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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의 진심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연극에 대한 지적인 소비가 있었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나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가 연극반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 아니라 관객을 상대로 당당하게 티켓을 팔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로에는 싸구려 감상과 초등학생도 웃지 않는 천박한 유머만이 넘쳐난다. 대학로의 진심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br><br>[2008년 4월호]

UpdatedOn March 20, 2008

Words 김일송( 편집장) Editor 이기원

요즘 대학로에 볼 만한 공연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공연계에 종사하는 입장으로서 나 역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이 말하는 ‘볼 만한 공연’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이들에게 정말 과거만큼 진심이 없는 걸까. 정말 돈벌이만을 위해 이곳에 뛰어든 걸까.
“예술가들은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땅값이 싼 지역에 터를 잡게 되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지역 상권이 발달하는 거죠. 하지만 상권이 발달할수록 터줏대감이었던 예술가들은 쫓겨나는 거죠.” 아르코예술극장 수석기획 조형준 PD의 말이다. 이러한 이주사(移住史)는 반세기 전인 1960년대 명동에서 시작해 세종로로 신촌으로, 지금의 대학로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소극장 이주사’가 곧 ‘예술가 퇴출사’인 셈.
일반적으로 객석 1백 석 정도의 소형 공연장 한 달 대관료가 1천만원이다. 이마저도 쓸 만한 공연장이다 싶으면 1천5백만원을 상회한다. 2백 석 이상 중대형 극장의 한 달 대관료는 2천만~3천만원에 이르고, 3백 석 이상은 3천만~5천만원에 이른다. 극장을 빌리는 데만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 중간 규모인 2백 석을 대관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 대관료로 1백만원을 예상해야 한다. 한 달간 공연할 경우, 3천만원이 고스란히 극장 임대료로 사용되는 셈. 결국 좌석당 5천원씩 대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것도 100% 매진일 경우다. 하지만 대학로 공연의 좌석 점유율은 50%, 유료 관객 점유율은 그 반인 25% 정도다. 그러니 오로지 대관료 내는 데에만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초연했을 때, 딱 한 번 매진됐어요. 공연 마지막 날에. 그 전까지는 관객이 없었습니다. 관객 5명만 앉혀놓고 공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 명이 극작가 동생, 두 명이 친구, 두 명이 기자였어요. 이제는 5명 앉히고 공연하고 싶진 않습니다.”
두산아트홀의 지원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죽도록 달린다>를 연출한 서재형의 변이다. 공연 내내 줄기차게 뛰어다니는 실험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두산아트홀에서 초청 공연 중인 이 작품이 초연 당시 관객 5명만으로 공연했다니. 그마저 초대권으로. 하루에 몇십만원의 대관료를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대관료는커녕, 배우들 차비도 못 건질 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떤 공연 단체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는가. 물론 장기 임대 계약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연장을 빌리는 장기적인 대안도 있다. 그러나 당장 자금 회전율도 좋지 않은 공연단체들 중 이러한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할 만한 단체는 거의 없다. 물론 스타 배우를 기용해 관객을 모으고, 객석당 마진율을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연극열전2> 같은 경우 스타급 배우들을 연극 무대에 올리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런 건 아주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스타를 기용해 개런티를 지불할 만한 여력이 있는 공연단체도 많지 않다. 반대로 대학로 출신 탤런트나 영화배우들도 매니지먼트사의 반대를 물리쳐가며 대학로에 컴백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공연단체가 쥐고 있는 카드는 뻔하다. 시쳇말로 ‘똔똔’이라도 치기 위해서 대중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연계는 고육지책으로 코미디와 멜로물을 선보이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배우의 수급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공연 제작사 투비컴퍼니 이봉규 대표는 <과학 하는 마음3-발칸 동물원편> 홍보를 진행했다.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일 매진 사례를 이룰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잘됐지만, 그 작품으로 누가 돈을 벌었을까요? 연출이 노개런티였는데, 배우들이 돈을 받았을까요? 연출과 배우 모두 노개런티였어요. 아무도 돈 번 사람은 없어요.”
‘대학로에 진심이 있습니까? 진심이 있다면 어떤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자조적이다. “진심이요? 있죠. 하지만 진심이 있는 작품에는 관객이 들지 않아요.”
어린 시절 누구나 보물찾기를 경험해봤다. 얼마나 보물찾기가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다. 보물이 눈에 띄는 곳에 있는 법은 없다.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건 대개 ‘꽝’이다. 진짜 귀중한 보물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쉽게 보이는 진심이었다면, 진심이 아닐 터.
‘공연계에 진심이 없다, 만날 로맨틱 코미디 일색이다’라고 하지만 그들 중 과연 몇이나 눈에 띄지 않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찾았을까? 또 진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이는 얼마나 많을까? 대학로에 진심이 없다고? 그것은 거짓이다. 다만 드러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물론 거기에는 공연계의 안일함도 한몫 했다. 하지만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관객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는 없다.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이 숨은 진심을 찾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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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김일송
Editor 이기원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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