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최소라
그녀의 선은 아름답다. 큰 키와 마른 몸, 얼굴이 우아한 선들을 그려낸다.
우리의 이상은 너무 높다. 헐벗은 마네킹을 옮기며 혼자 말했다. 마네킹의 머리는 나보다 한 뼘이나 높다. 그러니까 이건 너무 크다. 내가 보아온 여자들과 다르다. 우리가 표본으로 삼고자 하는 것들은 언제나 거대하다. 집, 자동차, 학력, 직업 그리고 신체.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표본과는 다르다. 우리는 소유하고 싶은 것을 욕망할 뿐이다. 이상적인 비율의 몸을 갖고 싶다. 그래서 마네킹에 옷을 입히며, 그 옷들이 내게도 어울릴 거라 착각한다. 우리는 거울 앞에 서기 전, 쇼윈도에서 자신을 망각한다.
마네킹이 수치심을 느낀다면, 벌거벗은 상태가 아니라 옷이 입혀지는 순간일 것이다. 탄생보다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더 비참하니까. 세 명의 여자 모델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큰 키와 긴 팔다리. 우월한 신체를 갖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은 그들이 가진 완벽한 비율에 빛을 더한다. 그녀들이 힐을 신고 코트를 벗어 얇고 긴 몸을 드러내면 아름답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그런 완벽한 몸을 갖고도 모델들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재킷은 곽현주, 브라톱은 알렉산더 왕, 슬릿 레이스 스커트는 아장 드 프로보카퇴르,스트랩 힐은 주세페 자노티
모델 이성경 그녀의 표정은 다채롭다. 세상의 모든 단어들이 들어 있는 얼굴을 가졌다.
“마네킹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마네킹은 비현실적인 몸매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옷을 소화해내야 하죠. 또 우리만의 개성으로 옷을 표현하기도 해요. 생명이 없는 것과는 다르죠.” 모델 이성경이 말한다. 그녀는 말하는 동안 손을 폈다 오무렸다가, 머리를 쓸어 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가며 말한다. 그녀는 모든 단어들을 얼굴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녀는 다양하고 폭넓은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모델의 매력이라 말한다.
“모델은 치열한 직업이에요. 순간순간 경쟁하는 모습이 전부 보이죠. 그런 게 스트레스인데, 지나고 나면 가장 즐거운 추억이죠.” 모델들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녀들은 자신의 매력을 정확히 알고 있다.
“롤리타 콘셉트예요. 머리와 화장을 전혀 안 하고, 티셔츠 한 장 걸치고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괜찮더라고요. 나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즐거움이죠.” 스물다섯의 이성경은 뮤지컬 배우를 꿈꾼다. 피아노를 전공해서 음정과 박자에는 자신 있다고 한다. 20대에 도전해서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뮤지컬을 꼽았다. 손가락이 부족했다.
세상에는 모델보다 재미있는 일도 있다. “그런 건 아직 못 찾았어요. 어릴 때부터 모델만 보고 살아왔어요. 일한 지 7년 정도 되니깐 이쪽 생리에 너무 익숙해졌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어요.”
트렌치코트는 클럽 모나코,슈즈는 지니킴,브라톱,
가터벨트·밴드 스타킹 모두 아장 드 프로보카퇴르 제품.
모델 이승미 가볍다. 사소하게 웃고, 춤추듯 걸었다. 카메라 앞에서만 무게를 드러냈다.
이승미는 중학생 때부터 모델을 목표로 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델 아카데미에 다녔고, 포드 슈퍼모델 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했다. 모델학과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오랜 모델 생활을 하면서 매너리즘을 경험했다. 모델들의 매너리즘은 무엇일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들어오는 일은 한정적이죠.
계절마다 비슷한 콘셉트로 무대에 서다 보면 일이 새롭다는 느낌이 없어요. 앞으로 어떤 콘셉트로 작업할지 예상되는 거죠.” 그럼에도 이승미는 모델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녀는 열정으로 시작했고, 다른 직업을 고민했는데 모델만큼 열정을 느낀 일은 없었다. 어쩌면 다른 일에 도전할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안 만난 건 아니에요. 일이 불규칙하게 생기는 편이라서 갑자기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남자친구를 안 만나게 됐어요. 또 약속 펑크를 내게 되니까 한동안 미안해서 친구들도 안 만났어요.”
패션모델은 런어웨이를 걷는다. 모델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최소라는 전율을 느꼈다.
“처음 쇼를 했을 때 너무 짜릿했어요. 큐 사인을 받고 무대 위로 나갔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조명이 내게 집중되잖아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아요. 무대 끝에서 턴하자 눈물이 돌았어요. 나가면서 울었어요.” 직업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더군다나 모델들은 그 기회를 자주 경험한다.
“화보 촬영을 하다 보면,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해요. 소심한 줄 알았는데, 촬영 때마다 다른 성격이 나오면 정말 신기하죠.” 하지만 정말 신기한 건 그들의 몸이다. 최소라는 179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앙상해 보였다. “1주일에 한 번만 거하게 먹어요.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어요. 안 먹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좋아서 버틸 수 있어요.”
그녀들은 소녀처럼 굴었다. 소녀만의 어휘와 표정을 사용했다. 여고생들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녀들은 변화되길 원하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포착했다.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경일
STYLIST: 박미경
HAIR: 이재황(에이바이봄)
MAKE-UP: 공혜련
ASSISTANT: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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