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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성재의 `4레일`을 찾아서

깊고 사려 깊은 음성, 안정된 연기력, 때로는 샤프하고 여리고 악랄한 이미지… 이성재의 매력이다. <br><br>[2006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3, 2006

Photography 이난 Hair&Make-up 이기동 Stylist 디아나(Diana) Editor 김영진

목숨 걸고 연기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직업인처럼 배역을 맡아 캐릭터 사이를 유유자적 순항하는 배우도 있다. 종종 듣는다. “이번 영화는 죽을 각오로 찍었어요.”
재난 영화나 액션 활극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멜로를 찍고 휴먼드라마를 찍어도 혈기 왕성한 배우들은 목숨을 내놓는다. 반면 ‘직업인 배우’들은 어떤가? 왜 이 영화에 출현하게 됐고, 캐릭터와 배우의 실제 모습을 결부시키면, 시나리오가 좋아서거나 감독님이거나 무엇보다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배우라고 해서 뭔가 특별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실감나게 연기 잘하고, 잘하는 것을 뛰어넘어 캐릭터를 새롭게 탄생시켜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은 인물을 만들어내야 할 사명이 그들에게 있다. 1회 관람료 8천원에 대한 배우들의 마음의 빛이다. 다분히 배우들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인성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지, 돼지 갈비를 구워 먹을지 잠시 생각하다 삼겹살을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입맛이고 취향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정말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더라도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목숨 걸었다는 소리도 별로 듣고 싶지 않다. 그 배역을 연기해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래서 어떤 색깔의 배우가 될지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자의식 있는, 자아가 강한 배우 보기가 쉽지 않다.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다면 제작사에서 캐스팅에 애를 먹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솥뚜껑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아직도 관객들은 자신의 마음에 전율을 일으킬 배우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몇 안 되는 그런 배우들을 찾아 여전히 주말에 영화관 앞을 서성인다. 그중에 이성재도 끼어 있다.
이성재라는 배우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거짓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매력적인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마음의 상처를 고백할 때 몇 사람 빼고 다 쓰러졌다. 그를 보면서 여자들은 유난히 자신을 잘 따른 남자 후배를 떠올렸고, 남자들은 잘 보살핀 조카가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사랑의 고통을 함께 안타까워했다. 세인들은 쑥덕거렸다.
“신인 배우야? 연기 잘하더라. 생긴 것도 참하고 말야. 뜨겠는걸.”
그 기대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철수는 늘 누나인 척하고 엄마인 척 했던 ‘영희’ 대신(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말이다) 심은하 곁에서 그녀의 존재(송선미 말이다)를 지워내며 자아를 찾아갔다. 심은하 역시 속 깊은 이성재(철수다)와 더불어 예쁠뿐더러 연기까지 잘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때의 기반으로 심은하는 무엇으로 규정하기에는 그 깊이가 다른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이성재 역시 제대로 된 4번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됐다. 마음껏,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한다면 카메라 앵글은 그를 중심에 두고 경기를 중계할 것이었다. 관객들도 기꺼이 그에게 응원을 보낼 터였다.
그는 열심히 뛰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주유소 습격사건>, <플란다스의 개>, <하루>,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바람의 전설>, <빙우> 등 흥행이 됐든 안 됐든, 잘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감성적인 멜로 연기든 조폭 연기든 가리지 않고 치달았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뒷얘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기 연기 색깔을 끝까지 가지고 갈 연기파 배우인 줄 알았는데 속았다’, ‘영화 한두 번 안 되니까 이상한 영화만 찍는구나’, ‘작품 보는 눈이 없는 거 아냐?’ 등 쉰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공공의 적> 이후로 이어진 그의 흥행 스코어는 밑바닥을 맴돌았다. 코미디, 액션는 물론 그의 전공이었던 멜로까지 맥을 못 췄다. 그의 행보는 주춤했고, 그의 열정은 꺼져가는 듯 보였다. 그의 4번 레일에 허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정면돌파냐 우회냐! 그 기로점에 서서 그가 잠시 브라운관을 찾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악인이든, 조폭이든, 살인자든 항상 명석함을 잃지 않았던 성재,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예상과 달리 드라마에 출연했다. 심기일전을 위해 잠시 숨 고르기 하는 중인가?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드라마든 뭐든 연기를 하며 쉴 수 있는 배우라…,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드라마라고 해서 소홀히 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이번 드라마는 멜로다. 멜로가 액션이 많은 몸 연기보다 더 힘들다. 마음으로 연기하는 게 말이다. 드라마는 쉬려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배역의 느낌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당신이 대중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 역시 드라마 <거짓말>을 통해서였다. 쉬는 게 아니라면 어떤 새로운 모색인가?
글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들어온 여러 편의 대본 중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엄태웅이나 김민정 같은 좋은 연기자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어떤 계산이나 생각을 하고 고른 드라마가 아니다. 난 배우이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번 드라마 역시 그 연속선상에서 선택한 작품일 뿐이다.

