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빛이 맑은 사람은 건강하다. 낯빛이 붉은 사람은 화가 많은 것일 게고 낯빛이 어두운 사람은 필시 우울한 게다. 가식이 없는 사람의 낯빛은 거짓을 모르니 당당할 테고, 편견이 없는 사람의 낯빛은 잔꾀의 술수를 버리니 담담할 테다. 생각의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은 말이 짧아도 풀 먹인 광목처럼 담백한 기운이 묻어날 테고, 원칙의 칼을 찬 사람은 잡풀같은 미련의 부스러기들을 뽑아내니 그 얼굴에 정갈함이 배어날 것이다. 기호가 확실한 사람은 암고양이처럼 다가오는 은밀한 유혹의 잔을 거두니 그 낯빛에 자아의 표식이 선연할 것이다. 그리고 겸양한 자의 낯빛엔 구도의 고샅길이 오롯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얼굴은 살아온 날과 뇌관을 타고 흐르는 생각의 물에 대한 절대적 투영이라고 나는 또 그렇게 믿는다.
이달 솜털을 걷어낸 <아레나>의 얼굴엔 일곱 남자의 기운을 담았다. <아레나>의 얼굴에서, 그 낯빛에서 당신은 <아레나>의 본색을 보게 될 것이다. 갈 봄 여름 없이 매달 새 얼굴로 자아를 드러냈던 우리는 한 해를 보내는 이 마당, 단출한 수트를 입은 일곱 명의 협연으로 완성한 새 얼굴로 당신 앞에 섰다. 우리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긴장이 맴돈다. 그 긴장이라는 것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이고 정신의 끈을 바싹 당긴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섣부른 자만과 설익은 아집으로 부풀려진 에고가 아니기를 바라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매해 연말이 되면 <아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본색을 드러내기로,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우리의 솔직한 얼굴을 내보이기로 했다. 에이 어워드의 수상자들을 모델로 한 표지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성실하게 일 년을 보낸 편집부의 진정이 독자들을 향한 연말의 폭죽으로 빛났으면 하는 바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아레나>의 얼굴을 마주한 당신이 그 낯빛에서 어떠한 속내를 읽었는지가 사뭇 궁금한 나로서는 ‘이 폭죽이 드러냄을 위한 치장의 방편이 아닌가’하여 염려가 된다. 아직 나의 낯빛엔 설익은 겸양이 자리하고 있는 탓일 테다.
p.s 12월호의 얼굴에 눈과 귀와 입과 코가 되어준 7인이 2007년의 블랙칼라 워커로 선정된 이유야 본문 기사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만, 편집장인 나에겐 책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어디 한번 들어보겠는가?
건축가 김원 | 고도(古都) 보존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 이상의 생가, 미당의 고택을 사들여 무분별한 개발의 논리로부터 방패막이 되었다는 점. 결국…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선배라는 점.
산악인 엄홍길 | 죽음을 짊어지고 산다는 점. 그 죽음의 짐을 후배들에게 지우지 않기 위해 아비의 지엄함으로 무장했다는 것.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충무공이라는 것.
풀무원 사장 남승우 | 감추지 않는다는 점. 투명한 기업 운용-당연히 그래야함에도 불구하고-을 당연시 한다는 점. 속이지 않으니 편견이 없다는 점.
프로듀서 이영돈 | ‘소비자는 봉이 아닙니다’라고 매주 반복해서, 그것도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째려보며 말할 수 있다는 점. 결국 겁이 없다는 것. 겁이 없다는 건 ‘진정’이기 때문이라는 것. 혹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마음>을 보았는지…
배우 유지태 | 싸이더스 FNH의 차승재 대표의 추천사로 대신하련다. ‘지태는 참 잘 자랐다’.
투수 김병현 | 양 미간을 한껏 찌푸린 그라운드에서의 투지와 도전을 모르는 자 있을까. 그 대신 인간적인
‘절대 의리’, 아날로그적인 ‘절대 감성’에 한 표.
사진작가 김용호 | 연예인 누드 운운하며 기사를 써대는 그 많은 기자들은 전시회에 가보기나 했을까?
그는 ‘누드’를 촬영한 게 아니라 ‘몸’을 렌즈에 담은 거다. 그의 수상 이유가 궁금하다면 대림미술관 ‘몸 전’을 관람하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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