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먹는 놈
세월이 창창해지다 보니 요리하는 남자들이 칭송받는다. 여자를 위해 앞치마를 두른 알렉스처럼 말이다. 달걀흰자를 정갈하게 분리해 거품을 낼 줄 아는 것, 토마토를 팔팔 끓는 물에 삶아 퓌레를 만들 줄 아는 것, 당면과 메밀 면을 재료로 한 요리의 불 조절에 일가견이 있는 게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다. 일단 공감각적 행위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일상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경험적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 세상이다. 요즘, 혼자 사니 어쩔 수 없이 솥뚜껑을 연다는 궁상맞은 남자를 보기란 힘들다. 장을 잘 보는 남자에게 가산점이 무한정 쏟아지는 게 요즘이다. 쌀만 불릴 줄 아는 남자가 아니라 야채를 볶고 지단을 내고 고기를 잴 줄 아는 남자, 그들의 우수성은 잔일에 능하다는 데 있다. 잔일이라 함은 오감의 행위를 말한다. 옷의 안감을 살피는 일, 소설 속 문장에 감동하는 일, 풀과 나무에 감사하는 일, 누군가의 안색과 입맛을 살피는 일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평생을 어머니와 아내의 밥상을 타고 넘나들며 사는 남자와는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술의 향과 맛에 상관없이 폭탄주를 말아 혀의 본성을 마비시키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잔감정’이 파릇하다는 것이다. 또한 아날로그적이라고도 할 만하다. 요리란 것이 손을 써서 찬찬히 돌보는 행위여서다. 게다가 요리엔 트렌드란 이름으로 퓨처리즘이 적용된 적이 없다. 요리의 원리와 재료는 원시적일수록 좋다는 게 근본이니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연 친화가 무엇인지 부지불식간에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손에 물 묻히기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찰지다. 옷을 고르고 사고 입고, 차를 고르고 타고 달리고, 음악을 고르고 듣고 즐기는 점성이 찰지다. 감성 점도가 그만큼 높다는 거다.
결혼 안 한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을 두고 ‘이상형’이라 부른다.
요리하는 남자는 그녀들의 환호를 먹고 자라 피부에서도 광이 난다.
잘 먹는 놈
요리를 하는 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잘 먹는 자에겐 찬사가 이어진다. 이건 하늘을 이고 살아온 이래 대대손손 전해오는 본능적 호감이다. 물론 ‘게걸스럽다’는 하대의 표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거야 가난했던 시절의 수식이지 웰빙이니 슬로 푸드니 하는 철학적 밥 먹기를 강요하는 21세기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예로부터 잘 먹는 놈에겐 복이 딸려온다 했다. 상식적인 사회에서는 남이 내온 음식을 4/5 이상 먹는 것이 매너이며, 볼썽사나운 짓만 하지 않는다면 접시 밑바닥이 드러나도록 먹는 건 흉잡을 일이 아니다.
잘 먹는 놈은 평생 어머니와 아내의 칭찬을 받고 살찐다.
막 먹는 놈
막 먹는 놈을 수식하는 단어 혹은 문장 몇 가지. ‘본데없다, 게걸스럽다, 가래터 종놈 같다, …’ 뭐 그리 고상한 표현은 아니다. 메뉴를 고르는 데 들이는 시간과 고른 메뉴를 먹어치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은 족속이다.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돌쇠형 남자들이 주를 이루는데 과거엔 ‘우직하다’는 이유로 칭찬받았으나 일만 하는 남자가 무매력으로 매도되는 요즘엔 뒷방 신세다.
일만 해서 몸 곯고 인기 없어 맘 곯는다.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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