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패션계는 냉정하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고,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한다. 하이디 클룸이 줄기차게 외쳤고, 이소라가 이어받은 이 ‘경고 문구’는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창조적인 리얼리티 쇼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다. 오리지널 <프로젝트 런웨이>가 호평받은 이유는 패션의 세계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의 신경전, 짧은 시간에 옷을 완성하는 모습뿐 아니라 그 의상의 진보성과 진부함을 혹독하게 비평해 우승자와 탈락자를 가려내는 심사위원의 예리함은 <프로젝트 런웨이>만이 줄 수 있는 리얼한 쾌감이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는 철저한 리메이크를 통해 원작의 재미를 꽤 성공적으로 재구성했다. 하지만 미국판을 볼 때는 들지 않던 의구심이 이 프로그램의 경고를 되새기게 만든다. 한국의 심사위원들이 진보성과 진부함을 평가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지, “입고 싶지 않다”거나 “예쁘지 않다”는 식의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을 도대체 왜 하는지에 대한 의아함 말이다. 진부한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비판도 외면받기 마련이다. 정미래(TVian 기자)
<프런코>는 라이선스 매거진 역사 10여 년을 맞는 한국 입장에서는 꽤 시기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이젠 패션 디자이너가 매거진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시기가 된 것이다. 외국 방송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한국화시키는 작업은 프린트 미디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서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높다. 그런 위험마저 감수한 <프런코>의 성공은 한국인들의 문화 스펙트럼이 꽤 넓고 다이내믹하다는 반증이다. 많은 이슈를 낳았던 이소라의 어색한 번역투 한국어가 시즌 종반에 다다라서는 어느새 익숙해진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시즌1의 마지막을 지켜본 나로서는 <프런코>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재능을 불태운 차세대 디자이너들, 그리고 늘씬한 모델이 아닌 디자이너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 그건 곧 한국 패션의 비등점이 가까워왔음을 예고하는 결과가 아닐까. 황의건(Office H 이사)
<프로젝트 런웨이>를 즐겨 시청했던 나로서는 이번 <프런코>에 거는 기대가 꽤 컸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어쩔 수 없이 많았다. 멘토로 출연했던 간호섭 교수는 굉장히 좋은 캐스팅이었다고 본다. 가급적 출연자들의 디자인에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모습은 원작의 팀 건과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패션 지식이 있는 패널들의 이야기는 주관적인 의견이라 해도 좀 더 내용이 있는 비판이었어야 했다. 편집 과정이 있었겠지만 너무 가벼운 코멘트로 일관한 것이 안타까웠다. 가장 아쉬웠던 건 MC 이소라다. 대본을 읽는 듯 하이디 클룸을 복제한 멘트는 그렇다 쳐도 자신의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가는 멘트는 예능 프로그램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출연자들의 지식과 열정이 더 비치길 바라는 감정 싸움과 갈등이 너무 부각된 것도 아쉽다. 혹시 시즌2가 시작된다면 좀 더 패션에 집중한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유래훈(스타일리스트)
자신의 부모, 그것도 아주 대단한 부모를 경쟁 상대로 삼아야 했던 <프런코>는 어쩌면 태생부터 불행한 프로그램일지 모른다. 하이디 클룸의 대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이소라와 작위적인 그녀의 마지막 포옹은 이미 팔짱 끼고 씹을 준비하던 시청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줬다. 미국판을 대놓고 흉내 낸 오프닝 영상과 런웨이 무대 역시 너무 진지해서 외려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봤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 후반으로 갈수록 후보들이 서로 축구공 차듯 뻥뻥 까대는 건 <프런코>를 보는 주요한 재미 중 하나였다.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 수준’이라는 새마을운동 시대의 말이 설득력 있는 주장임도 확인했다. 후보들이 내놓 옷들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생각보다 어설프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국내 디자이너들의 밝은 미래를 봤다는 것. <프런코>는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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