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스펠드가 밤하늘에서 눌러 찍은 한반도 땅덩어리 사진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윗도리는 검고 아랫도리는 반짝이는.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보여준다는 설명과 함께 “북한 정권이 주민들 삶을 위해 하는 일은 오로지 전쟁뿐이다”라는 유난히 친절한 멘트도 달려 있었다.
저 발광하는 대한민국은 한밤중에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사진을 본 시각은 마감의 막바지여서 우연찮게도 늦은 밤이었는데 왠지 쓸쓸했다. 나를 포함한 야근 동지들이 반딧불처럼 꼬리에서 레이저빔을 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사진 속엔 수백만 명의 분할된 개개인들의 밤시간이 퍼즐조각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쉬의 사진이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고 백이되 백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야근이 싫다(누구는 좋을까).
하지만 마감이라는 족쇄를 찬 자들은 야근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야근의 피를 타고난 것처럼 한 달의 반을 촬영·인터뷰·원고 라는 트리플 압박에 시달리며 일정 시간이 되면 각성제라도 투여하듯 비타민을 꾸역꾸역 몸뚱아리에 밀어넣고 밤을 난다. 기자 초년병시절 부서에 유난히 야근을 많이 하던 선배가 하나 있었다. 물론 잠이 많은 선배이기도 했지만. 영화 전문 기자였던 그는 수많은 원고를 ‘귀가 불가’라는 구호 하나로 완수했다. 마감이 시작되면 회사에서 먹고, 자고, 씻었다. 출근을 하면 저 멀리서 흰 수건을 목에 두른 선배가 편집부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추석 연휴에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를 보는데 그 선배가 카메오로 몇 분 정도 출연한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잘 차려입은 선배의 양복과 그 매끈한 칼라 위로 그 허연 타월이 스물스물 오버랩되더라. 아, 이 지긋지긋한 야근 귀신.
야근 없는 세상에 대한 나의 욕망은 기자라는 업무의 하중이 야근이라는 물리적 압박이 없더라도 그야말로 ‘빡세기’ 때문에 이글이글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야근이라는 단어는 고상하기까지 하다. 마감 막바지는 그야말로 철야 수준이란 말이지. 인쇄소에 필름을 송고하고 해장국 한 그릇 해치우고 하얗게 빛나는 햇빛을 애써 외면하고, 일개미처럼 같은 시간에 몰려나와 출근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청승맞게 퇴근을 하는 아침을 50개월 이상 반복적으로 맞이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날짜에 책이 발간되어야만’ 한다는 ‘독자와의 약속’을 휴지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을 했다. 야근을 없애자. 사실, 이 바닥 생리를 아는 자라면 누구나 콧방귀도 안 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지만 말이다.
2001년의 가을 ‘어떻게 하면 야근을 줄일까’를 놓고 배당의 조율, 시스템 개선, 기자들의 의식 개선, 어시스턴트의 수급 문제, 협력 부서에 대한 틈새 없는 감시와 공조라는 문제를 놓고 나는 또 야근을 했다. 결국 시간은 걸렸지만 일 년 후부터는 적어도 밤 12시를 넘기는 일은 없는(뭐, 이렇게 말하니까 매우 민망하지만) 마감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달 <아레나> 편집부에도 철야 방지, 야근 축소 바이러스를 살포했다. 창간이라는 버거운 등짐을 지고 있는 자들에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이제는 해내야지 싶었다. 채찍 든 사감처럼 원고를 독촉하고(심지어 연휴에도!) 실시간 가시눈을 뜨고 감시했다(기자들이 날 싫어할 게 분명하다). 심지어 아트팀과 사진팀까지 콩 볶듯 볶았다. 그런 이유로 하루 정도 마감이 당겨지고(24시간이란 엄청난 성과다) 야근은 일정 부분(기자들 원고를 넘기느라 나 안 보는 데서 더 많은 야근을 한 건 아닐까?) 줄었다. 야근을 줄인다는 건 집중도를 높인다는 것과 정비례하는 것이라 아마도 기자들은 혼이 쏙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근을 줄인다는 건 그만큼 개인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그건 향후 기자들의 머리에 숨구멍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수혜자는 독자들이다. 기자들의 안정된 호흡이 책의 퀄리티를 깊이 있게 숙성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우여곡절이 많은 마라톤 코스와 같아서 자칫 호흡을 놓치면 낭패를 보게 된다. 시간에 내몰려 거칠게 내뿜는 기사는 누가 읽어도 감흥이 없다. 결국 야근 절감은 잡지의 질을 위한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달 <아레나>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잡지의 데스크 10명을 인터뷰했다. 금세라도 나무향이 전달될 것 같은 훌륭한 재질의 소담스럽지만 세련된 데스크(나의 로망이다. 모든 편집장의 책상이란 것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 나오는 미란다의 것과 같다고 상상하면 안 된다)를 배경으로 한 인물 사진과 함께. 그들의 인터뷰를 담은 스페셜 에디션을 마련한 건 ‘병들어가는 신문과 범람하는 포털 사이트 속에서 그 빛을 잃지 않는 당대의 잡지(에디터의 글을 그대로 옮기겠다)’가 이토록 많음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음이다. 그들도 나처럼, 때론 기자들의 지친 기색이 뻔히 보이는 데도 모른 척하고 밀어붙이는 자신을 책망하고, 제대로 알고 쓴 기자들의 글(수정할 것이 없는)에 환호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면서 오늘 밤에도 이런 고민을 할지 모른다. ‘내가 몇 칼럼이라도 더 해서 기자들 일을 덜어줄까? 그래야 야근이 줄지 않을까?’ 이런 허무맹랑한 자가당착에 빠질지도. 기자들은 ‘야근 절감’을 외치는 나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오히려 마감의 숙제를 하나 더 안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난 모른 척할 것이다. 난 프라다를 입지는 않지만 <아레나> 가문의 공인된 악마, 안성현이므로.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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