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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콤플렉스

한혜진은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말이 싫지는 않은데 이젠 좀 변하고 싶다. 그 `착한` 이미지가 자꾸 배우로서의 한계를 만드는 것 같아서. 한때 스타가 되고 싶었던 한혜진은 지금 배우가 되고 싶다

UpdatedOn April 23, 2009

안한 말이지만, 한혜진이 특별히 궁금한 적은 없었다. 물론 한혜진은 굳센 ‘금순이’와 우아한 ‘소서노’를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연기자였지만, 그런 기능적인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단지 한혜진에게는 그 어떤 비밀도 없을 것 같았다. 파파라치가 24시간을 따라다녀도 뭐 하나 건져낼 게 없을 것 같은 정화된 이미지. 켕길 것 없는 정직한 아름다움이 ‘배우’ 한혜진에 대한 궁금증을 자꾸만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걱정했다. 뭘 해도 모범적이고, 상식적이고, 다 아는 답변이 나올까봐. 하지만 착각이었다. 한혜진은 그런 세간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꾸만 착한 자신을 고민하고 있었다. TV 화면이 참 ‘안 받는’ 한혜진은 그렇게 배우로서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한혜진은 화면발이 안 받는 대표적인 배우라더니 그 말이 맞네요. 일부러라도 사람들 많은 명동 같은 곳에 다녀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그래도 전보다는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다행이죠. 사실 모자 푹 눌러 쓰고 명동에도 자주 나가요. 그런데 그렇게 인파 많은 데 가면 더 못 알아보더라고요.

얼마 전에 SBS에서 방영한 <여우비>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그걸 보고서는 TV를 통해 보이는 모습이 실제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요, 거짓말하면 얼굴에 티가 많이 나요. 친구들은 제발 TV에서 털털하지 말라고, 예쁜 척 좀 하라고 해요. 그런데 전 카메라 앞에서 완벽하게 변형된 자신을 견디는 게 힘들어요. 예쁜 표정으로 예쁘게 말하는 게 너무 싫어서 지금도 그것 때문에 매일 고민하는걸요.

그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요. “무딘 성격인데도 자꾸 얇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누가 툭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다”고.
예전에는 여유가 없었어요. 사람들의 반응이나 칭찬을 여유롭게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나에 대한 평가나 사람들의 시선이 여배우로서는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강하게 다가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이 약해지고, 감정적이 되고, 외로워지고,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하고 그랬죠.

피곤하게 만들죠? 주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네, 자신을 굉장히 학대하는 편이죠. 누가 날 공격하면 ‘웃기고 있네’가 아니라 ‘아, 그렇게 봤구나, 어떡하지’ 하는 거죠. 그걸 혼자서 삭이다 보니까 속이 타는 거죠.

그렇게 자신을 강박적으로 대하다 보면 방어적으로 변하게 되잖아요.
전 친한 연예인 동료들이 별로 없어요. 연기자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자꾸 경계심이 생기는 거죠. 내가 마음을 활짝 열고 얘기했을 때, 그게 언젠가 내게 비수가 돼서 날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전 소속사와도 소송이 많이 걸렸어요. 지금 진행 중인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믿음이 많이 사라져요. 일하는 게 괴롭죠. 내가 스스로 벽을 만드니까.

한혜진은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다른 인터뷰를 봐도 그래요. 지겹죠?
지겹진 않고 감사해요. 사실 착한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또 이 바닥에서 비호감으로 찍히면 다시 호감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힘드니까. 물론 변신은 쉽겠죠. 한 번 악역을 맡으면 얼마나 임팩트가 강하겠어요. 착한 이미지에 불만은 없지만 지금은 좀 변하고 싶어요.

그런 말 계속 들으면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생기진 않나요? ‘난 착해’가 아니라 ‘난 착해야만 해’가 되는 거죠.
정말 그런 거 있어요. 콤플렉스가 생겼어요. 예를 들어서 촬영 중에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말 못하고 속으로 묵살해버리는 거예요. 착한 한혜진 이미지가 무너질까봐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배우에게는 정말 안 좋은 부분이죠. 회사에서는 한혜진 못됐다는 얘기 들어도 되니까 네 의견을 더 피력하라고, 더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굴라는 요구까지 하더라고요. 저도 아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답답한 거죠. 가끔 ‘이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얘기해놓고도 맘이 너무 불편하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삭이는 게 낫겠다, 이렇게 돼요.

착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했잖아요. 배우로서 욕심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연기 욕심이 너무 많아졌어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라요. 뭔가 막 절박한 기분 있죠? 맘이 조급해요.

“처음엔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이름도 많이 알리고 싶었고, 부와 명예도 거머쥐고 싶었고.
그리고 스타가 되면 역할을 따낼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로서 더 떳떳해지고 싶어서요.”

