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 니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꾸뛰르 컬렉션 by 스테파노 필라티 제품.
윤한은 무심하게 말한다. 결핍이 없는 사람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 적자면 결핍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윤한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거나,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굳이 무리해서 무엇인가 해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조용히 걸어와 스윽 앉아 있는 사람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도 앉아 있는 사람 같다. 어떤 사람은 슬퍼서 운다. 윤한은 담담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아마도 슬픔은 많은 음악가에게 훌륭한 재료가 될 것이고, 윤한에게도 그럴 텐데, 윤한이 슬퍼하는 방식은 다를 것 같다. 그럴 것 같다. 누군가 울 때, 그는 그 감정을 쓸쓸하게 적어내려 갈 것 같다. 두 개의 정규 앨범, 그리고 미니 앨범, 라이브 앨범 등이 나왔다. 그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아마도 그가 음악을 통해 관객 혹은 청자보다 먼저 울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 같다. 나는 그가 좋지도 싫지도 않다. 다만 그의 무심함을 존중하고, 그의 음악도 약간은 즐긴다.
새 앨범 나올 때가 됐다.
준비를 하고 있다. 곡은 거의 다 나왔다.
괴롭게 창작하는 편인가? 즐겁게 술술 해내는 편인가?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괴로우면 안 하니까. 곡을 써야 한다는 것도 사실 모순이다. 좋아서 쓰는 거잖아. 괴로우면 안 하면 되고. 곡 만들 때도 거의 원테이크로 한다.
진짜?
수정 잘 안 한다. 일부러. 예를 들어 1집이 그랬다. 데모랑 거의 같다. 곡을 쓰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완성한다. 스케치만 해놓는다든지, 멜로디만 만들어놓고 나중에 편곡한다든지, 이렇게 작업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멜로디와 가사를 다 붙이고,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악기들을 어떻게 넣을지 구상을 다 한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라고?
맞다.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니까. 날씨가 어땠는지, 방이 추웠는지 더웠는지, 배가 고팠는지, 뭐, 왜 음악은 거의 다 여자 얘기니까 여자랑 좋았는지 아니면 헤어졌는지, 이런 여러 상태가 조합돼서 노래가 완성되는 거다. 그렇게 만든 노래를 나중에 수정한다? 나로서는 난센스다.
1집, 2집 앨범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나? 이렇게 할 걸 그랬다거나, 어떤 부분을 고치고 싶다거나, 같은 생각을 안 하나?
여러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거의 다 좋아한다. 고치고 싶은 것은 별로….
조금은 후회하는 게 정상 아닌가?
생각을 많이 하면 나는 판단력이 흐려진다.
5월에 열리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밴드를 구성해서 참가한다고 들었다. 재밌을 것 같다.
콘서트나 공연할 때 의외로 내 노래를 연주한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엔 일반적인 커버 곡이나 유명한 재즈 곡 말고, 내 앨범에 있는 노래로만 공연할 거다. 그러다 보니 코러스도 필요하고 드럼, 베이스도 필요하다. 재즈의 경우 보통 콘트라베이스가 참여하는데, 이번엔 일렉 베이스기타를 준비하고 있다. 밴드 사운드를 내고 싶어서. 기타도 두 대 참여한다. 트럼펫도 넣을 거다. 피아노는 내가 치고.
새롭다. 녹음 안 하나? 라이브 앨범 만들듯이.
내가 노래를 못해서 녹음은 안 한다.
안 어울리게 겸손하기는.
하하.
1집이 나왔을 때는 뮤지션의 느낌이 강했다. 2집 내고 연예인처럼 돼버렸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음… 예상한 건 아니었다. 원래는…. 계획대로 삶이 흐르는 것 같지는 않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버클리 음악대학을 가게 됐다. 가수를 하거나, 가요를 작곡하려고 했는데, 거긴 완전히 재즈 스쿨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스타일이다. 재즈도 계속 들으니까 좋아지더라고. 재즈 피아니스트가 될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걸로는 먹고살기 힘들 거 같았다. 우리나라는 재즈라는 필드가 작으니까.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 할 거 같았다. ‘영화음악작곡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영화음악 작곡, 편곡, 지휘 이런 걸 공부했다. 완전히 기술이다.
원래 전공은 뭐였나? 재즈?
‘퍼포먼스’라는 연주자 과정이었다. 자기 악기를 연주하는 거다. 1년도 안 돼서 바꿨다. 그렇게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한국에 왔는데 나를 끌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2년 정도 지났을 때, 버클리 음학대학 다녔던 선배가 지금의 회사를 소개해줬다. 회사 사람들을 만났는데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하라는 거다. 그래서 피아노 앨범을 만들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니까 가사 있는 곡도 넣어볼까, 그래서 ‘바보처럼’ ‘Someone’ ‘March 2006’을 넣었다. 그랬더니 싱어송라이터가 됐다.
그러면 윤한이 진짜 원하는 음악은 1집보다는 2집인가?
다 좋다. 계속 변한다. 원하는 건 딱히 없다. 나는 오픈 마인드다. 내 스타일이 없다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굳이 한 장르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3집은 어떤 앨범이 될까?
비밀이다.
올해는 나와야겠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