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AINT LAURENT
이만큼 퇴폐적일 수도 있구나 싶다. 위태로운 젊음을 마주하는 것처럼 불편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적지 않은 시간 신은 것처럼 흔적이 남은 가죽은 광택마저 불온하고, 절개는 암흑보다 아득하다. 송곳처럼 뾰족한 앞코, 8.5cm의 굽. 이 부츠를 견딜 수 있는 남자는 애초에 정해져 있다. 부단하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1백70만원대.
2. DIOR HOMME
이번 시즌 디올 옴므의 맥락은 클래식한 턱시도를 현대의 것, 예상치 못한 것들과 혼용해 낯선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브닝웨어를 위한 더비 슈즈에 스포츠웨어에서 영감을 얻은 투박한 러버 솔을 추가했다. 칠흑처럼 검은 구두에 일렉트릭 블루라 불리는, 정신이 번쩍 드는 파란색을 조합했다. 가격미정.
3. LOUIS VUITTON
트레킹 부츠의 억세고 모난 것들을 질서 있게 깎아놓은 형태다. 연유색의 송아지 가죽은 어찌나 보송한지,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싶다. 이름이 ‘스월(Swirl) 앵클부츠’라 가죽 패턴의 모양과 아웃솔이 소용돌이를 슬쩍 닮았다. 4개 층으로 된 솔 중 하나는 폴리우레탄 소재라 보기보다 가벼워 흠칫 놀란다. 가격미정.
4. BALENCIAGA
정직하게 생긴 레인 부츠처럼 거추장스러움이 없는 디자인이다. 입구를 넓게 만들어 바지를 넣어 신기에도 편해 보인다. 가죽은 균일하고 고와 이런 디자인의 부츠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우아함도 있다. 하나 특별한 게 있다면, 울퉁불퉁한 밑창이다. 트레킹 부츠에서 차용한 세부다. 하지만 여전히 우아하다. 가격미정.
5. VALENTINO
발렌티노는 스터드를 가장 현명하게 쓰는 브랜드다. 스터드가 도배된 어떤 걸 집어 들어도 아마추어 로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클래식하고 단정하게 생긴 검은색 더비 슈즈의 러버 솔에 마이크로 록 스터드를 빼곡하게 둘렀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든다. 1백7만원.
6. PRADA
미우치아 프라다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신발을, 어느 계절도 거르지 않고 만드는 디자이너는 아마 없을 거다. 그녀가 만드는 신발은 삐뚤어진 귀족 자제를 보는 것 같달까. 광택이 풍족한 스파졸라토 가죽의 너무나 전형적인 윙팁에 조개를 연상시키는 가죽 장식을 둘렀다. 색의 선택도 출중하다. 1백5만원.
7. GUCCI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많이 칭찬해주고 싶은 건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대수롭지 않게 쓴다는 점이다. 그는 지루해진 홀스빗 모카신에 캥거루 퍼를 수북하게 장식했다. 그렇게 완성된 완벽하게 새로운 신발. 발을 미끄러지게 넣어보면 얼마나 부드러운지는 신어보지 않고선 절대 모른다. 1백만원대.
8. ERMENEGILDO ZEGNA COUTURE by STEFANO PILATI
스테파노 필라티는 도시 정글 속 ‘친환경 리더’라는 남성상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건 그를 위한 신발이다. 두툼한 프렌치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윙팁 앵클부츠에 아이젠처럼 생긴 덧신을 씌워 보기만 해도 우직함이 느껴진다. 눈이 오는 날, 덧신을 갑옷처럼 씌우면 겁날 게 없다. 가격미정.
9. GIVENCHY by RICCARDO TISCI
이 부츠는 제법 기습적이다. 늘씬하게 쭉 뻗은 용모도 그렇고 적당히 높게 달린 굽에서도 긴장감이 있지만 규칙 같은 것은 없이 송곳으로 찔러놓은 장식들이 아주 자극적이다. 완벽하게 만든 부츠에 이런 ‘짓’이라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가격미정.
PHOTOGRAPHY: 기성율
ASSISTANT: 김은총
EDITOR: 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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