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서를 한 장 받아들었다. 촘촘히 박힌 글자들 사이에서 몇 개의 문장이 눈에 밟혔다.‘<노년을 산다>는 시니어들의 은퇴 후 삶을 담는 격월간 잡지입니다. 이미 은퇴했거나 곧 은퇴를 앞둔 분들이 주요 독자들입니다. ‘현역’ 중심의 담론에 대응하여 시니어들의 속마음을 아우르겠다는 욕심을 부려볼 작정일뿐더러, 가끔 시니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시니어가 아닌 독자들께도 유익하고 새로운 재미를 더해줄 터라고 믿는 잡지입니다.’
가끔 시니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라…
퍽 일리가 있는 문장이라 한참이나 눈길을 주었다.
내 나이 마흔이다.
과연 이 정도 나이가 시니어인가, 아닌가를 두고 혹은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물꼬를 틀 나이인가 아닌가를 두고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하는 마흔이다. 유혹이 없는 나이라지만 그건 평균수명이 턱 없이 낮았을 공자님 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일 뿐, 사실 2008년을 사는 우리에겐 또 다른 지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유엔이 예언했었다. 2050년이 되면 대한민국 중년의 나이가 35.1세에서 53.9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중년 나이가 53.9세라는 말은 마흔이라는 나이는 혈기 방장한 청년, 다름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2050년까지 어림잡을 필요도 없이 2008년 현재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원고 청탁서에 기재된 것처럼 가끔 시니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주니어가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50세 이전의 삶은 이제 청년의 그것이라고. 50년이 넘도록 청년으로 산다는 건 지나치게 비대한 소화불량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60세가 되는 날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포세이돈에게 넋을 맡길 작정이 아니라면 2008년식 인생 궤도 수정이 필요한 때다. 중년이 되는 60세와 70세에 그리고 진정한 시니어가 되는 80세와 90세의 인생 노선을 그리지 않을 수 없는 시절이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에 유엔이 지정하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15%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되는 기준에 비추어보면 2025년 이후 우리 땅덩어리도 초고령 사회에 입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2020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15.1%일 거란다. 퇴직 후 40~50년(우와!)간의 인생을 미리 그려봐야 한다는 것은 수백억대 부자가 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인 양 여겨지겠지만-이 나이의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역시 이 문제는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끊임없고 집요한 삶의 화두가 될 것이다. 장담한다.
그래서 <아레나>에서는 이달 1백 세를 기준으로 20세부터 10년 단위로 인생 지침서를 내놓았다. 육중하지도 경망스럽지도 않은, 당신에게 백수(白壽)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정도의 칼럼이다. 당신의 인생을 사는 것은 당신 자신이므로 당신의 인생에 응용될 만한 것만을 취하면 된다. 바람이 있다면 현재의 인생을 즐기는 동시에 미래의 인생을 즐길 방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뿐이다.
한편으론 이 화두가 참으로 인생을 편케 해준다.
역으로 생각해서, 살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천천히 갈 수 있다는 뜻일 테니 그 흔한 조바심이 필요 없고, 하나의 일에 오래도록 매진할 끈기를 부려도 용인이 될 테고, 섣부른 객기보다는 진중한 노력을 오래도록 공들여도 될 것이고, 장기 레이스인 만큼 구도하는 마음으로 완주의 기술을 부려도 되겠다. 생생한 재료의 뒷맛까지도 씹고 또 씹고 음미하고 입을 물로 헹궈내 또 다른 재료의 맛을 보게 되더라도, 아주 천천히 정성을 다해 혀를 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 아니 편하겠는가 말이다.
비약하자면 인생에서 1, 2년은 찰나와 같이 짧을 수도 있겠다. 시간의 태엽을 느리게 감고 푸니 혼동의 경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 부대한 생각의 몸집에 구멍을 내어 서서히 허튼 찌기들을 골라낼 수도 있겠다.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20년쯤 부질없이 보냈네./무덤이 둥근 것은/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 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 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지하 인간’이라는 장정일의 시를 대학 시절 부적처럼 필통에 넣어가지고 다녔었다. 1990년 당시, 청년이라 오인했던 22세의 내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었는지 혹 그 상한선을 50세에 두었던 건 아닌지… 아마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참으로 부질없지 뭔가. ‘내 이름은 마흔. 한 40년 부질없이 보냈을 뿐인데 말이다.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스무 살의 후배들, 서른 살의 후배들, 혹은 그 이상의 나이를 가진 후배들과 함께 <아레나>는 공유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가족 같은 독자 후배들이 치열한 하루를, 하지만 진득한 10년 단위의 삶을영민하게 꾸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치열한 하루에, 그 진득한 10년에 <아레나>가 제공하는 날랜 정보들도 한몫 할 것이라 믿는다. 이토록 길어진 인생에 오락과 쉼과 자족과 우뚝한 기질을 당신에게 건넬 테니 취하고 마시고 즐겨라. 그리고 생각하라.
김훈 선생의 말처럼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되어지는 대로 되어지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찍 왔다 오래 머무르니, 결국 잘사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니겠는가.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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