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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영표와 설기현을 모함했나

확실한 건, 우리는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다. 슈퍼맨은 죽었고,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한때 이영표와 설기현은 분명 국민 영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환호와 격려 대신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에 사로잡힌 두 남자가 입을 열었다.<br><br>[2008월 9월호]

UpdatedOn August 21, 2008

Photography 이준용 Editor 이기원

한국 축구의 영웅들과 만나는 자리의 감흥은 복잡했다. 대표팀은 최근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프리미어리거인 이영표와 설기현에게는 더욱 심한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최근의 몇 경기만으로 그들에게 비난을 던지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2002년의 환희, 처음 빅리그 진출설이 나돌던 날의 두근거림, 그리고 빅리그 입성 뒤 보여줬던 놀라운 플레이들은 우리의 누추한 새벽을 얼마나 위로해줬었나. 그래서 그들의 트레이드설이 들려오면 오래된 친구의 소식을 듣는 듯 궁금했고, 부상 소식이라도 들릴라치면 사골이라도 고아서 떠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그들의 모습은 분명 실망스러웠다. 이영표는 계속 번복되는 이적 소식과 팀 내 쟁쟁한 경쟁자들로 인해 입지를 잃었고, 설기현은 여전히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채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설상가상, 최근 월드컵 평가전에서 두 선수가 보여준 몸놀림은 어딘지 답답했고, 둔해 보였다. 너무 기대했기에 실망도 컸다.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보여줬던 그 현란한 발놀림을, 레딩FC에서 설기현이 보여줬던 화려한 크로스와 득점을 다시 기대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걸까. 하지만 비난과 의혹은 잠깐 접어두자. 그들은 아직 가진 패를 다 꺼내보이지 않았다.


둘 다 요즘에는 골프에 취미를 붙였다던데, 골프 치면 성격 나온다더라.

이영표(이하 표) 재능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어려서부터 했다면 지금쯤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을 수도 있을 텐데.(웃음)

설기현(이하 설) 맞다. 영표 형은 굉장히 침착하고 신중한 편인데, 골프 칠 때도 그런 성향이 나타난다. 다만 가끔 난감한 상황도 생긴다. 뒤에 사람이 밀려 있는데도 신경 안 쓰고 공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웃음) 나? 나는 축구할 때와 똑같다. 기복이 심하다.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지 각각 3년, 4년이 됐다. 해가 거듭될수록 차이점이 느껴지던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처음에 비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편한 건 사실이다.

나는 챔피언십에서 먼저 뛰지 않았나. 그래서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막상 두 시즌을 뛰어본 결과, 한국 선수들도 충분히 해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축구에서는 실력 외에도 운 같은 것들이 많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맞다. 사실 세계 톱클래스 선수가 K리그에 왔을 때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다. 실제 축구에서는 축구 외적인 적응력뿐 아니라 경험과 위기관리 능력도 필요하다. 한국 선수들도 퍼텐셜은 대단하다. 그런 경기 외적인 면들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국가 대표팀의 최근 경기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물론 이영표와 설기현의 플레이도. 컨디션이 안 좋았나?

영표 형이 할 말이 많을 거다.(웃음)

경기 혹시 봤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나? 정말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내가 헛것을 봤나? 어쨌든 당신들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선수들 모두 손발이 안 맞더라. 엇박자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같았다.

연습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손발이 맞기를 기대하는 건가. 비겼으니 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다. 언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조금 결과 좋으면 최고라고 띄우고, 조금만 안 좋아도 몸이 무겁네, 최악이네 그러는 거지.

그런 식의 기사는 팬과 선수,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기자들보다 오히려 팬들의 수준이 더 높으니까. 차라리 사실에 근거한 정보나 뒷얘기 같은 걸 취재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사실 선수들보다는 허정무 감독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략과 전술이 전무해 보인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지 얼마나 됐나. 하물며 우리는 네덜란드 대표팀같이 톱클래스 선수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톱클래스 선수가 맞는데?

