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의 정크아트를 보는 듯했다. 폐차를 구긴 뒤 탑처럼 쌓아올린 거대한 그의 작업보다는 소박했지만 박한진 작가가 만든 ‘소멸과 생성’은 자전적인 성격이 강했다. “10년 동안 끌고 다녔던 제 차를 폐차시킨 뒤 안팎에 그림을 그려서 <도시와 영상전>에 출품했었지요. 전시가 끝나고 ‘이걸 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이번에는 분해하고 해체해 새로운 무엇으로 만들었어요. 자동차는 달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달까요.” 소마미술관에서 만난 작가의 얘기다. 그는 또한 자동차 부품을 뜯어 녹슬지 않게 하는 재료로
한 겹 씌운 뒤 미술관 벽면에 걸어두기도 했다. 창조주가 그랬듯 쓸모없어진 고철 덩어리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가. 지난달 <아레나>에 소개됐던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를 작업했던 백남준은 생전에 “자동차는 TV와 함께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 혁명을 일으킨 물건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당대를 주름잡던 팝아티스트의 전집을 넘기다 보면, 자동차 표면을 캔버스 삼아 무아지경에 빠진 채 붓질을 해대는 그들의 사진을 마주할 수 있다. 자동차가 여자보다 더 좋다는 김태중 작가는 팝아티스트처럼 자동차 위에 그림을 그린 뒤 학교에도 가고 시장도 가지만, 포장만 바꾸는 게 아니라 완벽한 튜닝은 물론 실내 공간까지 탈바꿈한다. 자동차 마니아와 아티스트 사이라고 할까.
조금 다른 시각이지만 이제 막 전시를 끝낸 <전(展)시장, 전(轉)시장>은 GM대우 자동차 영업소 4곳에 가야 그림을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획전이었다. 전시를 총괄했던 독립 큐레이터 김승호는 서울 시민이 한 해에 몇 번이나 전시장을 찾는지, 변화 없는 인사동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시민과 예술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획을 맡았다고 한다. 젊은 작가들에게 ‘자동차’라는 숙제를 안겨줬는데 그들은 자동차의 속성과 이미지를 현재, 속도, 현실, 소통 등과 버무려 맛있게 요리해냈다. 이렇듯 예술가에게 자동차는 알프레도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에게 느꼈던 뮤즈의 감정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문’이다. 하여, <아레나>는 보부상이 되어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예술가들(국내에서 전시했던 해외 예술가를 포함하여) 가운데 자동차에 꽂혀 있거나 한 번쯤 꽂혔던 이들을 뒤져보았다. 벤츠와 BMW가 주는 안락한 기쁨보다 당신의 정서를 관통할 만한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연락이 닿은 이들과는 살짝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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