최근 출연한 영화가 연속해서 결과가 좋지 못했다. 연타석 아웃된 기분이 어땠는가?
초월했다고 해야 하나? <바람의 전설>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빙우>가 실패하자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니 <신석기 블루스>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실패하기 이전에는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겪어야 할 일을 치른 듯 편안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보통 잘하는 연기만 고집하는 데 반해 당신은 물불 안 가렸다. 그렇게 이지적이고 감성적인 당신이 ‘신석기’까지 되다니 놀라웠다.
난 배우고 앞으로 연기할 날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지도 않았다. 벌써 잘하는 캐릭터, 하지 말아야 할 캐릭터를 가려서 할 상황이 못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자기 리듬을 타며 액션도 하고 멜로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뭐, 그러는 것이 배우 아닌가.

그 많은 배역들을 소화하다 보면 배우는 것들도 많다. 춤도 배웠고, 암벽 등반도 배웠다. 그리고 탈옥수도 했고, 인터폴도 했고, 살인자도 됐다. 자신한테 남는 게 있는가?
연기 때문에 춤을 배웠다고 해서 춤추러 다니고, 암벽 타기를 배웠다고 해서 암벽 타기가 취미생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기를 위해 배웠을 뿐이고 그것 때문에 내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뭐, 다음에 그와 비슷한 배역을 다시 하게 된다면 도움은 될 것이다.

<홀리데이>에서 탈옥수 지강혁 역을 맡았을 때는 여운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홀리데이>는 배급 때문에 극장 확보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항한 실존인물 역이라 분했을 것 같은데.
내가 화낼 일이 아니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연한 배우가 나서서 뭐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것은 회사 간의 일이다. 우연히 배급사 대표를 골프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며 날 위로해주시더라. 나한테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홀리데이> 역시 힘들게 촬영했지만 출연한 여러 작품 중 하나일 뿐이다.

타의로 연기한 배역 때문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히 <공공의 적>에서 보여준 악인은 치를 털게 한다. 기존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배우에게 악인 연기는 한 번쯤 필요하고 악인이 될 바에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못된 놈이 되자고 생각했다. <공공의 적> 조규환이 딱 맞았다. 강우석 감독님 역시 믿을 수 있었고, 오히려 멜로연기보다 쉽다고 생각됐다. 정말 나쁜 놈이 되면 되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였다.

그래서 신석기 역을 맡은 것인가?
역시 이왕 할 거라면.

연기학과에 진학하며 연기공부를 시작하게 됐지만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이었던 당신에게서 연기자의 끼가 있다고 믿었는가?
연기자의 꿈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극 한번 안 해본 사람 없듯이, 그 정도의 경험만 있을 뿐이다. 뭐 다르다면 주인공을 여러 번 하긴 했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를 했으니 연기력과는 상관없는 배역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연기했다. 특히 <미술관 옆 동물원>부터는 연기파로 거듭나려는 여배우의 상대역이었다. 제작사들은 당신의 안정된 연기력을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정말 잘나가는 여배우들 상대역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래서 그 배우들이 나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상황이 그래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었을까? 오히려 내가 고맙게 생각한다.

배우이기 때문에 다양한 연기를 할 수도 있지만 여러 대본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럴 때의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굳이 말하자면 영화적인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운이다. 이 3가지가 충족돼야 하고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 선택한다.

그런 기준으로 다시 해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찍었던 것을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다시 새로운 역할을 찾을 것이다. 아직 이것이 내 연기고 색깔이라고 정해놓고 연기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배우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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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hotography 이난
Hair&Make-up 이기동
Stylist 디아나
Editor 김영진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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