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오중석 Editor 박지호 Stylist 정윤기(INTREND) Hair 김영주 make-up 서희영(제니하우스)
Fashion Editor 신정인(스타일링 프리랜서)
Editor Says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배우들을 가장 많이 인터뷰해본 기자 중 하나일 이동진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하늘과 조승우를 보며, 배우들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인 때는 어찌나 말을 못하는지 연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혀를 끌끌 찼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만나보니 그야말로 중견 배우 못지않은 관록과 품격을 자랑하더군요. 역시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낸다는 건, 그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맞다. 인정하는 바다. 지금 당신이 우러러보는 대배우 이순재도, 윤여정도 신인 때는 대본 리딩도 제대로 못해 온갖 구박과 설움을 겪었다고 하지 않던가. 요는 누구나 어설픈 ‘초짜’ 시절을 거쳐 더 높은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막 새로운 단계에 진입 중인 젊은 배우들의 한층 농익은 표정을 찾아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한지혜를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내 확신과는 달리 주변 동료들은 고개를 모로 꼰 채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그 어린아이에게 따로 들을 이야기나 있겠어?’라고 웅변하는 듯. 그렇다. 어찌 보면 이건 도박이다. 한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삶의 깊이를 채록하는 직업을 가진 기자에게 밋밋하고, 평면적이기 쉬운 나이 어린 인터뷰이는 자칫 쥐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귀엽고, 발랄한 기존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한지혜는 ‘탤런트’라는 수식어 대신 ‘배우’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달고 싶어서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고는 지금껏 감춰왔던 ‘슈퍼모델다운’ 몸매를 한껏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 수줍게 섰다. 그녀는 지금,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단다.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탤런트가 아닌 ‘배우’, 소녀가 아닌 ‘여자’, 한지혜에 대해서 말이다.
Han Jihye Says
저번 작품을 끝마치고 나서 3개월 동안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팠어요. 내가 지금껏 잘못 살아 왔구나,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틀렸구나 하는 허무감이 온몸을 감쌌던 탓이죠. 지인들은 그런 날 이해하질 못했어요. “아니, 방영 내내 시청률 1위를 차지했겠다, 여배우 인기도 조사에서도 상위에 랭크되겠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괴로워해?”
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배우의 길에 입문했어요. 이렇게나 힘든 길인 줄 알았다면 아마 쳐다보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처음부터 그야말로 ‘뻥’ 터져버리고 말았어요.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러고는 발랄하고, 사교성 있고, 쾌활하기까지 한 브라운관 속 ‘한지혜’를 예뻐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생겼고요. 누가 상처를 줘도 ‘헤헤’거리며 웃고, 낯선 사람을 만나도 먼저 밝게 웃으며 다가가 말을 걸고, 항상 발랄한 표정으로만 사진을 찍었죠. 문제는 내 마음속 ‘진짜’ 한지혜는 한없이 수줍음을 타는 평범한 아이였다는 거예요. 항상 남들이 원하는 착한 ‘척’, 쾌활한 ‘척’만 하고 살아가다 보니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게 불가능해졌죠. 여러 가지 아픔들이 연이어 닥쳐오는데도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내야 했어요. 사람들은 얼굴에 그늘 한 점 없는 소녀, 한지혜만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허무함의 끝에서 문득, 지금까지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차분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나를 구성하는 여러 항목을 하나씩 지워가다 보니 ‘배우’라는 단어 하나만 오롯이 남더군요. 물론 제가 완벽한 연기파로 거듭났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욕심이 생겼다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탤런트 한지혜’가 아니라 ‘배우 한지혜’라는 단어가 검색되면 좋겠다는 욕심이오. 두려움도 들었어요. 과연 내가 지금 와서 배우의 길을 포기한다면 나란 여자의 가치를 과연 어디서 입증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죠. 너무 이기적인가요?
맞아요. 이기적일 뿐 아니라 계산적으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에 잠들어 있는, 나도 미처 몰랐던 다양한 버전의 한지혜를 보여주는 것만이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름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 <에덴의 동쪽>을 선택한 거예요.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180도 다른 극단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면 잘하든, 못하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테니까. “한지혜에게도 저런 표정이 있었어?”
앞으로 더 독해지려고요. 상대방의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저, 너무 지루한데 그만 일어나 집에 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할 거고, 누군가가 싫어지면 “나, 당신의 이런 점 때문에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도 툭 던질 거예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다면 일부러 까탈도 부리고, 짜증도 부려보려고요. ‘착한 여자’의 틀을 벗어버려야만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거든요. 연기자로서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내면의 상처, 콤플렉스, 괴로움, 즐거움 등 원초적인 감정도 표출하지 못한 채 착한 ‘척’만 하는 배우가 과연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떤가요? 아직 스물다섯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한지혜라는 배우가 한 뼘 정도는 자란 것 같지 않은가요?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섹시해 보인다고요? 몰랐어요. 아니에요. 일부러 몸매를 감추거나, 청순해 보이려고 노력했던 거 절대 아니에요. 그냥 잘 몰랐어요. 제가 섹시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요. 조금 수줍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데요? 이것 또한 나 자신도 잘 몰랐던 한지혜를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겠죠. 아,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요. 마음 한구석이 싸해오지만 또 한 편으로는 뿌듯하게 충만해오는 이 느낌,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죠? 그래요. 더 독해질래요, 그리고 더 섹시해질래요. 그렇게 배우가 되는 과정을 한 걸음씩 천천히 밟아갈래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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