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김현(수필가) illustration 이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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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몸매, 개구쟁이 같은 헤어스타일, 그리고 성별을 알 수 없는 옷차림. 스키니 진에 하이톱 스니커즈, 그리고 면 티셔츠. 하지만 그녀의 크로스 가방 안엔 환경과 인류에 관한 책, 인문학 서적이 들어 있다. 일단 사귀게 되면 그녀는 당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전념할 것이다.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을 왜 남기는 거죠? 지금 소말리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몇 명인지 아세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지구가 썩어가고 있는 건 아시죠?” 라는 이유를 들며 그녀는 당신에게 과식을 강요한다. 이성 간의 사랑보다는 인류와 지구를 더 사랑하는 듯한 언행을 일삼는 그녀는 결국 이번 여름 봉사 활동을 빌미로 오지로 떠날 것이다. 만약 그녀의 인류애가 한풀 꺾여 당신과 결혼했다고 치자. 그녀들은 손수레의 녹슨 바퀴처럼 늘 날카로운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외칠 것이다. 마치 욕구불만의 잔다르크처럼. 그녀의 장점 | 진정 친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그녀는 상냥하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청각장애아들에게 수화로 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친다. 그 모습은 참으로 천사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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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류는 매우 엉뚱하다. TV 프로듀서로 일하는 그녀는 이미 성공한 여자다. 또 술을 마시면 모든 남자들이 친구가 된다는 명분 하에 늘 술을 탐닉한다. 첫 데이트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차가 막혀 늦을 테니 오피스텔 소화전에 숨겨둔 열쇠를 꺼내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이다. 그것도 매우 당당한 뉘앙스로. 그러나 그녀의 문지방을 넘어선 당신은 아마도 3시간가량 잡지와 소설책을 뒤적이며 원치 않던 그녀의 독서 습관까지 죄다 파악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그녀가 도착했을 때, 그녀의 입에선 술 냄새가 솔솔 풍길 것이다. 그녀는 부엌을 비틀거리며 왔다 갔다 하다 냉장고에서 와인과 크래커를 입에 물고 나올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겠지. “앞서 술자리에서 한 남자가 계속 나를 꼬시려고 했지만 난 넘어가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당신이 질투하지 않고 멍한 표정을 날린다는 이유로 시리얼 상자를 던질 거다. 그녀의 장점 | 에너제틱한 프로인 그녀가 데이트에 응했을 때 처음 5분간 느꼈던 흥분감과는 달리 아무 일도 도모하고 싶지 않다는 것. 휴, 정말 다행이지 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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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써클에서 나오는 모습이 가끔씩 목격될 정도로 일정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하다. 보통 다른 사람 앞에서 몸을 노출하길 좋아하는 그런 류의 남자들과 어울린다. 이들은 반짝이는 물건(목걸이, 반지, 자동차 키)을 모으는 걸 좋아한다. 잡지사 모델 응모 코너에 제출한 그녀의 이력서는 다음과 같다. 나이 20세. 장점: 큰 가슴. 단점 : 돈 없는 사람(아니 남자)을 싫어한다. 이상적인 프로포즈: 왕방울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트렁크를 가득 채운 풍선, 그리고 무릎 꿇은 남자(잡지에서 본 것 이외의 아이디어는 그녀에겐 없다). 그녀는 각종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데 목숨을 걸 것이고, 나이트클럽 부킹을 통해 축구선수들을 사귈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남자는 그녀를 버리고 좀 더 꼭 끼는 질을 가진 여자에게 가버릴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나면 그녀는 강남 일대의 텐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녀의 장점 | 돈과 튼튼한 허벅지가 있다면 그녀의 몸을 쉽게 가질 수 있다. 그녀의 몸매는 일단 환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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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성들은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섹시 마미로 통하는 이들은 웬만한 처녀보다 몸매가 좋다. 그녀의 지조를 시험하고 싶다면 그녀가 분당의 한 커피숍에서 카푸치노 거품을 핥을 때 다가가 은밀하게 농을 쳐보라. 그녀의 얼굴엔 곧 역겨운 표정이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유로 넘쳐나는 그녀의 가슴이 아이를 먹이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남편은 배고픈 송아지처럼 그녀의 가슴에 달려든다. 그녀는 건강한 광채를 내뿜으며 남편에게 가슴을 내어준다. 