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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은 어떻게 구축되었을까? <배트맨 앤솔로지>에는 1939년 <디렉티브 코믹스>에 실린 6쪽짜리 배트맨 만화 <화학 회사 사건>을 시작으로 2013년 <배트맨 V2>에 실린 <제로 이어: 비밀의 도시 제1부>에 이르기까지, DC 코믹스에서 발행한 배트맨 원작 만화 가운데 전환점이 되었거나 화제를 모았던 스무 편이 실려 있다. 75년간의 배트맨이 담겨 있는 셈. 2015년 여름 개봉될 <배트맨 vs 슈퍼맨>의 기원이 되는 에피소드도 실려 있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언제 처음 만났을까? 둘 사이에 파워맨이라는 친구도 있었는데, 정체가 뭘까? 위대한 것들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배트맨 역시 그렇다. <배트맨 앤솔로지>는 배트맨의 성장과 고뇌, 악당 캐릭터의 변화를 아우른다. 미래의 배트맨은 전혀 다른 배트맨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예언서다.
아트 슈피겔만의 <브레이크다운스>는 만화이며, 자전 에세이이며, 또한 소설이며, 아트북이며, 포트폴리오이며… 이런 단어로 함의할 수 없는 책이며, 감히 우주다. 아트 슈피겔만은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데, 만화책으로 이 상을 받은 건 아트 슈피겔만뿐이다. <브레이크다운스>에는 이 위대한 만화가의 자서전(물론 그림으로 쓴)과 초기 작품이 실려 있다. 젊은 예술가는 어떻게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을까?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투쟁했을까? 엄마는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혼내고, 혼난 아이는 아들의 엄마에게 침을 뱉는다. 크든 작든 충격은 대수롭지 않게 펼쳐지고 시간은 네모 칸 안에서 반복되거나 늘어나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몸은 분해되고, 몸의 일부가 다른 몸과 만나 낯선 인격으로 돌변하고, 새로운 인간은 원래의 몸이 하던 말을 반복해서 발음한다. 악행에는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성의 주체는 읽는 자가 된다. 경의를 표할 수밖에!
READ OR SEE
이달, 빛나는 읽을 것, 볼 것.
1 <계속 열리는 믿음> 정형효, 문학동네
‘계속 열리는 믿음’이라는 표현,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시집의 정체성, 단어와 인식을 다루는 시인의 태도가 드러난다. 정영효는 서정의 일상과 감각의 표현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감각적이라는 말은 최근 젊은 시인들 사이에선 칭찬이 되었는데 사실 모호한 단어다. 서정은 선배 시인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의 자랑이었다. 정영효는 이 사이에 길을 낸다. 그 길이 옳은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낯선 길은 그 자체로 옳다. 길을 내라고 예술이 있는 것이다.
2 <무나씨 : 정말이지너는> 무나씨,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제목에 띄어쓰기를 왜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무나씨’의 드로잉은 주목할 만하다. 상업 브랜드,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했다는 이력은 조금만 빛난다. 그의 흑백 드로잉은 모호하고, 서정적이다. 어떤 인물은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쓸쓸한 자아가 환기하는 것은 많고 넓다. 지금이 폭력의 시대이기 때문에 무나씨의 모난 데 없는 선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구슬모아당구장의 2015년 첫 전시. 3월 8일까지.
3 <메아리> 최선, 송은 아트스페이스
최선이라는 작가를 어쩌면 좋을까? 최선의 작품은 보기에 아름답다. 그게 다가 아니다. 최선은 미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반문한다. 낯선 이의 모유, 자신의 피, 폐유, 짐승의 털로 만든 작품을 그저 아름답다고만 말할 순 없다. 자신의 똥의 무늬를 본떠 그린 회화 작품도 있다. 그것이 아름다워서 문제다. 끝끝내 문제고, 끝끝내 고민이다. 작가가 얄미워질 만큼. 최선이 송은미술대상을 받았고, 수상을 기념하는 개인전이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3월 28일까지.
‘꽃(스틸 이미지)’ 카메라 렌즈 위에 피, 2015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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