮곤 했다. 그랬다,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은 달랐다. ‘Keep on Fucking’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의 자필 사인처럼.
그가 한국에 작업을 하러 온다고 했을 때, 무조건 환영 대환영했다. 사실 그 밥에 그 나물인 국내 연예인들의 화보가 슬슬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라면, 정말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까... 솔직히 궁금했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혹은 수줍음으로 점철된 우리 연예인들과 그가 어찌 소통할지 걱정이 됐지만 약간의 불편함과 어색함 정도는 프로답게 알아서들 감당하려니 했다. 그랬다. 그와 통한 몇몇 연예인들은 생애 최초의 교감이라며 그의 렌즈를 찬양했고, 도통 소통되지 않는다 여긴 몇몇 연예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누군가는 테리 리처드슨과 작업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달뜬 목소리로 말했고, 누군가는 그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작업 방식은 궁금했었다고 덤덤하게 말했으니. 나는 전자든 후자든 그들의 상태를 적절하게 담아낸 테리의 작업물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축축한 손놀림으로 한 컷 한 컷을 음미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그의 힘을. 그건 더도 덜도 아닌 솔직함. 그의 뷰파인더 속에서 ‘솔직하게’ 놀아난 자들은 ‘솔직히’ 볼 만했다.
192 페이지 | 남자의 자격
성 기자가 K본부의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에 출연했다.
성 기자의 풀 네임은 성범수. 닉네임은 성사마다.
별명으로 유추하건대 그는 튼실한 외모만큼이나 업계 여인네들에게 튼실한 지지를 받는 게 틀림없다. 그런 그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 한동안 잡지계 검색어 1순위는 따놓은 당상일 테다. 그가 K본부에 행차한 건 <아레나>에서 ‘남자의 자격’ 출연진 7인의-패션과는 대부분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타일링에 일조하기로 한 까닭이다. 칼을 쥐어준 나도, 칼자루를 휘둘러야 하는 그도 일말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열심히 일하는 자의 향기다. 성실한 하루하루를 쌓아온 남자에게선 향기가 난다. 그건 물론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남자들이 풍기는 시트러스계의 매끈한 향과는 거리가 있다. 치열한 땀내이거나 구수한 인간 냄새다. 하지만 그런 향을 가진 중년 남자를 멋지게-옷차림만을 말함이다- 변화시키는 건 사실 그 어떤 일보다 쉽다. 존경받을 만한 성실성과 인간성 위에 약간의 손맛만 가하면 누구보다 멋진 ‘꽃중년’이 되니까. 옷발이 산다는 건 몸매의 우수성만을 가지고 논할 일이 아니다. 그 옷을 입는 인간의 얼굴에서 풍기는 향기 역시 옷발에 일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델에게 옷을 입히는 일과 성공한 남자에게 옷을 입히는 건 둘 다 행복한 일이다. 패션 기자에게 그 둘은 모두 ‘옷발이 사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경규와 김태원을 비롯한 7인의 남성은 대단히 옷발 사는 남자임이 증명되었다. ‘과연?’이라고 의문을 갖는 자들은 192페이지를 보시라.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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