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적인 형태의 흰색 블라우스 앤디앤뎁, 검은색 가죽 바지 띠어리, 얇은 은색 뱅글 토코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이 프로젝트에 여덟 명의 소설가가
참여하는데 등단 연수를 따지면
당신이 제일 어리다.
재밌게 써야 하는데.
‘입다’에 관해 쓸 거라고 들었다.
예전에 원고지 20매 정도로 짧게 썼던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을 모티브로 더 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주인공이, 뭐라 하지? 깡패 말고,
그거.
일진? 조폭?
그런 거 말고 되게 멋있는 거 있는데, 아무튼 그런
사람이다. 외국 영화를 보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인데.
<대부> 같은 영화에 나오는 보스들을
말하는 건가?
맞다. 옷장을 열면 색깔별로 수트가 쫙 있는
멋있는 사람.
아… 그래?
조직에 몸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배신을 당한다.
하하하하.
왜 웃지?
재밌어서.
재밌으면 그렇게 반응하나?
응.
배신을 당하는데… 근데 소설 내용을 다
이야기해도 되나? 배신한 사람은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다. 그 여자한테 복수하기 위해 잘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그런 줄거리다.
그런 영화 본 것 같은데….
그치.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누아르 영화
좋아한다. 그래서 누아르풍으로 쓰려고.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신을 하고, 남자가 복수를 하러 가고.
단편 소설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장편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80매로 쓸 수 있다.
글로 사기치는 거 전문이니까.
내가?
내 표현이 저속한데, 그러니까 손보미의 소설을
보면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잘한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안다.
그래서 이 마피아 얘기도 잘 쓸 것 같다.
그건 뭐 써봐야 알지.
그런데 원래 ‘입다’가 아니라 ‘쓰다’로 쓰려고
했다던데.
아, 그렇지. 처음엔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중절모 쓴 남자를 등장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입다’도 재밌을 것 같았다. 사실 내용이…
문예지에 발표할 만한 건 아니다. 문예지에서
좋아할 내용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렇게 써야
하나 저렇게 써야 하나 고민하지 않고, 정말
자유롭게, 이게 소설이야, 라고 생각할 만한
것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굉장히 즐거웠다.
손보미의 소설은 특색이 있다는 평이 많다. 예를
들어 능청.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게 만드는
걸 정말 잘한다. 그런데 특색이 있다는 평가를
들으면 머리 아프지 않나? 계속 그렇게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렇지. 사람들이 이런 거 좋아하나,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아마 다른 작가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작품이라는 게 그렇게 써야지,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써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써야지 해서 그렇게 썼다면 대단한
작가인 거지.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아, 그렇게 안 되는 거구나.
당연하지.
등단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도 소설을 잘 썼나? 소설가가 꿈이었나?
선배가 꾀어서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소설을 쓰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왜냐면 잘 써서 칭찬받아본
적이 없거든.
손보미가?
못 썼나 보지.
성격이 원래 귀엽고 엉뚱하고
조금 푼수 같기도 한가?
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어디가 똑 부러지는데?
똑 부러지고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다.
무슨 말이 그래? 역시 소설가다. 무슨 얘기든 다
소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뭘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대학생 때도 1년에 소설을
한두 편밖에 안 썼다. 그런데 2011년도에
소설가로 데뷔한 후로는 청탁을 받으면 써야
해서 힘들었다. 물론 작품 청탁을 받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뭔가 힘들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당신이 쓴 소설 중에 <과학자의 사랑>을 재밌게
읽었다. 읽으면서 아, 이 작가 뭐지 하는 생각을
스무 번쯤, 정말 그 정도 했다.
그런데 프랜시스
크릭이라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킨 거라면서?
그 사람에 관한 평전을 읽었는데, 왜 읽었냐면,
그전에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읽었거든. 그 책에
크릭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나온다. 아인슈타인
같은 느낌인데, 말도 잘하고 타블로이드 잡지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 사람에 관한 어떤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크릭의 평전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나왔다. 평전을 보면 그의
아내가 집에서 사고를 당해 크릭이 병원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그걸 내가 완전히 잘못 기억한 거다.
어떻게 잘못 기억했는데?
아내가 아니라 가정부가 쓰러진 걸로 기억을 한
거다. 그래서 가정부와 크릭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쓴
거다. 그런데 나중에 평전을 다시 봤더니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제대로 기억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운도 좋네.
맞다. 운이 좋다. 등단하고 난 이후로는 계속 운이
좋았다. 그래서 주목받은 거 같다.
소설을 잘 쓰니까 주목을 받은 거다.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행운은 행운이 아니다.
그런데 운이 정말 좋았다. 등단작인 <담요>를
재밌게 봐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내 소설은
현실적인 어떤 것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습작생 때는 소설이 부르주아틱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소설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동의시킬 수는 없는 거다.
자, 이제 이 소설 프로젝트의 공통 질문을 하겠다.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논픽션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논픽션을
픽션보다 많이 읽는다. 진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아, 삶이라는 게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의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숭고함과
치졸함이 다 있을 수 있구나, 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그래서 <과학자의 사랑>을 쓸 수 있었구나.
그렇지.
아까 조금 푼수 같은 면이 있다고 했는데….
이야기해보니까 똑 부러지지?
그런 건 모르겠고 당신 같은 소설가가 있어서
좋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 독자들이 당신
소설을 꼭 읽으면 좋겠다.
아, 근데 진짜 내 맘대로 써도 되나?
당연하지!
오예.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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