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서는 나보다 청와대가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서는 댓글을 쓰는 자의 개인적 일탈보다는 집단적 행위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댓글은 일단 1차적 텍스트가 아니다. 원 텍스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2차 텍스트로서 댓글은 작동한다. 짧으면 한두 글자 정도의 극히 짧은 분량으로도 충분히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댓글에 댓글이 꼬리를 무는 형태로 모두 합치면 단편 소설 1편을 능가하는 분량이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댓글 하면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 뉴스에 달리는 것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예전 ‘싸이월드’ 시절부터 지금 ‘페이스북’까지 원래 글 밑에 달리는 글을 모두 댓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유머’니 ‘일간베스트’의 게시물에도 댓글은 달리며, 국정원 직원의 주 활동 무대 또한 위의 유머 사이트라고 알려져 있다. 본래 1백40자 이내로 글을 작성해야 하는 트위터의 경우, 원 글과 댓글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선거에서 암약했다는 일부 ‘부대’의 경우 일반적인 댓글과 트위터 멘션을 굳이 분리해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독배나 악플 등 댓글에서 통용되던 노잼(재미없는) 문화를 트위터의 세계로 끌어들인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렇게 댓글이 분화되는 사이, 그 영향력 또한 실로 광대하고 강력해졌다. 댓글 때문에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댓글 때문에 누군가는 실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댓글의 성질과 행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각각의 세포가 우연에 의해 무수히 모여 비로소 우리의 몸이 된 것처럼, 한 줄의 댓글 또한 좋든 싫든 우리의 문화를 이루는 작은 단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댓글이라는 세포가 모여 만든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사회’는 점점 더 멍청해지고 천박해져만 간다.
그게 단순히 사회의 몸을 이루는 ‘댓글 세포’ 때문일까? 아주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댓글로 갖가지 사안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는 사람과 하는 편이 낫다. 열린 공간에서 익명의 만남이라는 테제는 인터넷이 꿈꾸는 유토피아였지만, 실재계에서 그 꿈은 철저히 붕괴됐다. 인터넷에서 우리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좋아요’를 누르거나 응원의 댓글을 남기고,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시크하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아는 ‘유명인’의 경우에는 우리는 사소한 의견부터 보기 흉한 욕설까지 막무가내로 던지는 ‘네티즌’으로 변신한다. 김연아의 남자친구와 손흥민의 여자친구를 평가하고, 여배우의 스캔들과 아이돌의 일베 용어 사용에 혼신의 관심을 쏟는다.
어떤 댓글에서는 놀라운 재치와 기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베스트 댓글은 촌철살인의 미학이 아직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일명 ‘베댓’ 아래에는 댓글의 댓글이 다시 달린다. 댓글의 댓글이 진행될수록 처음의 촌철살인은 희미해지고, 서로 자신의 댓글이 가진 우월함을 설파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만 남는다. 그 사이에 베스트 댓글의 원래 저작자는 유유히 사라지거나 그 싸움을 지켜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풍경이랄까. 베스트 댓글이 풍자와 해학에서 벗어나 그저 웃음만을 탐할 때, 댓글의 폭력성은 조장된다. 가장 약한 상대를 골라 괴롭히고 짓밟을 때, 우리는 무슨 구경거리가 난 것처럼 주위에 몰려들기 십상이다. 그런 댓글이 가끔 베스트가 되고, 그런 게시물이 가장 핫한 글이 된다. ‘일간베스트’의 어원은, ‘그날 가장 좋은 글’이다.
그게 진짜로 가장 최선일까? 웃기기만 하면 다 되는 걸까?
