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조용한 시즌이다. 지난달 막 끝난 2016 F/W 남성 컬렉션 말이다. 세계적인 불황과 테러의 위협 때문인지 브랜드들도 몸을 사렸다. 대부분이 지난 시즌의 연장선상에 머물렀다. 큰 변화는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가 죽었고, 생 로랑이 남성 패션쇼를 LA에서 치른다는 것이 패션 위크 기간의 가장 큰 뉴스였을 정도니까.
들썩인 건 오히려 그 이후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스테파노 필라티를 떠나보내고 벨루티에 있던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를 수장으로 들였다. 에디 슬리먼이 생 로랑을 그만둘 것이란 소문도 들린다. 2016 F/W 시즌은 어쩌면 폭풍 전야일지 모른다. 차분한, 하지만 한편으론 어수선한 시즌. 그 와중에도 마음을 움직인 순간이 꽤 여러 번 있었다.
언제나 뉴욕을 지킬 것만 같은 폴로 랄프 로렌의 지극히 미국적인 프레젠테이션,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에르메네질도 제냐 꾸뛰르 by 스테파노 필라티 컬렉션의 장면들,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한 패션 하우스의 런웨이 같은 것들이다. 이 시즌을 아우르는 SNS 계정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을 업로드할 거다.
1. 알고 보니 마지막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쇼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수려한 자수와 비즈 장식, 웅장한 자카르 코트 등 ‘쿠튀르’란 단어에 가장 걸맞은 남성복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테파노 필라티가 작정했구나 싶었다. 쇼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피날레 후 박수 소리가 유독 우렁찼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것이 스테파노 필라티가 만든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마지막 컬렉션일 줄.
2. 보위가 보였던 순간
버버리 프로섬은 마치 데이비드 보위의 추모 이벤트 같았다. 쇼 전후로 그의 음악이 흘렀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웬디 로베는 모델의 눈가에 데이비드 보위를 떠오르게 하는 글리터 메이크업을 했다. 한 여성 모델이 ‘BOWIE’라고 적힌 손바닥을 내보였을 땐 숙연한 공기가 감돌았다. 구찌 컬렉션은 데이비드 보위 같은 옷을 선보였다. 말미에 등장한 흰색 수트 룩은 거의 완벽한 데이비드 보위였다.
3. 영감을 준 발리의 벽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때 디자이너들이 가장 먼저 하는 건 아마 영감 보드를 만드는 일일 테다. 발리는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그 벽을 공개했다. 믹 재거와 데이비드 호크니, 마이클 케인의 ‘리즈 시절’ 사진이 두서없이 붙어 있었다. 지금 봐도 참 멋진 남자들이다. 멋에 거품이 없다. 발리의 컬렉션도 딱 그랬다.
4. ‘빡빡이’ 여자 모델들
남성복 컬렉션에 스포츠 머리 여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보테가 베네타에 등장한 금발 빡빡이 모델은 심지어 너무 예뻤다. 버버리 프로섬과 지방시, 아미 쇼에서도 그런 모델이 한 명씩 나왔다. 다 같은 모델인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전부 다른 여자들! 여성스러운 모델보다 임팩트가 훨씬 컸다. 보는 남자들은 별로였겠지만.
준 지 종합선물세트
준 지의 쇼가 피렌체에서 열렸다. 피티 워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된 것. 선례? 당연히 없다.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다. 1월 13일 오후 7시 오래된 기차역 스타지오네 레오폴다에서 열린 그의 쇼는 어느 시즌보다 강렬했다. 파워 숄더, 변형된 트렌치코트, 스트라이프, 밀리터리를 변형한 포멀웨어 등 준 지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모두 드러났다.
6. 차원이 다른 오버사이즈
새로운 건 멀리 있지 않다. 빤한 것들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되니까. 안다. 가장 어려운 얘기라는 걸. 그런데 라프 시몬스라면 또 모른다. 지겹도록 반복된 프레피 룩을 이렇게 해석한 걸 보면 말이다. 어깨를 부풀리거나 소매통을 넓힌 뻔한 오버사이즈 룩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체적으로 사이즈를 키워버렸다. 우린 왜 이런 생각을 못할까.
7. 카니예 웨스트의 뻑적지근한 쇼
뉴욕 패션 위크의 첫날, 어마어마한 이벤트가 열렸다. 카니예 웨스트가 세 번째 이지 컬렉션과 새로운 앨범
8. LA로 간 생 로랑
에디 슬리먼은 자신의 도시로 생 로랑의 키즈들을 불러들였다. 파격이다.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생 로랑의 런웨이를 LA로 옮기다니. 물론 이건 2016 F/W 시즌의 남성복과 여성복 파트 1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여성 메인 컬렉션은 3월에 파리에서 공개된다. 쇼는 2월 10일, 팔라듐 극장에서 열렸다. 컬렉션은 에디 슬리먼이 줄곧 고집하던 LA식 빈티지와 화려한 로큰롤 바이브로 채워졌다.
9. ‘셀카’ 런웨이
런웨이의 시작점에 거대한 ‘디지털 트리’가 있었다. 열매는 다름 아닌 아이패드. 거기까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모델이 아이패드를 들고 나오자 웃음이 터졌다. 이들은 셀프 동영상을 찍으며 워킹했다. 전광판엔 ‘모델들이 워킹하다 접근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사진이 SNS에 올라갈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유쾌한 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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