결국 축구는 단체 게임이다. 그런데 대표팀 내에 아직 전술적인 움직임이 뭔지조차 모르는 선수도 있다.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누구도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선수들이 함께 있는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훈련이 가능하겠나.

하지만 팬들은 항상 국가 대표팀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길 바란다.

바로 그거다. 그게 제일 문제다. 아주 객관적으로 말해서, 한국 축구는 아시아에서도 항상 승리만 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일본, 심지어 이라크 역시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팬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축구인들마저 그렇다. 어떻게 그런 아마추어적인 생각을 하는지 참 답답하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어떻게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었겠나.

우리가 프랑스를 이기고, 스페인을 이겼던 건 우리 입장에서는 잘한 거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 축구 아닌가? 아시아 상위 클래스 팀들이 유럽 팀들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처럼, 아시아 내에서도 각국의 실력 차이가 좁아지고 있다. 그런 걸 인정하지 못하니까 1대0으로 이겨도 만족하지 못하는 거다.

그럼 국가 대표팀이 약팀을 만나 졸전을 펼쳤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

물론이다. 그것 자체가 이미 교만한 생각이다. 국민들이 대표팀에 거는 기대에 비판적인 것 같다.

선수와 팬들의 생각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이나 북한 같은 팀들과 경기할 때를 생각해보자. 시합에 뛰는 선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이길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한국 축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 월드컵 4강? 해외에서는 한국 축구를 전혀 대단하게 보지 않는다. 그때 한 번 반짝한 거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시안컵에서 당연히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당한가? 아시안컵은 우리를 위해 준비해놓은 파티가 아니다. 우리의 도전 과제일 뿐이다.

40등 하던 애가 30등 하면 잘했다고 하지만, 4등 했던 애가 10등 하니 얼마나 애가 탔겠나.

그러니까 그때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어쩌다 찍은 문제도 정답이 된 것뿐이라니까. 얼마 전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무분별한 해외파의 소집이 그들의 레귤러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해외파 선수의 차출이 너무 잦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약팀과의 경기에서도 해외파를 차출할 필요가 있나?

이젠 매 게임 베스트를 다하지 않으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약팀이라도 말이다. 그러니 차출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나도 한국인이니까. 그리고 지금 성공의 밑바탕도 결국 대표팀 아닌가. 불만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한창 페이스가 올라갔을 때, 평가전 같은 데 부를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는 선수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A매치 기간에는 모든 클럽의 선수들이 다 국가의 부름을 받는다. 다만 유럽과 한국은 너무 거리가 머니까 힘든 건 사실이다.

이런 불만은 있다. 해외파를 쓸 거라면 상태를 확실히 점검해야 한다. 컨디션도 확인하지 않고 불러놓고는 막상 경기에서는 컨디션 문제로 쓰지 않는다. 선수 입장에서는 일단 시합에 뛰는 것이 컨디션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그냥 벤치만 달구다 가면 참 난감하지. 체력적으로 손해다.

오늘 꽤나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언론과 팬들의 쑥덕거림이 신경 쓰이지는 않나?

기현이나 나나 이제는 언론 보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너무 많은 우여곡절을 헤쳐 나왔으니까.

다만 어린 선수들은 쉽게 상처받고, 또 잘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안타까운 경우가 많지만, 어차피 자신이 겪어내야 할 일들이다.


“한국 축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 월드컵 4강? 해외에서는 한국 축구를 전혀 대단하게 보지 않는다. 그때 한 번 반짝한 거다."

설기현

개인적으로 박지성이나 이영표보다는 설기현을 더 만나고 싶었다. 설기현은 이래저래 과소평가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동의하나?

(웃음) 고맙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 얘기를 잠깐 하자. 현 소속팀인 풀럼은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했고, 전 소속팀인 레딩은 강등됐다. 당신은 풀럼 벤치에 앉아서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으니 심정이 복잡했겠다.

