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제대로 당도하기도 전에 디올 옴므의 가을 옷을 서둘러 언급하는 건, 마땅히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학교의 침착한 소년들처럼 우아하고 차분하다가도 돌발적인 가치가 스며든 옷들. 크리스 반 아쉐는 이 컬렉션의 연장선상에서 아티스트 듀오 M/M 파리와 함께 설치물을 만들었다. 이로써 M/M 파리와는 세 번째 작업. 뉴욕 소호의 디올 옴므 부티크 안에 설치된 작품은 비현실적 공간을 구획하는 동시에 판매가 이루어지는 현실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설치물은 흰색과 검은색이 대조적으로 쓰인 조명 장식들을 모아 구성했는데, 각 조명에는 알파벳이 대담하게 새겨져 있다.
예전부터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크리스 반 아쉐는 한 수업에서 알파벳 A부터 Z까지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시험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M/M 파리는 이 이야기에서 착안해 설치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알파벳을 기괴하게도 아름답게도 형태를 바꾸는 건 M/M 파리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다. 더 이상 타당할 수밖에 없는 작업인 것.
부티크의 쇼윈도 너머엔 네 개의 조명으로 만들어낸 ‘D’ ‘I’ ‘O’ ‘R’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각 알파벳들이 특정 단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키워드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라고 설명했다. “나는 한 남자로서 유전적 복제품에 지나지 않다가, 집단 속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한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개념을 생각했다.” 부유하던 알파벳이 한 단어로 실체를 갖추는 과정은 크리스 반 아쉐가 말하는 개념의 은유다.
editor: 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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