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정재환
돌핀 시계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 후반엔 전자시계 돌핀이 우리들의 시간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젠 누구도 전자시계에 열광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계가 그 자리를 확실히 대체했다는 건 반갑지만, 추억의 전자시계가 단순히 아이들의 시계로 전락해버린 건 쉽사리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전자시계에 그만의 특별한 매력과 놀라운 기능들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더 이상 알려 하지 않는다.
또는 전자시계가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쉽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손목에 올린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단순 기능만을 수행하는 건 아니다. 물론 아날로그 시계도 투르비옹, 퍼페추얼 캘린더 등의 여러 기능이 있지만, 우리 좀 솔직해지자. 그건 기능을 보고 산 게 아니라 디자인에 경도돼 지갑을 열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전자시계는 정확한 수치와 특별한 기능들을 구현해낼 수 있는 작은 컴퓨터다. 매트릭스의 MP4 워치는 시간만을 알려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MP4 동영상을 구현하는 작은 스크린 역할까지도 자청한다. 티쏘의 T-터치는 엄밀히 말해 정통 전자시계가 아닌 혼합형이지만
중요한 기능들은 모두 액정 화면에서 구현된다. T-터치엔 지난 8시간 동안의 대기압을
기록해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고도 측정, 크로노그래프 기능, 나침반, 알람, 온도 측정 등 아날로그 시계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폭넓게 하고 있다. 모모디자인의 MD-078은 듀얼 타임 존으로 세계 23개국의 시간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려준다. 태그호이어의 모나코69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겸용한 시계다. 마이크로 타이머가 있는 전자시계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디자인을 감안해 전자시계를 장착한 것이다. 시계 두 개를 합친 덕분에 이 시계의 측면 두께는 육중하면서도 무게감이 대단하다. 모나코69의 디지털 시계는 세계 최초로 1000분의 1초 측정이 가능해 F1 경기를 볼 때 사용하면 80바퀴까지 모든 랩을 마음껏 측정할 수 있다. 전 세계 시간 표시가 가능한 GMT 기능, 윤달까지 계산해 날짜를 자동으로 표시하는 퍼페추얼 기능도 갖췄다.
놀라운 기능들이 많다는 건 다른 한편으로 단점도 있다는 뜻이다. 전자시계는 조작 방법을 숙지하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계가 요구하는 유지비 측면에서 전자시계는 상대적으로 경쟁 우위에 있다. 분해 소지도 필요 없고, 고장이 나도 결코 아날로그 시계보다 돈이 더 들진 않을 테니까.
아날로그 시계를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기에 전자시계를 강하게 권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전자시계의 매력은 어린 시절만큼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만날 같은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보단 가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전자시계를 차는 건 어떨까. 얼마 전 전자시계를 하나 샀다. 스톱워치 측정을 하며 혼자 달리기도 해보고, 어두운 곳에서 조명도 켜봤다. 그리고 세계 시간 설정을 해놓고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지금 몇 시냐고? 한치의 오차 없이 GMT 기능을 이행하는 것을 즐겁게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장난감처럼 마냥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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