나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레딩을 떠나 풀럼으로 이적하기는 했지만, 떠날 때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감독도 나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결국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돼서야 코펠 감독이 가도 된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이건 자신이 원한 바가 아니라고 했다. 나도 아쉬운 마음이 컸다. 동료들과도 너무 친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풀럼이 올라간 건 참 다행이었지만, 코펠 감독의 얼굴을 보는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코펠 감독과 불화설이 계속 흘러나왔는데?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울버햄튼 때도, 레딩과 풀럼에서도 당신은 항상 감독과 불화설이 흘러나온다. 왜 그럴까.

나는 감독의 지시도 잘 따르는 편이고, 훈련량도 항상 팀 내 1위다. 하지만 아무리 감독의 명령이라도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 선수들은 감독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지만, 유럽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서로 생각이 충돌할 때는 그런 부분을 말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런 의사 표현 과정을 언론이 과장해서 보도한 것뿐이다. 선수가 아무 이유 없이 항명하면 그건 분명 잘못이지만 난 그렇지 않다. 현재 소속팀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서로 의지하며 한 팀에서 함께 뛰었었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독고다이’였다. 히딩크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벨기에에서부터 프리미어리거가 된 지금까지 당신은 항상 혼자 힘으로 뭔가를 해왔다. 그래서 현재의 당신이 더 대단해 보인다.

한솥밥을 먹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너무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이 있다는 것도. 하지만 지금의 나 자신에게 만족한다. 당신 말대로 나는 한 계단씩 성장해왔고, 결국 목표였던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내가 톱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에게 친밀한 동료나, 든든한 감독이 있었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됐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유럽에서 뛰며 느꼈던 건 ‘다음’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거였다.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계속 방치되고, 내팽개쳐진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선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내게도 그런 배려가 있었다면 조금 더 일찍 목표를 달성했거나,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당신에 대한 뿌리 깊은 소문의 하나는 ‘설기현은 안 뛴다’는 거다. ‘설기현은 게으르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런 얘기 들으면 정말 기분이 나쁘다. 소속팀 경기건 대표팀 경기건 대충 하려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는 없다. 시합 전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실망스런 플레이를 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는 경기는 맹세코 없다. 그건 스타일의 문제일 뿐이다. 팬들이 그런 면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건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외모에서 비롯된 터프함이 왠지 90분 내내 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니까.

일단 내가 다른 선수들보다 키가 크고, 다른 선수들보다 성큼성큼 뛰는 스타일이라 그런 것 아닐까. 내가 느린 것도 아닌데 느리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총총발로 뛰는 연습이라도 하려고 한다. 그래야 좀 더 열심히 뛰는 것같이 보일 것 같아서.(웃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의 크로스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윙 플레이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 같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어떤 포지션이 편한가.

맞다. 나 역시 윙에 있을 때 가장 편하다. 소속팀이 내게 원하는 건 돌파와 크로스인데, 대표팀에서도 그런 역할이 주어질 때 가장 편하다. 다른 포지션에서는 플레이가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이른 질문이겠지만 혹시 K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더 이상 베스트를 다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그만둘 거다. 그게 프로다.

타고 온 차는 본인 건가?

그렇다. 폭스바겐 파사트 2.0 TDi인데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이 차만 운전한다. 파워도 넘치고, 운전하는 재미도 있다. 연비도 훌륭해서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도 어울린다.

그래도 기름값 걱정하면서 운전하지는 않겠지?

그거야 뭐.(웃음)

이영표

당신이 국가 대표로 뽑힌 것이 스물두 살때였다. 정말 빠른 나이에 국가 대표가 된 거지. 그 이후 당신은 계속 승승장구해왔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큰 고난의 시기인 것 같다.

