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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있어요, 그래도 해요

아마도 당신에게는 아름답고, 현명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애인이 있을 것이다. 혹은 그런 애인을 가졌던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득 자위에 대한 공상에 빠져본 적은 없나?<br><Br>[2008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23, 2008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박원태, 게티이미지

우선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당신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나? 당신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모나지 않은 남자가 확실하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섹스에 관한 공상에 빠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젯밤 충혈된 눈으로 봤던 포르노물의 잔상이나, 엉덩이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간호사의 모습 같은 것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조용히 바지춤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당신이 콩밭 매는 노파에게까지 흑심을 품는 변태 성욕자라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특이한 성적 취향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에 대한 충실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남자라는 개체가 그런 식으로 생겨먹었을 뿐이다.
성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생물학자 베이커와 벨리스는 <인간의 정자 경쟁>이라는 저서에서 남성의 자위행위를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정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젊고 전투력이 좋은 정자를 항상 비축해두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낡고 노쇠한 정자를 배출하고 새롭고 젊은 정자로 교체하는 자위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 속에서부터 자위는 우리 의식에서 금기시된 도그마였다. 성경의 마태복음은 이미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금기는 현대에도 여전하다. 자위에 관한 은어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위를 많이 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거나, 발기부전이 된다는 식의 루머는 초등학생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위에 관해 관대해졌다.
한국성과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남성이 자위를 경험한다. 그중에는 기혼 남성의 자위행위에 대한 조사도 들어 있다. 20~30대 기혼 남성의 60%는 결혼 후에도 자위행위를 한다. 물론 지금 이런 따분한 숫자 놀음이나 하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파트너의 존재 여부가 꼭 자위와 상관관계를 갖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자위와 섹스는 전혀 별개의 활동이다.
나는 이 기사를 쓰면서 여러 친구들에게 자위에 대한 경험을 물었다. 물론 꽤 오랫동안 알아온 친한 친구들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섹스는 공개적으로 밝히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영역일 뿐이니까. 친구들 대부분은 굴곡 없이 평범한 삶을 영위해온 ‘코리안 스탠더드’다. 그들은 애인의 유무를 떠나 자주는 아니더라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대부분 자위를 한다고 했다. 그들 역시 말했다. 자위는 섹스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찜찜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자위를 멈출 수는 없다고 말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선배는 간편해서 자위를 선호한다고 했다.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된 새신랑이지만, 매일 전쟁처럼 벌어지는 야근과 스트레스 탓에 집에 들어오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자는 아내를 깨우고 싶다가도 서로 전희를 나누고, 상대의 쾌감까지 신경 써줄 힘도, 시간도 없다고 했다. 아직은 섹스를 제대로 즐길 줄 몰라 뻣뻣하기만 한 아내의 섹스 스타일도 한몫했다. 그래도 욕구는 예고도 없이 날아든다. 그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아내 몰래 조용히 한다고 했다. 그래도 곤히 자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아내를 생각하며 자위를 한다고 했다. 너무 정숙한 나머지 아직은 오럴도 거부하는 와이프의 얼굴에 정액을 쏟는 상상 정도가 전부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자위에서 느끼는 사정의 쾌감이 어떤 섹스보다도 강렬해서 자위를 한다고 했다. 연인과 섹스할 때 느끼는 사정의 쾌감은 펄펄 끓는 가마솥이 아니라 온천물처럼 미지근했다. 자신의 리듬을 상대와 맞추려다 보니 적절한 분출 시기를 놓친다고 했다. 그 ‘적절한’ 시기가 지나가면 섹스를 하고 사정을 해도 뭔가 남은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없었다. 독신 생활과 자위의 공통점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는 거다. 당신은 한가한 오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코끼리의 교미 장면을 보다 불끈 성욕이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 블론드를 좋아하는 녀석은 사정할 때 항상 금발 미녀의 가슴 사이로 페니스가 왕복운동을 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흥분이 커지면 쾌감도 커진다. 섹스리스 커플도 아니면서 자위를 잊지 못하는 건, 자위만이 크고 짜릿한 오르가슴을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친구에게는 자위가 일종의 판타지다. 이 친구는 연인을 만난 지 5년이 지났다. 그래도 ‘한다’. 대신 방식이 좀 특이하다. 대학 시절, 친구는 생애 최고의 섹스를 맛봤다고 했다. 머리가 얼얼해져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쾌감이었다. 학교 선배와 우연히 비디오방에 가게 된 날, 그녀가 뿌린 샤넬 향수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좁아터진 데다 작은 유리창까지 달려 밀폐되지 않은 공간에서 그들은 사각지대를 찾아 섹스를 나눴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러닝타임이 길기로 소문난 <타이타닉>이 끝날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녀와 다시 섹스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그 섹스가 여전히 최고다. 그리고 자위를 할 때면 샤넬을 자신의 손에 뿌린 채 페니스를 잡는다고 했다. ‘변태 새끼’라고 욕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대견한 상상을 종종 하니까. 지금 당장 내가 경험하지 못할 일을 상상 속에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위는 대단히 효율적이다. 우리는 섹시한 안젤리나 졸리와도, 깜찍한 키얼스틴 던스트와도, 혹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의자왕의 삼천 궁녀와도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다.
결국 섹스와 자위는 너무 배가 고픈데 잘 차려놓은 프렌치 레스토랑에 둘이 가서 스테이크를 먹을 것인가, 혹은 집에 혼자 들어가서 라면을 후다닥 끓여 먹을 것인가의 문제다. 맛있는지, 분위기는 좋은지 일일이 체크하며 맛을 음미할 것인지, 보잘것없지만 혼자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계란 하나 넣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을 것인지.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많은 남자들은 한껏 격식을 차린 스테이크도 좋아하지만, 야심한 밤의 라면 역시 좋아한다는 거다.
모두가 섹스를 궁금해하고 더 나은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섹스지만, 항상 할 수는 없고 항상 잘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섹스는 타이밍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멀쩡한 애인을 두고도 괜한 공상에 몰두하는 당신. 괜찮다, 해라. 팔십 먹은 노인이라도 그 욕구를 어쩔 수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정당하다. 전문의들도 불필요하게 참는 것보다는 가끔씩 하는 자위는 오히려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하니까. 다만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성 있게 하라. 페니스를 잡고 혼자만 별세계에 가 있는 당신을 본다면 그녀가 얼마나 실망하겠나. 정말 그녀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손이 페니스보다는 자신의 어깨에 놓여 있기를 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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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박원태,게티이미지
Editor 이기원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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