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김보하 Editor 박인영
미스코리아 진이 호명되는 순간 당선자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매년 다른 얼굴이지만 신기하게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하늘에 닿을 듯 드높게 부풀린 헤어 아래로 반짝이는 ‘눈’ 그리고 그 동공 속에서 반짝이는 ‘별’. 장미희가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멘트를 날릴 때도 그녀의 눈 속엔 비슷한 별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수상’이라는 영광의 순간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반짝거려주지 않는 ‘별’을 시도 때도 없이 눈 속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천국의 계단>, <구미호외전>,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등 TV 시리즈 다섯 작품을 연달아 끝마치고 특별한 휴식기 없이 촬영하게 된 김태희의 첫 영화 <중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고려하며 한 치의 오차 없는 판단력을 믿고 작품을 선택할 것 같은 그녀이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실 ‘언제 또 이런 역할을 맡아보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에 무조건 뛰어드는 타입이에요.” 작품성, 흥행성, 감독의 역량, 영화사의 파워 등 배우가 으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들에 대해선 그냥 ‘모르겠다’는 대답뿐이다. “아직 경력이 짧아서 잘 몰라요. 제 능력 안에서 살필 수 있는 것만 살피고, 나머지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편이에요.” 느릿느릿 “잘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당연하다. 서울대 출신의 똑 부러지는 배우 김태희의 모습은 어디에?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제가 좀 두뇌회전이 느려요”라고 얘기하는데 할 말을 잃었다. 이래저래 완벽한 사람이 겪어야 할 유일한 고초인 불특정 다수로부터 무작정 밀려드는 질투조차 그녀를 피해갈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스타들이 흔히 내보이는 거만함도, 까다로움도 그녀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우등생이 실수를 하면 ‘친구 잘못 만나 잠깐 빗나갔으려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가, 촬영장에 도착해 <캔디> 속에나 나올 법한 눈빛으로 인사를 한 그녀가 ‘메이크업’을 고치느라 스태프 모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완벽한 모범생’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안 드는 평가는 아니다. 어쨌든 칭찬 아닌가.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똑 부러지는 성격도 아니다. 오히려 우유부단한 편인데. 사는 데 유리한 평가이긴 한 것 같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냥 실수겠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감사할 따름이다.
당신에게도 스스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나?
‘완벽주의자’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민감하게 의식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잡지에 나온 사진을 보면 짝짝이인 눈만 크게 보여서 엄청나게 거슬린다. 주위에서 ‘티도 안 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다.
새 영화 <중천>에서 천인의 역할을 맡았다. 인상이 너무 착해 보여서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읽고 ‘소화’는 그냥 나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며 하는 생각, 행동 모두가 나와 너무 똑같아서 사실 연기랄 것도 없었다. 촬영에 들어가면 캐릭터에 빠져들어야 하고 촬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캐릭터와 이별해야 하는데 ‘소화’의 경우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너무 진지하게 ‘나는 곧 천사다’라고 얘기하는 거 아닌가.
앗, 그런가? 하하. 소화는 완벽한 천인이라기보다는 인간에 가장 가까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귀여운 초보 천인이다. 실수를 연발하지만 아주 따뜻하고 열정적인…. 앗, 또 내 칭찬을 하는 꼴인가? ‘환생’이라는 개념이 녹아 있는 불교적 스토리가 큰 줄기이긴 하지만,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었다.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역할이라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진 예수의 마음을 떠올리며 임했다.
데뷔 초기에 잠깐 등장했던 영화도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연기라는 측면에서 첫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중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너무 진지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을 고를 때 내가 고려하는 것은 그 역할의 캐릭터뿐이다. 혹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선택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렇게 선택했을 땐 만약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 연기는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실패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역할이라도 해볼 이유는 있다는 뜻이다.
인지도 높은 스타가 아닌가. 훌륭한 필모그래피에 대한 욕심은 필요할 것 같은데. 당신이라면 커리어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에 맞춰 작품을 선택할 것 같았다.
내가 원래 먼 미래에 대해 분석하고 계획하는 것에 굉장히 약하다. 솔직히 지금 닥친 현실도 버거울 지경이다! 일단 결정한 것이라면 현재에 충실하자는 주의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상대 남자로 떠오른 배우가 있었나?
정우성으로 이미 결정됐다고 들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정우성’의 이미지가 딱 떠올랐다. 촬영이 끝난 지금, 그 이외의 다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이곽’ 역할과 정우성은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 같다.
정우성, 허준호 등 최고의 터프가이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두 사람 모두 너무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줬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정우성 선배에 대해서 ‘상대 배우를 많이 배려하는 타입’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실제 역시 그랬다. 허준호 선배는 경력이 많은 대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줬다. 일 년 가까이 중국에서 같이 지내며 힘들게 촬영했기 때문에 오랜 친구처럼 많이 친해졌다.
‘공인’으로서 시선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이상한 루머나 악플을 보면 솔직히 속상하고 상처도 많이 입는다. 대중이 알고 있는 김태희의 모습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굉장히 단편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여러 작품을 통해 다른 모습, 다른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속상한 부분도 공인으로서 겪어야 할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친구들 만나면 술도 마시고, 취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나?
내숭을 떠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원래 술을 잘 못 마신다. 체질적으로도 그렇고, 별로 맛도 없는 것 같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데 대체로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를 떠는 정도다. 어제도 화보 촬영이 끝나고 친구들 만나서 삼겹살 먹고 커피숍에 가서 수다 떨었다.
이렇게 예쁜데 왜 남자친구가 없나!
내 말이 그 말이다! 하하. 솔직히 많이 외롭다. 날도 추워지는데. 남자친구 있는 친구들 보면 너무 부럽다. 막상 생기면 잘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직 확신이 서는 건 아니지만.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역할 역시 셀 수 없다. 독특해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이코 정도? 시나리오를 읽고 느낌이 팍 오는 역할은 분명 또 있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에도 꼭 한 번 출연하고 싶다.
첫 영화인데 <중천>의 개봉을 앞두고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드라마를 찍을 때는 하루하루 연기하기에도
버거워 시청률에 신경 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생해서 만든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흥행에 욕심이 생긴다. 완전히 대박났으면 좋겠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