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클라운의 커리어를 좇다 보면 한국 힙합 신의 한 궤를 읽을 수 있다. 홀로 지낸 유학 시절, 비보잉으로 춤을 추며 외로움을 버텨냈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랩 가사를 썼다. 가리온 MC 메타의 제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힙합 독립 레이블 소울컴퍼니에 합류해 데뷔 앨범
래퍼들은 보통 자신이 발표한 트랙이 일기장 같은 거라 말한다. 매드 클라운도 마찬가지인가?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어투에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반영한 가사가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음악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힙합’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이 굉장히 딱딱한 편이다.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출발해 메인스트림까지 진출한 경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래서 음악이 변했다”일 거다.
사람들이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게 있다. 나는 그게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런 곡들은 사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 다 했던 거다. ‘변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유연한 편이다.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변하지 않나. 그리고 내 음악은 그 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거고. 어찌 됐든 나는 언제나 솔직한 음악을 하려고 한다. 한 사람이 자기 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 왜 옳다, 그르다 단정 짓고 비판 아닌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예술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태도는 결코 생산적일 수 없다.
- 셔츠는 J.W. 앤더슨, 팬츠는 네이버후드, 스냅백은 슈프림×꼼 데 가르송, 신발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안경은 젠틀몬스터 제품.
본인은 그런 비난에 흔들리지 않나?
예전에 욱해서 쓴 가사가 스윙스 앨범에 참여했던 ‘Gravity’였는데 이젠 상관을 안 하는 것 같다. 쓰고 싶어도 안 나온다, 이젠. 화도 안 나고.
남자는 서른 전후로 한 챕터가 열린다더라.
그렇다. 맞다. <쇼미더머니> 출연 이전의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암담했을 거다. 지금까지 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다 보면 가사가 더 잘 나왔을 수도 있겠지.(웃음)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이 극명하게 나뉜 한국 음악계에서 ‘스타쉽 엑스’에서 내놓은 첫 번째 결과물이 매드 클라운이었다. 계약할 때 고민을 하지 않았나?
고민 많이 했지.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시스타가 있기 때문이었다. 헤헤.
아, 정말?
내가 은근히 중요하고 큰 결정은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 활동해온 시간에 비해 작업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맞다. 그때그때 하고 싶을 때 하는데, 나는 하고 싶을 때가 그렇게 많지 않다. 사는 게 편해져서 그런가, 걱정이 없어서 그런가.
- 상의와 스냅백은 모두 슈프림 by 소울라이츠, 팬츠는 디스이즈네버댓, 신발은 컨버스, 양말과 선글라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걱정이 많을 때 곡이 많이 나오나?
그럼. 걱정 많고 불안하고 열등감에 똘똘 뭉쳐 있고 연애도 힘들고… 그러면 나올 거리가 많지. 사실 요즘 아티스트로서 영감이나 자극을 받는 일이 많지 않다. 스스로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 학교를 다시 다녀볼까 한다. 동생이 영화를 하거든(매드 클라운의 동생 조현철은 영화감독이자 배우로 활동 중이다). 나도 영화나 영상에 관심이 많아 동생이 다녔던 학교, 학과에 진학할까 한다. 영화 같은 경우 영상, 글, 음악, 모든 게 결합된 종합 예술이지 않나. 나는 원래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은 하고 있으니 영상 쪽을 공부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데뷔 이전 뭔가에 꽂혀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 서로 주고받던 에너지가 절실하다.
유년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정서적으로 적응하기 힘들진 않았나?
한국 대학의 동아리 문화나 선후배 관계 같은 게 좀 어색해서 거의 혼자 다녔다. 친구도 많은 편은 아니었고.
외로웠겠다.
이미 중·고등학교 유학 생활을 한 터라 그렇게 외롭고 힘들진 않았다. 외로움은 나에게 더 이상 힘든 감정이 아니다.
비보잉을 하다 랩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춤추며 힙합을 듣고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되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했다.
‘내가 좀 잘하네’ 하는 확신도 있었나?
웃기지만 그땐 그런 게 있었지. 스물, 스물하나였을 때다. 그때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했다. 어설프게 데모를 만들어 더 콰이엇에게 보냈고, 소울컴퍼니에 들어가게 된 거다.
힙합이 좋아 음악을 한 건가, 음악이 좋아 힙합을 한 건가?
그땐 힙합이 좋았다. 중학교 때 가사를 듣고 충격을 받은 앨범이 조PD 선배님 1집이었다. 한창 사춘기에 학교와 엄격한 아버지 밑에 억눌려 있던 게 그 앨범을 듣는 순간 터져버린 거다. 그렇게 힙합이 좋아졌다.
- 이너로 입은 티셔츠는 라이풀, 줄무늬 데님 셔츠와 팬츠는 모두 에스피오나지, 신발은 반스×브라운 브레스, 비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은 젠틀몬스터 제품.
그러다 본인이 결국 래퍼가 됐다. 살아가면서 래퍼로서 쓰게 되는 메시지들이 변화하는 걸 느끼나?
그렇지. 가사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쓰게 되는 단어가 확실히 있다.
매드 클라운의 초기 발표곡들을 보면 ‘열등감’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맞다. 그 열등감은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간다.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지만 그 강도가 덜해졌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것을 하고, 나는 내 것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제각각 하나의 우주’라고 하지 않나. 오직 나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그걸 담아내는 실력 또한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비교하면 내가 덜 세련되고 덜 노련하더라도 어찌 됐든 나만의 것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내가 진정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가 들여다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한다.
‘FILM LIVE: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홍보대사이자 객원 프로그래머로 추천한 영화가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2008)이다. 어떤 이유에선가?
‘엘 시스테마’라는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다. 굉장히 거대한 일종의 음악 교육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의 철학이 있다. 빈민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어려운 환경에서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예술을 통해 삶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 자체의 철학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나 역시 춤을 통해 그걸 경험했으니까. 힙합 문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예전의 그 외로웠던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거다. 예술 활동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도 알거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이런 걸 시스템화해 아이들이 혜택 받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Jdz Chung(정재환)
STYLIST: 남궁철
HAIR&MAKE-UP: 김민지
COOPERATION: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