댓글의 힘은 집단과 집단의 부딪힘에서 더욱 세다.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게 떠도는 지역 차별적 용어들은 댓글을 통해 용례를 확장시키며 퍼져나갔다. 댓글 속에서 조선족은 사기와 살인을 일삼는 인간 쓰레기에 불과하며 이주노동자들은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 되었다.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 비하 용어가 태어나고 자란 곳도 댓글의 하수구 어딘가다. 댓글의 비윤리적 공격성은 약한 상대를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지역, 인종,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고 댓글의 언어는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 뉴스의 댓글들이 보이는 비상식적 언사는 어떤 정치인에게는 “네이버는 접수됐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사실 모두에게 골칫덩이긴 했다. 우리가 가진 더러운 면모가 아래로 흘러 고여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뉴스 아래 댓글이었다. 깨끗하게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에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는 댓글에 ‘클린 지수’를 매기고, 이용자의 ‘지난 댓글 보기’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네이트의 경우, 댓글을 실명으로만 올릴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댓글의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정책을 펼친 네이트는 현재 가장 ‘망한’ 사이트이기도 하다. 인터넷 여론을 이끄는 층은 더 이상 뉴스 댓글란에 머물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각종 유머 게시판은 그래서 유머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서부터 개인적 일상까지 게시글과 댓글을 통해 여실히 담아낸다. SNS는 익명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스스로 의지에 때라 본인 글의 댓글에 대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모든 것을 놓아버린 계정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변희재랄까… 예컨대 정미홍이랄까….
물론 포털 바깥의 서브 사이트로 빠져나가지 못한 댓글 유저들도 나름대로 진화-퇴보의 과정을 감내한다. 최근에는 기사를 평가하는 ‘첨삭 및 평가형 댓글’이 눈에 띈다. 오타나 맞춤법 교정에서부터 기사의 논지까지 댓글 유저의 매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특히 스포츠나 연예 분야의 특정 기자의 기사는 이미 기자의 성향까지 파악한 매의 눈들에 포착된다. 축구는 김현회나 10bird, 야구는 박동희나 이선호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현회는 ‘축구제일주의’를 모토로 움직인다.
최근 논란이 된 기성용 페이스북을 최초 공개한 기자도 그다. 독자 또한 그의 축구제일주의를 알고 댓글을 남긴다. ‘야빠(야구팬)’나 ‘해축빠(맨유, 첼시, 리버풀 따위의 팬)’는 끼어들 틈이 없다. 10bird는 숱한 댓글로 기자 ID에 대한 공격을 받았지만, 결코 바꾸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배워야 할 끈기다. 박동희는 오지랖과 저주로 유명하다. ‘스탯티즈’나 ‘타어강’ 등 상당 시간 검색을 해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댓글과 지난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선호는 기아에 대한 대책 없는 사랑으로 객관성 잃은 기사를 쓰기로 유명하다.
물론 팬들도 다 안다. 이선호 기사라면 애틋하게 보거나, 한심하게 보거나 둘 중 하나다.
기자에 따라 알맞은 댓글을 올리는 사람은 그래도 무언가 소통하고 있는 네티즌이다. 다소 욕설이나 비방이 첨가되지만 그래도 대화는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기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기도 한다. 대개 정치적 선언이 많은데, 그런 식으로 그의 정치적 꿈이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성인 사이트나 도박 사이트 광고 댓글은 언급할 가치가 없겠다. 어떤 댓글은 또 다른 댓글을 추천하기 위해 작성되며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를 로그인하게 한 건 네가 처음이야.’ 물론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댓글이 거의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댓글은 너무나도 쉽게 써진다. 그리고 빠르게 써진다. 댓글을 읽는 사람, 댓글의 창이 겨누는 사람의 입장까지 사유할 시간이 없다. 그만큼 댓글을 쓰는 사람은 바쁜 동시에 빠른 사람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너무나도 쉽게 써진 댓글이 데이터가 되어 지문을 남긴 인터넷이라는 공간, 거기서 당신의 흔적은 ‘딜리트’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사 시대 인류는 거의 모든 동굴마다 이런저런 그림을 마구 남겼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은 건 알타미라 석굴의 벽화가 유일하다. 훗날 우리가 남긴 댓글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 댓글을 남긴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할까. 드넓은 초원에서 소나 잡는 인류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마도 그것보다 훨씬 못난 인간이 지금 우리인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인간은 이제까지 진화와 진보를 거듭해왔다. 그 와중에 쓸데없는 괴물이 이만큼 컸다. 컴퓨터를 무심히 본다. 뉴스와 게시물 아래, 알 수 없는 이유로 성난 괴물이 보인다.
Words: 서효인(시인)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hey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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