동네 중국집에서 MSG를 먹기 시작한 후로 우리들 얼굴에서 사라진 그 건강한 광채 말이다. 그녀의 장점 | 당신에게 어필하는 장점은 전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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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급하면 튀어나오는 사투리 억양은 감출 수 없다. 놀랍게도 그녀는 대학까지 지방 소도시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 싶게 평소에는 얌전한 서울 말투를 쓴다. 웬만한 남자는 절대 그녀의 사투리 억양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다. 그녀는 이미 베네통의 파스텔톤 카디건을 벗어던지고 자라의 재킷과 원피스를 입고 있다. 늦은 밤 햇반을 들고 오피스텔 문을 열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나에겐 왜 제대로된 로맨스가 생기지 않는 거냐고.’ 그녀의 장점 | 알고 보면 탱탱하고 건강한 그녀의 속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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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류의 여성은 H&M스타일(최신 유행하는 디자인이지만 소재는 정말 후진)의 의상과 눈썹 위를 살짝 덮는 검은 머리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녀는 인디 성향의 친구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그런 분위기의 친구들이 모이는 클럽에서 볼 수 있다. 트렌디한 옷과 에스닉한 액세서리를 묘하게 믹스한 그녀는 생각보다 자의식이 강하지 않은 편. 그래서 기꺼이 당신의 생활에 그녀를 맞출 것이다. 당신 친구들은 착한 그녀와 함께 있는 걸 즐거워한다. 당신은 홍대 앞 클럽과 후미진 카페, 작은 라멘집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이다. 헤어질 즈음, 당신은 그녀가 당신의 행동 반경을 다 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그녀는 당신과 같은 음악, 영화,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의 블로그에 당신 스스로가 지껄인 내용이다! 심지어 당신의 친구들, 그 친구의 친구들의 성향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신을 다음, 언제, 어디서 ‘정확히’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집착’의 단계가 오게 된다. 끔찍한 건 헤어진 다음이다. 그녀는 이별의 괴로움을 그녀의 블로그에 유치한 일기로 올릴 거다. 이런 식이다. “나는 이렇게 영혼을 바쳤는데, 넌 어쩜 나에게 그렇게 차가운 이별을 통보할 수 있니?” 그리곤 당신의 친구들에게 밤늦게 문자를 보내거나 울며 전화를 할 거다. 결국 그 모든 방법에도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당신이 얼마나 비열한지(당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비싼 선물을 받고도 보답하지 않았는지부터 당신과의 잠자리가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까지) 떠들고 다닌다. 그녀의 장점 | 도기 체위로 섹스를 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횟수가 반복되면 그녀는 아이팟을 끼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녀는 여신 같은 앞머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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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부자들을 따라다닌다고 믿으며 성장한 여성. 겨울은 설질이 좋은 스키장이 있는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의 야자수 아래서 보내고 노동자 계층과 섞이는 일은 절대 없도록 피한다. 하지만 결코 뼛속까지 부자인 친구들의 소비 행태를 따라갈 수는 없다. 왕족인 아빠 엄마를 둔 그녀의 친구들이 갤러리아 웨스트를 싹쓸이하는 동안, 그녀는 면세점 가격과 은근히 비교하느라 뇌가 다 지끈거릴 정도다. 공주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좀 더 날씬해지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멘솔 담배와 안주 뺀 술과 샐러드로 연명한다. 모든 것이 칼로리 전쟁인 그녀의 생활은 그래서 늘 피곤하다. 당신이 그녀와 사귄다면 한번쯤은(눈에 씌인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에) 그녀의 카드빚을 갚게 될 것이다. 그녀의 장점 | 항상 예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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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단정한 옷을 입고 열심히 공부하는 어학 연수생이었다가 밤이면 꼭 끼는 톱에 공짜 술을 밝히는 여자로 변한다. 유혹적인 러시아,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건너온 그녀들은 현지 남성과의 관계를 즐기며 그들의 돈으로 노는 걸 좋아한다.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돈을 잘 쓴다는 걸 그녀는 꿰뚫고 있다. 보통 주말이 되면 친구와 쌍을 이뤄 홍대 앞이나 압구정 클럽으로 마실을 나온다. 그녀와 데이트를 할 경우 당신은 종착역이 아닌 정거장이 될 것이다. 그녀의 장점 | 침실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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