글쎄. 힘들다는 게 뭘까. 사실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걸 결국 이뤘고, 국내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꿈꾸던 것들을 이루기까지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몸도 마음도… 너무 나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항상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여전히 종교와 가족인가?

그렇다. 하느님과 가족. 이 둘을 떼놓고는 내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도 안다. 일부 사람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행동을 하고, 비판받고 있다는 것.

박주영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심지어 득점 이후 골 세리머니마저 비난받는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스포츠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종교가 없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종교인들은 그것 자체가 삶이다. 공부하건, 일하건, 놀건 그 안에 종교가 늘 함께하는 거다.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수 있나? 그게 너무 이상하다.

종교 자체가 삶이라. 그럼 AS로마로 이적하지 않은 것이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루머도 사실인가?

그 이유는 조만간 얘기할 수 있을 거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아직은 조금 이르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당신과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을 꼽아야 한다면 그건 이영표가 아니라 박지성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대견한 것이 나는 불필요한 명예욕이 없다. 그래서 남의 시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힘들어서 못 살았을 거다. 나는 축구가 즐거워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토트넘에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다. 그건 지난 시즌에 그랬듯 당신의 주전 가능성이 낮다는 말도 되고. 그렇다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야 경기도 즐길 것 아닌가.

난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거의 모든 경기에 레귤러로 뛰어왔다. 내가 주전으로 뛸 때에는 누군가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고. 그러니 내가 지금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서운할 이유는 없는 거다. 경기에 뛰지 못한다 해도 연습만으로 충분히 즐거우니까.

그건 주전이 아니더라도 토트넘에 계속 남고 싶다는 말 같은데?

글쎄.(웃음)

일부 언론은 아인트호벤으로 이적이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떠들고 있는데도 말인가.

물론 이적이 절대 없다고 못 박는 건 아니다. 지금 여러 팀에서 오퍼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다만 아인트호벤은 수많은 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데뷔 때부터 끈질기게 당신을 따라다니던 문제는 크로스 패스의 정확성이었다. 이영표가 크로스 패스 능력만 더 키웠다면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신 생각은 어떤가.

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약점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거기에 크로스 패스 능력은 들어가지 않는다. 내 크로스 능력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오른발을 쓰는데도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나. 당신이 라이트 풀백이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레프트 풀백은 희소성이 있는 포지션이다. 양발을 모두 쓸 수 있기 때문에 왼쪽 포지션에 가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유럽은 왼발을 쓰는 수비수가 드물다. 레프트 풀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공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현재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좋은 레프트 풀백들이 넘쳐난다. 애슐리 콜, 클리시, 에브라 등. 현재 리그에서 당신 포지션의 베스트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모두 좋은 선수들이지만, 카를로스나 리자라쥐 같은 선수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 내게는 여전히 카를로스가 최고다. 아직은 그를 뛰어넘을 만한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

말투가 냉소적이다. 이래저래 심적으로 복잡했나 보다. 당신을 둘러싼 상황들에 염증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난 1년간 나만큼 말이 많았던 선수가 어디 있나. 모두 나를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은 거겠지.

그런 당신은 후대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모두 다르니까. 나는 재미 때문에 축구를 시작했고, 또 많은 걸 이뤘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알려질 때와 같이 조용히 잊히는 선수가 되는 것.

잊히려야 잊힐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난 특별히 기억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는 것도 싫다. 만약 누군가가 날 기억한다면 한 장의 사진처럼 특정한 순간의 이미지만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거면 만족한다.

그런데 몰고 온 차가 꽤 커 보이네.

폭스바겐의 페이톤이다. 내가 차 선택 시 고려하는 건 단 하나다. 안락한 승차감. 운동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차를 타는 경우가 많으니까, 잠시라도 편안하게 운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면에서는 페이톤만큼 좋은 차가 없다. 영국에서도 이 차만 운전한다.

큰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타 의식이 강하다던데.

음… 죄인이라는 생각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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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이준영
Editor 이기원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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