같은 소속사에 있는 송지효 씨가 <쌍화점>에 출연했잖아요. 봤죠? 어땠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웠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엘레지>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페넬로페 크루즈가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저런 역할 맡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노출이 없었다면 그 영화가 얼마나 심심했겠어요. 하지만 그 영화 보면서 내가 만약 저 배역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내가 정말 물리칠 수 있을까… 결론을 못 내렸어요.

당신의 그런 바른 이미지가 한혜진이 ‘여자’로 보이는 것을 막는다는 생각해봤어요? 안성기나 차인표가 좋은 남자일 수는 있지만, 여자들이 열광하는 남자는 아닌 것처럼.
맞아요. 하지만 내 안에도 양면성이 분명히 있어요. 단지 그걸 참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연기로 표현할 기회만 온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속으로 사람 여럿 잡아요.(웃음)

제 주위를 살펴보면 여자들은 대부분 한혜진이 참 예쁘다고 해요. 그런데 남자들은 그 정도는 아니던데요? 섹스 어필하는 면이 없단 거죠.
그런 부분이 약했던 것, 인정해요. 그런데 남자가 ‘금순이’를 좋아할 순 없잖아요?(웃음) 여배우라면 누구나 섹시한 느낌을 가지고 싶잖아요. 하지만 그런 면을 보일 작품이나 매개체가 전혀 없었어요.

그럼 가끔 남자들의 음험한 눈빛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거죠?
있죠. 물론 있죠. 오늘 같은 화보도 개인적으로는 ‘생큐’예요.(웃음)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엔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이름도 많이 알리고 싶었고, 부와 명예도 거머쥐고 싶었고. 그리고 스타가 되면 역할을 따낼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로서 더 떳떳해지고 싶어서요.

혹시 연극 무대는 생각해봤어요? (그럼요) 내가 하나 추천할까요?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 봤어요? 아그네스 역할 어때요. 당신과 그 역할이 자꾸 겹쳐 보여요.
어? 신기하다. 저한테 처음 섭외가 들어왔던 연극이 <신의 아그네스>였어요. 그런데 연극 출연이 엉키면서 바로 <굳세어라 금순아>에 캐스팅됐죠. 만약 그 연극을 했다면, 금순이 역할을 못 따냈을 테고 지금의 한혜진도 없었겠죠.

은광여고 시절 한혜진은 예쁘기로 그렇게 유명했다면서요. 남자들도 많이 대시했겠네요. 하지만 남자들이 아무리 들이대도 당신은 끄떡도 안 했을 것 같은데요.
음, 남자들이 저한테 말을 잘 못 걸었어요.(웃음) 가끔 남자들이 저한테 ‘저기요’ 하고 말 걸면 듣지도 않고 ‘싫어요’ 하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도도하다는 소문들이 많았죠. 그런데 전 여지를 안 줘요, 남자한테.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아예 빈틈을 허용하지 않아요. 지금도 그래요.

당신은 같이 놀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 존경할 남자를 찾을 것 같네요.
맞아요. 지금 남자친구도 그래요. 음악이나 미술 같은 분야는 제가 하지 못하는 부분이니까 되게 부럽고, 궁금하고, 호기심도 생기더라고요.

첫 데이트에서 당신이 먼저 연락했다면서요? 당신 같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랬어요? 원래 사랑 앞에서 솔직한 감정을 잘 못 숨겨요? 아니면 흥미가 생기는 건 일단 끝을 가봐야 하는 성격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좋다고 생각되면 절대 망설이지 않아요. 감정을 잘 못 숨기는 편이라고 했잖아요.(웃음)

그런데 왜 연인 사이를 공개했어요? 본인 의지예요?
참 억울한 게, 어떤 기자님이 ‘남자친구 있어요?’ 하기에 ‘예’ 한마디만 했어요. 그분이 놀란 거죠. 당연히 없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추적이 시작돼서 결국 밝혀진 거죠. 지금은 후회해요. 어떤 인터뷰를 해도 이 질문이 꼭 나오니까 피곤하죠. 오빠는 지금도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그래요.(웃음)

요즘 젊은 배우들은 패션에 많은 공을 들이잖아요. 한혜진도 그런 ‘요즘 배우’인가요?
사실 패션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옷은 부담스러워요. 제가 참 못난 게 그거예요. 내가 돈을 버니까 나 자신을 위해 써도 되는데 비싼 옷을 사면 뭔가 미안한 맘이 들어요. 무엇에 미안한지도 모르겠는데 나 혼자 느끼는 미안함이 있어요.

뭐가 자꾸 그렇게 미안해요? 착한 여자가 아니라 미안한 여자가 더 어울리겠네.
(웃음)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래요.

좋아요. 그럼 한혜진이 생각하는 옷 잘 입는 남자는 어떤 남자예요?
남자는 너무 꾸미는 것보다는 일단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아요. 수트가 제일 좋아요. 사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수트만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요.(웃음) 혹은 면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좋고. 그런데 그런 스타일은 세상 모든 여자가 원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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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오중석
STYLING 한선경
HAIR & MAKEUP 권희선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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